[그사람] 500원짜리 글 한 편에 눌러담는 '이슬아'의 커다란 세계

윤춘호(논설위원) 2022. 2. 12. 0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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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낯설지만 유명한 사람

 
이 사람, 유명하지만 묘하게 낯설다. 남들과는 다른 방법으로 세상에 이름을 알린 사람이기 때문이다. 작가지만 정식으로 등단 절차를 밟은 것은 아니고 방송을 통해 유명해진 것도 아니고 유튜브로 성가를 올린 것도 아니다. <일간 이슬아> 발행인이고 출판사 대표다. 지금까지 9권의 책을 썼고 10만 부 넘게 팔렸으니 베스트셀러 작가다. 곧 음반이 나올 예정이니 가수라는 말을 들을 날도 멀지 않고 이 사람을 모델로 쓰고 싶다는 업체들이 줄을 서있다는 후문이니 광고 모델 이슬아의 탄생도 시간문제로 보인다. 국회의원 후원회장도 맡고 있으니 정치에 더 깊이 발을 들여놓을 수도 있을 것이다. 올해 만 서른 살, 앞으로 무엇을 한다고 해도 조금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다. 자신은 2030 세대의 변방 중의 변방에 있는 사람이라고 했지만 이 사람을 보면 요즘 청년들의 생각을 조금은 엿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이 사람에게 만남을 요청했다. 처음 인터뷰를 섭외하는 과정에서 이 사람은 인터뷰 사례비가 있는지를 먼저 확인했다.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그런 태도가 신선하기도 했다.

"저는 돈 이야기를 하는 게 왜 실례인지 모르겠어요. 돈 이야기를 먼저 하는 게 엄청난 존중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원고 마감일을 기재하듯이 언제 돈을 줄 것인지 그게 얼마인지를 말해주는 게 평등한 약속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어떤 분들은 이런 저를 싫어하셨겠죠. 되게 돈 밝히네라고 생각하셨겠죠. 그런데 실제로 제가 돈을 밝히기 때문에 오해는 아닙니다."

불과 몇 년 전까지 이 사람은 등단을 꿈꾸는 작가 지망생이자 글쓰기 교사였다. 잡지사 기자, 만화가로 일하고 있었지만 생활비를 걱정해야 했고 월세 보증금을 마련하기가 늘 빠듯했다. 그림 그리는 사람들 앞에서 포즈를 취했던 것도, 일주일에 한 번 첫차를 타고 여수로 가서 막차로 서울로 돌아오는 강행군을 5년이나 계속했던 것도 모두 돈을 벌기 위해서였다. 대학 졸업할 무렵 학점은 C와 D가 대부분이었는데 신문방송학이라는 전공에 대한 흥미도 별로 없었지만 돈을 버느라 학업에 전념할 형편이 아니기도 했다. 2천만 원이 넘는 학자금 대출 상환 시기가 다가왔지만 갚을 길은 막막했다.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시작한 것이 <일간 이슬아>였다. 등단을 한 경력도, 손에 꼽을 만한 작품도 없고 얼굴이 알려진 셀럽도 아니고 자랑할 만한 학벌도 아니었다. 무엇 하나 내세울 것이 없었지만 이 사람은 절박했고 그 절박함이 용기로 이어졌다. 살고 있던 동네 주변에 한 달에 만원을 내면 일주일에 다섯 편씩 모두 스무 편의 글을 메일로 보내준다는 전단지를 뿌리고 다녔다. 이 사람의 용기를 높이 산 것일까, 아니면 혁신적인 유통 방식의 힘이었을까, 50명만 돼도 성공이라고 생각했는데 최초 유료 구독자는 예상보다 많았고 <일간 이슬아>는 사람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면서 자리를 잡아갔다.

