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끝작렬]일본이 차라리 낫다고? 586이 본 '혐중 몰이'
中 잘못 크지만 감정보다 냉철한 국익 중요…반일정서와 비교는 무리
일각에선 '586=친중' 세대 가르기…단일대오도 못 그리는 정략적 접근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7년 독일 외무상 치머만은 멕시코에 극비 제안을 한다. 미국이 전쟁에 가세할 경우 멕시코가 독일을 도와주면 미국에 빼앗긴 뉴멕시코와 텍사스 등을 되찾아주겠다는 것이다.
이는 영국 정보망에 걸려 오히려 미국의 참전을 부르는 부메랑이 된다. 미국은 독일의 무제한 잠수함 작전에 자국민 100여명이 숨졌음에도 중립을 지켜왔다. 그러나 독일의 검은 속내가 드러난 이상 미국도 더는 어쩔 수 없었다. 영국 첩보전의 개가인 '치머만 사건'이다.
비슷한 일은 1870년 보불전쟁 때도 있었다. 프로이센 수상 비스마르크는 빌헬름 황제와 프랑스 대사 간 대화를 각색해 공개함으로써 국민감정에 불을 지폈다. 프랑스 대사가 엠스라는 휴양지에 있던 황제를 다짜고짜 찾아가 무례하게 대했다는 식으로 전보 내용을 조작한 것이다.
미처 준비가 안 된 프랑스가 먼저 선전포고 하도록 유도한 뒤 군사적, 외교적으로 단숨에 제압하기 위한 고도의 술책이었다. 성난 민족주의를 전쟁 동력으로 이용한 '엠스 전보 사건'의 전말이다.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한국 내에서도 '혐중' 현상이 확산되고 있다. 전례없이 빠른 기세이니 만큼 동서고금의 경험과 지혜를 반추하며 잠시 숨을 돌릴 필요가 있겠다.
일단, 사태의 책임이 중국에 있음은 명명백백하다. 과거 동북공정에서부터 최근 김치와 한복 논란, 올림픽 판정 시비까지 중국은 가만있는 한국을 항상 먼저 자극해왔다. '친성혜용'(親誠惠容)은 말 뿐이고 실제로는 중화패권주의로 퇴행한다는 강력한 의심을 받는다.
하지만 국가 간의 일을 감정으로만 다룰 수는 없다. 국민정서도 중요하지만 냉철한 국익이 최우선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한국 내 혐중은 자연발생 차원을 넘어 일각의 선동적 행태까지 결합했기에 위태로워 보인다.
모종의 정략적 고려가 깔린 혐중 선동은 급기야 "차라리 일본이 낫다"는 언술까지 만들어냈다. 원래 북한이 썼다던 "일본은 100년의 적, 중국은 1000년의 적"이란 말도 곁들여졌다.
좋고 싫음의 감정을 이성의 잣대로 따질 수는 없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정부와 관료, 정치인까지 나서 노골적 혐한을 부추기는 일본을 중국과 비교할 수는 없다. 중국의 혐한 공격은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애국주의 네티즌' 같은 민간의 젊은 층이 주축이다.
여기에 우리 정부가 직접 맞대응한다면 상황은 복잡해진다. 일본에서 '한국인은 바퀴벌레'라고 외치는 혐한 시위와 혐한 서적이 판을 쳐도 정부가 나서기 힘든 것은 이런 이치에서다.
위안부, 강제징용, 교과서 등 과거사 도발 뿐 아니라 기습적 경제 제재를 감행하고 독도 침탈까지 기도하는 일본과 달리 중국과는 협력의 여지가 훨씬 많다.
바로 최근에도 조선인 강제노역의 한이 서린 '사도 광산'을 세계유산에 등재하지 않을 것처럼 하다 돌연 입장을 바꾼 일본이다. 아베 신조 전 총리는 막후에서 "한국이 역사전쟁을 걸어오고 있으니 피할 수 없다"고 조언했다고 일본 언론은 전했다.
혐중 선동의 또 다른 기막힌 결과는 세대 갈라치기이다. 현 정부 지지세가 강한 586 세대를 '친중' 프레임으로 엮는 것이다. 이는 586이 80년대 반미 학생운동을 경험했으니 친중 성향이 강할 것이라는 근거 없는 추정에서 비롯된다.
586이 정확히 무엇을 지칭하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이 글을 쓰는 기자를 포함한 50대 연령의 우리 국민 대부분은 이런 억지 논리에 큰 불쾌감을 느낄 것이다.
대한민국 50대는 중국을 '중공'(공산당)이라 불렀고 '무찌르자 오랑캐' 같은 노래를 부르며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냈다. 중국에 아무런 환상을 품을 일이 없다. 오히려 대약진 운동과 문화혁명, 숙청과 기아의 수렁을 헤매는 그네들의 사정을 처연하게 지켜보며 자란 세대이다.
영국의 치머만 사건이나 독일의 엠스 사건에서 보듯 국민감정도 잘만 활용하면 외교의 동력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그러려면 외부 위협을 상정해 내부를 결집하는 치밀한 전략과 용의주도한 행동이 반드시 필요하다.
적어도, 세대 가르기로 단일대오조차 만들어내지 못하는 패착은 두지 않는 법이다. 단지 자연발화로만 보기 힘든 인위적 혐중 몰이가 여간 불안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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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홍제표 기자 enter@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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