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 왕건이 평양 대신 개성을 수도로 택한 결정적 사건

2022. 2. 4.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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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수도 개경(개성)은 풍수지리적으로 명당으로 알려져 있다.

박종진 숙명여대 명예교수는 그간의 개경연구를 총정리한 '개경:고려왕조의 수도'(눌와)에서 "나라 이름을 고려로 정한 태조가 즉위한 지 3개월 만인 918년 9월 서경을 옛 수도라고 한 것에서 태조가 서경에 대하여 가졌던 생각을 짐작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런데 태조는 4개월 뒤인 919년 1월 수도를 개경으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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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수도 개경(개성)은 풍수지리적으로 명당으로 알려져 있다. 사신사가 갖추어진 ‘장풍국(藏風局)’이란 평가다. 명당의 기본요소인 사신사(四神沙)란 땅의 동서남북에 있는 산을 말한다. 개성 서쪽의 오공산, 남쪽의 용수산, 동쪽의 부흥산을 북쪽의 송악산과 함께 개성의 사신사로 부른다. 우리 역사에서 풍수지리적 요인이 본격적으로 적용된 도시는 개경이 처음이다.

일종의 쿠데타를 통해 왕조를 세운 태조 왕건에게 천도는 필수적이었다. 그런데 애초 태조는 개경 보다 딴 데 마음이 있었다. 바로 서경, 즉 평양을 먼저 천도 대상으로 여겼다.

박종진 숙명여대 명예교수는 그간의 개경연구를 총정리한 ‘개경:고려왕조의 수도’(눌와)에서 “나라 이름을 고려로 정한 태조가 즉위한 지 3개월 만인 918년 9월 서경을 옛 수도라고 한 것에서 태조가 서경에 대하여 가졌던 생각을 짐작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서경을 대도호부로 삼고 당제 왕식렴과 광평시랑 열평을 보내 수비하게 한 것 등도 들어있다.

그런데 태조는 4개월 뒤인 919년 1월 수도를 개경으로 옮겼다. 그럼에도 태조의 서경 사랑, 미련은 이어졌다. 919년 10월 서경에 성을 쌓았고, 921년 부터 931년 까지 10년 동안 일곱 차례 서경을 방문했다. 특히 930년에는 두 차례나 찾았다.

그런데 932년 서경 천도를 포기하는 선언을 한다.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932년 4월 서경 사람 정견의 집에서 암탉이 수탉으로 변하고, 5월엔 서경에 바람이 크게 불어 관청 건물이 무너지고 지붕의 기와가 모두 날아가는 일이 벌어졌다.

태조는 이런 일들을 하늘의 견책으로 받아들였다. 그는 신하들에게 “근래에 서경을 보수하고 백성을 옮겨 그곳을 채운 것은 땅의 기운을 빌려 삼한을 평정하고 장차 그곳에 도읍을 정하고 싶었기 때문”이라며, “분수에 맞지 않는 마음을 품었기 때문에 이러한 변고가 있게 된 것이 아닌지 염려된다”고 했다.

박 교수는 태조에게 서경은 이상이고, 개경은 현실이었다고 말한다.

개경은 정치사회적으로 수도로서의 장점을 지니고 있었다.

왕건 세력의 근거지여서 익숙하고 도움을 받을 곳이 많은 반면 서경은 고구려의 옛 수도로 왕식렴 외에는 기댈 세력이 없었다. 가고 싶지만 낯선 곳이어서 망설일 수 밖에 없었다. 또한 개경은 궁예 시절 한 때 수도여서 성곽이나 주요 시설을 이용할 수 있어서 어려운 국가 살림살이에 짐을 지우지 않을 수 있었다.

풍수지리에 관심이 많았던 태조는 서경의 지세를 개경 보다 더 중요하게 여겼지만 서경을 포기하면서 다양한 형태로 개경을 비보하는 작업을 했다.

절이나 탑을 세우고 사신사에 해당하는 산 능선을 따라 성곽을 쌓아갔다. 그렇게 110년 동안 명당 개경은 만들어진 것이라는 게 박 교수의 설명이다.

400여년 동안 고려왕조 수도의 지위를 유지한 수도 개경은 대체로 고려 국토의 중심지에 위치, 국가를 더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게 됐다. 이는 조선 건국 후 대체로 한양으로 이어졌으며 교통로의 큰 틀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평가다.

책은 개경의 기원과 자연 환경부터 궁궐과 성곽, 주거와 시장 등 그곳에 살던 사람들의 생활까지 충실이 담아냈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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