몇 백 명인지, 몇 천 명인지 아니면 몇 만 명인지 구독자 수를 짐작할 있는 어떤 힌트도 주지 않았다. 구독자 수는 꾸준히 증가세라고만 했다. 서비스를 시작한 지 5년 째인 <일간 이슬아>는 시즌제 개념으로 운영하고 있다. 한 시즌은 한 달 동안 이어지고, 일 년에 두 시즌 내지 세 시즌 운영하는 방식이다. 2백 자 원고지 스무 장 분량의 글을 매일 꾸준하게 쓴다는 것은 글의 소재도 소재지만 어지간한 글쓰기 근육이 아니면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다. 자신과 친구, 가족들의 이야기, 자신이 읽은 책 이야기, 때로는 편지 형식으로 쓰기도 하고 인터뷰 형식의 글도 쓴다. 단 한 줄도 쓰기 힘든 날에도 어떻게든 글을 써 밤 12시 마감에 맞춰 독자들에게 이메일로 보내는 것은 돈의 힘이라고 했다

"매일 힘들죠. 그런데 돈을 선불로 받거든요. 선불의 힘이 무서운 거 아시잖아요. 그게 중요한 이유지만 기본적으로 제가 쓰는 체력도 준비되어 있는 거 같아요. 빨리 쓰는 편이고 완성에 대한 맷집이 조금 있는 거 같아요."


-완성에 대한 맷집이라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매일매일이 늘 평탄한 것은 아니잖아요. 유난히 마음이 힘든 날이 있고 몸이 아픈 날도 있고 집에 우환이 있는 날도 있고…그런 날에도 어떻게든 써서 그냥 마감을 한다는 뜻입니다."

목이 빠지게 이 사람 글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고 아침에 이 사람 글을 보면서 하루를 살아낼 힘을 얻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당연히 재구독률도 높다. 자신의 글이 어떤 매력이 있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했다.

"저도 제가 가진 것 가운데 어떤 것이 사람들에게 돈을 내게 하는지 늘 궁금한데요. 먼저 제 글을 보는 분들이 '얘도 애쓰고 있구나'하는 생각을 하시는 거 같고 매일 따끈따끈한 글을 보내준다는 반가움도 있는 거 같습니다. 제 글의 톤이 어떤 건강함과 명랑함이 있는 거 같아요. 제 글에도 힘든 이야기나 고생스러운 이야기나 서글픈 이야기들이 있지만 전체적으로 되게 양지바른 느낌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글이기 때문에 독자들에게 약간이라도 힘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월, 화, 수, 목, 금 매일 2백 자 원고지 20매 안팎의 글을 써서 독자들에게 보낸다. 주 5일 일하고 주말 이틀은 쉬는 자신을 연재 노동자라고 표현한다. 이렇게 쓴 글들을 묶어 모두 9권의 책으로 냈다. <이슬아 수필집> <심신단련>같은 책들이 그런 작업의 결과물인데 이 책들이 베스트셀러가 됐다. 2018년 헤엄 출판사를 세워서 자기가 쓴 대부분의 책을 여기에서 펴낸다. 처음에는 1인 출판사로 시작했는데 어머니와 아버지를 정규직원으로 채용해 이제는 직원이 3명이다. 불과 몇 년 전 몇 백만 원의 월세 보증금을 마련하지 못해 쩔쩔맸는데 한 방송에서 소개된 이 사람 사무실 겸 집은 비록 전세이긴 했지만 거의 저택 수준이었다.* 서울에 비하면 전셋값이 싸다고 했지만 이 사람 성공의 크기를 집의 크기에서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었다. 이름이 알려지면서 방송에도 출연하고 언론 인터뷰도 종종 한다. 찾는 사람들이 많아 강연 일정도 적지 않다. 이제는 셀럽의 반열에 올라서 장기하, 혁오 등이 소속되어 있는 연예인 매니지먼트 회사와 계약을 맺었고 가수인 동생과 함께 음반을 준비하고 있다.

*경기도 파주에 사무실 겸 집으로 사용하는 공간이 있었는데 지난해 여름 정릉으로 이사했다.
 

2. 이슬아를 만든 사람들

 
3대 11명이 사는 대가족 집안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집안에서 절대자로 군림하는 할아버지의 총애를 받으면서 자랐다. 그때 받은 사랑과 어떤 자랑 같은 것이 자신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라고 했다. 그 유년에 대한 기록은 이 사람 글에 많이 나오지는 않지만 큰 영향을 준 듯하다. 가족이라는 말은 따뜻한 울림을 주지만 어느 집이든 한 꺼풀만 벗기면 남루함이 드러난다. 약간의 가공과 왜곡이 있긴 하겠지만 이런 표현은 실제 이 사람 가족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가족들은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만 나누며 밥을 먹었다. 정말로 꼭 하고 싶은 말을 누구 하나라도 시작한다면 이 가족은 파탄이 날 것이다. 며느리들과 아들들과 시부모 사이에 몇 차례의 전쟁이 발발하여 이혼과 의절로 마무리될 것이다. 지난 세월 동안 서로에게 많은 상처를 주며 살아왔으니까. 오늘 팔순을 맞이한 할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오늘은 그의 생을 축하하는 날이다. 모두가 진실을 조금씩 외면한 결과 식사는 순탄하였다." <2019 이슬아 산문집- 심신단련 중>

부모님의 직업 변천을 가지고 소설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아버지는 여러 직업을 가졌는데 물속에서 작업을 하는 산업 잠수사였고 노동자였고 트럭 운전사였다. 어머니도 다양한 일을 했다. 열심히 일을 했지만 부자가 되지 못한 사람들이 있는데 이 사람의 부모가 그런 사람이었다.

"근데 두 사람은 살면서 한 15번 넘게 직업을 바꿨는데 계속 블루칼라 노동자들이었어요… 생산직에 있었다든지 노가다에 있었다든지 아무튼 블루 칼라였어요. 제가 출판사 직원으로 고용하기 직전 직업이 엄마는 구제옷 가게 장사, 아빠는 트럭 노동자였어요."

이 사람 삶은 연대순으로 질서 정연하게 정리되지 않는다. 언제 태어나서 학교를 어디를 다니고 그 다음에 대학에서 무엇을 전공하고 그 다음에 무엇을 하고…이렇게 단선적으로 정리되지 않는다. 자신의 삶이 그렇게 정리되기를 원하지 않는 듯하다. 어떤 시절, 어떤 관계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생략하고 지워버린다. 서른 살의 삶이 인물과 사건에 따라 병렬적으로, 다면적으로 존재하는 느낌이다. 자신의 삶을 다양하고 다층적으로 묘사한 글의 영향일 수 있겠는데 그리 길지 않은 이 사람 삶이 단조롭지 않게 느껴지는 이유다. 중고등학교 과정을 5년에 마치는 대안학교를 다녔다. 대안학교 시절은 상세하게 말하지만 대학에 들어가는 과정도, 대학시절 이야기도 거의 없다. 자신의 글에 등장하는 사람들에게 어느 학교를 다녔는지, 어떤 배경을 가졌는지 묻는 일이 없다. 내가 묻지 않으니 나에게도 그런 것은 묻지 말라고 요구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작가님 글에는 상대방에게 나이나 출신학교, 이력을 묻는 질문이 거의 없더군요.
"생각해 보니 제가 만난 누구에게도 학교를 언급하지 않았다는 것을 지금 알았어요. 학교라는 게 누군가를 이해할 때 기본적인 정보가 될 수 있군요. 그 생각을 한 번도 안 해본 거 같아요. 왜냐하면 제가 그 부분에 관해 관심이 없는 거 같아요…제가 사람들을 만날 때는 학교나 학벌, 직업이나 나이는 별로 생각을 안 하거든요."

자신과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들과 '끈끈하게' 엮여 있는 것이 아니라 쿨하게 선이 그어져 있는 느낌이다. 이 사람 글에서 엄마, 아빠는 늘 복희, 웅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두 사람 삶이 필연적으로 자신의 삶과 엮여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그렇게 표현하는 것이다.

자신의 일기장에 일기보다 더 긴 소감과 평을 써주었던 초등학교 선생님, 대안학교 시절 자신의 지루함과 고루함과 꽉 막힘을 깨 주려고 했던 이제는 이 세상에 안 계신 선생님, 10대 후반부터 20대 초반까지 글쓰기를 가르쳐 준 선생님. 이 선생님들이 이 사람을 작가로 키웠고 아직도 그 사람들의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난 거 같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선생님들을 닮고 싶다는 말을 하지는 않는다. 이슬아는 이슬아로 족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3. 가난과 분노, 그리고 저항

 
열아홉 살 때 처음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 보증금 5백만 원에 월세 40만 원짜리 방을 구했다. 같이 살기로 한 친구와 보증금을 절반씩 나눠 내기로 했는데 보증금 2백50만원을 마련하는 게 힘들었다. 부모님이 다 도와줄 형편이 안 돼서 친척들과 지인들에게 손을 벌렸다. 가난했던 것인데 이 사람 말과 글에서 가난했다는 표현은 찾기 힘들다. 가난이라는 말은 자기보다는 다른 사람이 써야 될 말이라고 했다.


"실제로 가난했다고 느끼지는 않았던 거 같아요. 집이 화목했고 불행한 집안은 아니었어요.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가 많았지만 제가 뭘 하고 싶을 때 부모님이 물심양면으로 지원해 주셨어요. 돈 때문에 길이 엄청 막혔다는 느낌이 별로 없었어요. 실제로 더 가난한 청년들도 많기 때문에 가난하다고 말하고 싶지가 않았어요."

가난했기 때문에 겪을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들을 풀어놓지만 궁상스럽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같은 캔디류의 긍정 서사를 말하는 것도 아니다. 좌절과 패배를 이야기할 대목에서도 분노가 별로 없다. 아니, 좌절과 패배에 대한 이야기가 거의 없다. 그런 것들은 자기 세대에게는 특별한 것이 아니라 당연히 주어지는 기본값이기 때문에 굳이 언급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좌절과 패배는 말하지 않는 대신 운이 좋았다는 말을 여러 차례 했다. 대부분의 청년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성공의 언저리에 이를 수 없는 것에 비하면 자신은 운이 좋아 지금의 성취를 이루었다는 것이다. 요즘 청년들은 화가 나 있고 분노에 일그러진 듯한 이미지로 흔히 그려지는데 이 사람은 그런 얼굴과는 거리가 있다.

"저는 분노를 달궈서 정면 승부하고 이런 편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그렇게 혁명적이지도 않은 것 같고 애초에 분노 에너지가 별로 없기도 하고요. 레지스탕스는 아닌 거 같다는 지적은 맞는 거 같습니다. 그렇지만 은근한 저항심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언제 가장 분노했는지, 미워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물었더니 바로 생각나는 게 없다고 했다. 누구를 미워하는 에너지로 일을 하는 사람은 아니다.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에 대해서 쌍심지를 돋우며 열을 내는 모습도 보기 힘들다.

"미워하는 것도 능력인 거 같은데 저는 미워하는 능력이 없는 거 같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는 힘을 가지고 미워하고 잘 분노하고 잘 싸우는 게 굉장히 중요한 능력이라고 느끼는데요. 저는 그런 식으로 사고가 잘 돌아가는 것 같지 않고 미워하는 사람도 별로 없는 거 같아요."

자기 스스로 돌다리 놓아가며 무명(無名)의 강을 건너온 사람이다. 남에게 의존하지 않고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는다. 미안하지 않으면 사과하지 않고 웃기지 않으면 웃지 않는다고 했고 미움 받을 용기, 약속을 거절할 용기를 말하는 사람이라 예민하고 날카롭고 도발적인 모습이려니 싶었는데 그런 모습을 찾기 어려웠다. 반박하기보다는 일단 받아들이려 한다. '그게 아니고요'라고 말하기보다 '그럴 수 있겠네요'라고 말하는 식이다. 일찍 부모 품을 벗어나 혼자 살면서 싸우는 게 능사가 아니라는 것, 때로는 우회하는 것이 빨리 가는 방법이라는 것을 배웠는지도 모르겠다. 싸움닭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순둥이도 아니다. 세상이 자신에게 기회를 주지 않으니 자신이 스스로 기회를 만들었다. 이보다 더 확실한 저항이 어딨을까 싶다. 이 사람 글은 '양지의 기운'이 느껴지지만 글과 글 사이에 미묘하게 날이 서있고 비틀려 있고 이 사람만의 고집이 느껴진다. 마이너리티의 감수성이 진하게 느껴지는 이 사람 글은 고분고분하지 않다. 남들이 뭐라고 하든 나는 나의 말을 하겠다는 태도가 확고하다.
 

4. 이 사람은 개인주의자?

 
자기 몸을 단련하는데 집중하고 자기가 먹는 것에 예민하다. 4년째 채식주의자로 살고 있다. 자기 이야기, 자기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 그들과 사이에서 벌어지는 사랑과 우정과 갈등이 글의 단골 소재이고 거의 모든 이야기가 이 사람을 중심으로 동심원처럼 그려지고 전개되고 확장된다. 모든 것의 중심에 이슬아 본인이 있다.

-개인의 가치, 나 자신의 소중함을 다른 가치보다도 우선한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런 점에서 개인주의자라는 표현에 동의하십니까.

선뜻 동의하지 않는 표정이었다. 개인주의라는 주는 말이 주는 다소 부정적인 어감이 싫었을지도 모른다. 자기의 삶이 소중하기 때문에 자신이 살고 있는 공동체 역시 소중하다고 했다.

"사실 저에게는 굉장히 커다란 공동체 우선주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채식주의가 기후 문제와 동물권에 관한 문제잖아요. 계속 이렇게 우리가 먹던 대로 먹다가는 이 공동체가 더 빠르게 나빠질 것이다, 나빠지는 속도를 늦추기 위해서 나라도 최소한 뭘 하지 말자, 이런 것은 사실 정치적으로 올바르려고 하는 결정이라고 저는 느꼈거든요. 채식주의는 나 혼자 내 몸에 좋으려고 채소를 먹자는 게 아니거든요. …그래서 나를 아끼니까 당연히 공동체를 아낄 수밖에 없는 거죠."

2020년 국회의원에 당선된 장혜영의 요청으로 후원회장을 맡았다. 장혜영이 국회에 들어가기 전에 일을 같이 한 경험도 있고 장혜영이 정치인으로 변신한 이유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돕고 싶었다.

"(장혜영 의원이) 창작자로서 아무리 잘 해낸다 하더라도 법이 바뀌지 않으면 절대 나아지지 않는 생활이 있잖아요. 특히 장애인들의 삶 같은 거요. 정치인들에게 바꿔 달라고 요청하는 게 지쳐서 정치를 시작했다는 (장혜영의) 말을 이해할 수가 있었습니다.. 아무리 요청해도 안 바뀌는 것을 자신이 바꾸기 위해 전장으로 걸어 들어가는구나…그래서 당선되고 나서 후원회장을 맡아달라고 했을 때 바로 하겠다고 했죠."


돈이 많은 것도 아니고 인맥이 넓은 것도 아니다. 후원회장이 돈을 모아주는 역할이니 사실 이 사람이 잘할 수 있는 일로 보이지는 않았는데 그 자리를 맡은 것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생각이 같은 정치인을 돕고 그 정치인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실현하는 것에 나름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거의 무명의 작가였던 이 사람에게 후원회장을 요청한 장혜영과 그 요청을 망설임 없이 수락한 이 사람을 보면서 여의도 정치의 밑바닥이 이렇게 변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잘 나가는 사람들은 정치는 나와 무관한 일이라고 입을 다무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시절이라 이슬아 작가님에게 후원회장을 맡아달라고 요청하는 게 실례일 수도 있었어요. 하지만 저는 청년과 여성들이 이슬아 작가라는 프레임을 통해서 정치와 연결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용기를 내 요청을 했어요. 조금 생각해보고 연락드릴게요라고 할 줄 알았는데 '할게요. 저 돈 없는 것은 아시죠? 그런데 제가 뭘 하면 되는 거죠'라고 하는 거예요." 장혜영/ 정의당 국회의원

장혜영은 다원성에 대한 가치를 공유하고 있는 이 사람을 만났을 때 같은 부족을 만난 느낌이었다고 했다. 다양한 주체의 관점에서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고 거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삶으로 실천한다는 점에서 깊이 연결되어 있는 느낌을 받았다는 것이다.

-386세대의 정서를 가지고 있는 저 같은 사람들 생각과 이슬아 작가님이 속한 세대의 시각은 사뭇 다를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만…
"당연히 그럴 거 같아요. 그런데 같은 세대 안에서도 이를 테면 저랑 같은 나이인 90년대생이라 하더라도 계층이나 지역에 따라 매우 다를 것 같고 그게 386시대의 어떤 어른과 저의 거리보다 꼭 좁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2030세대 안에서 성별 간에 벌어지는 갈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페미니즘은 남성이나 여성, 남성도 아니고 여성도 아닌 사람들에게까지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모두가 공부해야 될 주제인데 함께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일의 다인 거 같아요."


대화를 나누면서 곳곳에서 반문을 하고 질문의 의도를 확인하곤 했다. 묻는 사람과 답하는 사람의 위치가 종종 바뀌곤 했다. 집중해서 이야기를 듣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말하는 사람의 의도까지 헤아려 들으려 했다. 장혜영은 이 사람의 장점으로 공감 능력을 들었다. 남의 말을 정성을 기울여서 경청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대안학교의 모범생이라고 자신을 표현한 적이 있다. 처음에는 대안학교라는 말에 방점을 찍었는데 이야기를 듣다 보니 모범생이라는 말에 방점을 찍어야 되는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5. 아날로그형 인간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아버지가 구입한 데스크톱 컴퓨터를 가지고 놀았다. 글을 쓰는 것보다 자판을 치는 게 더 빨랐다. 초등학교 때 일기를 데스크톱 컴퓨터로 쓴 완전한 디지털 세대인데 아날로그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는 책 읽기와 글쓰기를 좋아하고 그것을 통해 돈을 벌고 이름을 세상에 알렸다. 일기 쓰기에서 시작된 글쓰기는 취미이자 특기가 되었고 20대 초반까지 꾸준히 글쓰기 교실을 다녔다.


"사실 제가 이메일로 글을 보낸다는 것 자체가 되게 올드한 거잖아요. 글쓰기는 기본적으로 혼자 밀고 나갈 수 있는 자유롭고 홀가분한 장르라서 좋습니다. 무엇보다 자본에 아첨하지 않아도 되는 장르라서 지금까지 하고 있는 거 같습니다."

대학에 들어간 이후에는 아르바이트로 글쓰기 교사를 5년 넘게 했다. 글쓰기 교육을 기초부터 배웠고 글쓰기의 기초를 오랫동안 가르쳐왔으니 글이 갖추어야 될 기본을 잘 안다. 이 사람이 말하는 글에 대한 맷집은 이런 과정에서 길러졌을 것이다. 초, 중, 고 학생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치기 위해서 일주일에 한 번 여수까지 가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아침 7시에 기차를 타고 가서 막차를 타고 자정이 넘어 서울로 돌아오는 일이었다. 그런 일을 5년 넘게 했다. 돈을 벌기 위한 일이었지만 그 일 자체를 좋아하지 않았다면 할 수 없는 강행군이었다.

"한 번 수업에 학생 한 명 당 2만 원 정도를 받았어요. 4주 하면 8만 원을 내는 거죠. 물론 한 명을 가르치기 위해서 간 것은 아니고 여러 명이었어요. 한 번에 15명, 많게는 20명 정도…가르치는 게 즐겁긴 했는데 에너지를 많이 쓰는 일이라 여수 한번 다녀오면 완전 방전되는 느낌이었어요."

책을 통해서 세상을 배우는 사람이다. 책을 좋아하고 책을 읽는 게 습관이지만 많이 읽어야 한다는 강박 같은 것도 있다.


"저도 책을 읽는 게 되게 힘이 들어요. 스마트폰이 있는 시대에 진득하게 책을 읽는 게 너무 어렵습니다. 집안 어디에나 책을 두고 그냥 어디에서나 읽는 스타일입니다. 근데 지금도 좋은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훨씬 더 많이 읽어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모르는 게 너무 많아서요."

책에서 배우는 것이 많지만 사람들과 만남을 통해 더 많이 배운다고 했다.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좋아하고 그것을 한 편의 글로 정리하는 것에 능하다. 아니, 탁월하다. 자기 주변에 중요한 일을 하고 있지만 주목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생각에서 시작된 이 사람 인터뷰는 따뜻하고 세심하고 웅숭깊다. 요새 읽은 최고의 인터뷰를 하나만 들자면 이 사람이 쓴 이대 목동병원 응급실 청소 노동자를 다룬 글이다. 의사, 간호사, 환자, 보호자를 넘어 그곳을 청소하는 사람들까지 본다. 다른 사람보다 이 사람 시선이 한 뼘쯤 더 넓고 더 깊다.

"사람이 겪을 수 있는 최악의 순간을 병원 응급실에서 겪잖아요. 그런데 거기서 내가 얼마나 아팠는지 내가 사랑하는 사랑이 얼마나 아팠는지 기억나고 옆에 어떤 환자가 있었는지 의사 선생님이 누구였는지 다 기억나는데 누가 청소를 했는지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 거예요. 사실 응급실은 누군가 청소를 굉장히 열심히 했기 때문에 굴러가는 시스템이잖아요. 코로나 시대 초입에 응급실이 난리 났을 때가 있잖아요. 문득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계속 저기를 치우고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소설을 쓰려고 했고 그래서 언론사 창작 교실을 열심히 다니기도 했다. 이제는 소설이 아니어도 좋다고 생각한다. 잘 읽히고 생각이 깊은 글이면 그 형식이 무엇이어도 상관없다는 것이다. 자신이 가장 잘 쓸 수 있는 글이 지금 <일간 이슬아>에서 연재하는 글이고 잘 하는 것을 더 잘하는 방향으로 노력하겠다는 뜻이지만 언젠가는 이 사람이 쓴 소설을 볼 날이 올 것이다. 그 전에 이 사람이 쓴 시트콤을 보는 날이 더 빨리 올 듯하다. 2월 14일부터 <일간이슬아> 2022년 시즌을 시작하는데 가녀장(家女長) 시리즈로 꾸밀 생각이다.

"저희 집이 남녀가 겸상도 안 할 정도로 가부장적 집안이었는데 지금은 제가 엄마, 아빠를 출판사 직원으로 고용해서 함께 일을 하는 형태로 살고 있거든요. 가부장도 아니고 가모장도 아니고 가녀장제가 도래한 것이죠. 딸이 경제적 주권을 가지고 부모님에게 일을 주고 집안의 대소사를 딸이 주관하는 집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관찰하는 글을 연재할 생각입니다. 나중에 가녀장 시리즈가 TV 시트콤으로 만들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성에 대해 몇 번 솔직하고 대담하게 쓴 것은 맞지만 자신을 그런 측면에서만 보려는 사람들에 대해서 불편한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가장 많이 받은 광고 제안이 피임약 광고라고 했다. 그런 제안은 모두 거절했다.

"저는 연애의 장면을 이야기하기 위해 몇 가지 성적인 장면들을 쓴 거고 전체 글에서 보면 굉장히 비중이 적은데 자유분방하게 성적인 이야기를 쓴다는 평가를 필요 이상으로 받은 적이 있다고 느껴요. 성에 대해서 편안하기 때문에 그렇게 쓸 수 있고 다른 이야기도 할 수 있는 거 같은데...사실 섹슈얼리티 이야기만 하는 거 얼마나 지루해요. 삶의 다른 문제도 많은데…"

성공적인 전업 작가의 모델이 되었지만 기울이는 노력에 비하면 이 사람에게 주어지는 보상이 너무 적다. 부동산과 코인이며 주식 투자로 몇 억, 몇 십억을 벌었다는 사람이 수두룩하고 몇 십억, 몇 백억을 남의 집 강아지 이름 부르듯 하는 세상 아닌가. 이런 세상에서 이 사람의 노력에 대한 보수는 사실 초라하다. 글 한 편에 5백 원이다. 요즘 세상에 5백 원으로 살 수 있는 물건이 뭐가 있을까? 껌 한 통이 1천 원인 세상이니 이 사람 글은 껌 한통 값도 안 되는 것이다. 게다가 이 사람 글 값은 5년째 그대로다.
 

6. 이 사람이 만들고 싶은 세상

 
MZ세대의 아이콘, 유행을 선도하는 힙스터라는 말을 듣기도 한다. 한 세대의 가장 앞자리에 서있는 사람이라는 평이 과한 것처럼 보이지 않는데 정작 본인은 변방 중에 변방에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유행 같은 것은 잘 모르고 잘 따라가지도 못한다는 것이다.


-이슬아라는 사람은 훨씬 자유분방하고 결이 거칠고 도발적이고 전복적인 사람일 수 있는데 제가 너무 착하고 곱게만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누구에게나 여러 얼굴이 있잖아요. 사실 긴 인터뷰를 해도 그 모든 얼굴을 다 담는 것은 불가능하잖아요. 그러니 선생님께서 담고 싶은 얼굴을 담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질문을 하시는 것 자체가 저를 어떤 곱디 고운 착실한 젊은이라고 생각 안 하시는 거라고 믿습니다."

<일간 이슬아>에 재능은 있지만 아직은 운을 만나지 못한 동료 작가들에게 글을 실을 수 있는 기회를 준다. 그런 작가들에게 독자들에게 이를 수 있는 진입로를 깔아주고 정성스럽게 소개를 한다. 원고료는 꼭 선불로 준다.

-이슬아라고 하는 사람이 힘이 생긴 거죠?
"아직 미약하긴 하지만 그래도 이 알량한 힘이라도 잘 쓰면 좋잖아요."

-그럼 힘으로 만들고 싶은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요.
"저는 우선 제가 즐겁고 행복하게 일했으면 좋겠고 제가 살필 수 있는 사람들도 그랬으면 좋겠고요. 제가 인색하지 않게 잘 나눠줄 수 있을 만큼 가진 게 많았으면 좋겠어요. 그게 가진 게 많다는 게 꼭 재산의 문제는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마음의 품이기도 하고…좋은 거 많이 주고받으면서 일하고 싶습니다. 크게는 아직 생각을 못하고 겨우 주변 정도만 저는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는 거 같아요."

아직도 갈 길이 많이 남아 있는 사람에게 성공이니 실패이니 하는 말은 적절치 않아 보인다. 격려와 찬사를 받을 만하나 과한 칭찬이 이 사람에게 꼭 도움이 되지도 않을 것이다. 이제 첫발을 뗀 사람이고 긴 장정의 초입에 서있는 사람이다. 이 사람 앞날에 더 거대한 성공이 기다릴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분명한 것은 이 사람이 더 좋은 이야기로 세상을 채워 나가려는 야심으로 가득한 사람이라는 것, 이미 조연을 지나 주연의 자리를 꿰찬 사람이라는 점이다.

* 이슬아 작가와의 인터뷰 풀영상은 오늘(12일) 밤 8시 SBS뉴스 유튜브 채널에서 최초 공개됩니다.

윤춘호(논설위원)spring84@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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