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과반 의석 거대 여당의 추경 농성과 책임 정치

박원경 기자 2022. 2. 3.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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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성'은 전통적으로 소수 야당의 투쟁 무기였다. '여대야소' 상황에서 국민 여론 환기를 통해 수적 열세를 극복해 보려는 전략적 활용 도구였다. 멀게는 군사 독재 시절 YS, DJ의 투쟁에서부터 가깝게는 '코로나19 손실보상법'과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를 위한 정의당의 농성, '대장동 특검 도입'을 촉구하는 국민의힘 농성까지, 해당 이슈에 대한 동의 여부를 떠나 '농성'은 소수 야당의 투쟁 수단으로 용인될 여지가 많았다.

그런데 현재 여의도에선 기이한 장면이 연출되고 있다. 개헌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못할 게 없다는 170여 석, 그 의석수를 가진 여당 의원들이 추경 편성 확대를 요구하며 국회 본관과 청와대 앞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다시 한 번 확인하지만, 소수 야당이 아닌 과반 의석을 가진 여당의 농성이다. '당정 일치', '국정 운영의 주도권' 등을 외치며 '당정 협의회' 등을 통해 자신들의 뜻을 정책으로 관철시켰던 여당, '임대차 3법' 등 자신들이 원하는 법안을 숫자로 밀어붙였던 여당 소속 의원들이 '정부' 등을 상대로 농성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추경 편성 '확대'를 요구하는 거대 여당의 농성

농성의 목적이 추경 편성 '확대'라는 점과 '확대'의 명분이 코로나19에 따른 방역 조치로 피해를 입은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지원 확대라는 점은 농성의 기이함을 더하고 있다. 이듬해 예산은 12월에야 정해진다. 그런데 채 한 달도 되지 않아 추경을 요구한다는 건, 한 달 전 예산안 심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고백에 지나지 않는다. 한 달 사이 추경이 필요할 만큼의 드라마틱한 상황 변화가 생길 일이 얼마나 있을까. 지금껏 1월 추경이 없었던 이유다.

물론, 코로나19와 같이 예상치 못 했던 상황이 발생할 수 있고, 예상치 못 한 상황에 정부와 집권 여당은 대처해야 할 책무가 있다. 대처 방안으로서 필요하다면 1월 추경도 얼마든지 논의될 수 있다. 하지만, 선행되어야 할 것은 실책에 대한 책임있는 사과다. 여당은 연초 추경 편성 요구에 이은 현재의 추경 편성 '확대'의 이유로 오미크론 확산을 들고 있다.

현재의 상황은 2022년 예산안 국회통과 시점에는 예상 못 했던 일일까. 그렇지 않다. 지난해 11월 초, 오미크론 변이가 해외에서 첫 발견된 이래 "오미크론의 국내 유입은 시간문제"라는 예측은 지배적이었다. 오미크론의 전파력이 기존 델타의 몇 배에 달하고, 일단 유입되면 우세종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관측도 여러 곳에서 제기됐다. 지난해 12월 1일에는 국내에서 첫 오미크론 확진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정부가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한 9월과 달리, 국회에서 오미크론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대비할 시간은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자당 대선 후보의 주요 공약인 지역 화폐 예산을 정부안 대비 24조 원 증액한 것은 여당이었다. 지역 화폐 예산 대폭 증액도 소상공인 지원책으로 설명한 여당이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국민은 얼마나 될까. 2022년 예산과 정부의 14조원 대 추경 안이 소상공인을 지원하기에는 부족하다고 주장하는 여당이지만, 2022년 예산에 대해 "손실보상 대상인 소상공인에 대한 예산뿐만 아니라 비대상 업종의 소상공인들에게까지 폭넓게 금융 지원을 하기로 결정한 것은 저희가 얻어낸 큰 성과(윤호중 민주당 원내대표, 지난해 12월 6일)"라고 평가했던 건 과반 의석의 여당이었다.
 

질병청장 "1월 중 확진자 최대 2만 명 가능성"

지난해 12월 3일, 국회의 예산안 통과 시점엔 오미크론에 영향력을 과소평가했을 수 있다. 실수에 빠르게 대처하기 위한 방안으로 추경이 필요했을 수 있다. 그렇다면 과반 의석을 가진 집권 여당이라면 추경안의 재수정이 필요하지 않도록 정부와 협의해 추경 안을 완성했어야 했다. 국정 운영의 주도권을 쥔 과반 의석의 집권 여당이 책임 있는 정치를 구현하겠다면, 문재인 정부와 기획재정부를 갈라치기 해 기획재정부를 비판하기에 앞서 결과를 보여줬어야 한다. 지금처럼 추경 편성 '확대'를 요구할 게 아니라, 추경 편성 단계부터 현재의 요구 사항을 반영했어야 한다. .
현재 여당이 주장하고 있는 오미크론의 심각성은 지난해 국회 예산안 통과 직후부터 정부에 의해 공식적으로 제기되기도 했다. 지난해 12월 16일, 방역 당국은 오미크론에 따른 코로나19 확진자가 2022년 1월 말에는 최대 2만 명에 달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정확하게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사회적 거리두기에 따른 식당 등의 영업 시작이 저녁 9시까지 앞당겨 진 것도 12월 중순부터다. 벼랑 끝으로 몰렸던 자영업자·소상공인들이 벼랑 끝에 매달리거나 벼랑 아래로 떨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정부가 추경 안을 국회에 제출한 건 지난달 24일. 과반 의석은 거대 여당은 한 달이 넘는 시간 동안은 무엇을 하고, 이제야 추경 편성도 아닌 추경 편성 '확대'를 주장하고 있는 것일까.
 

소급 적용 없는 손실보상법 밀어 붙인 여당

14조 원 대의 현재 추경안, 자영업자·소상공인을 지원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게 사실이다. 14조 원 모두가 자영업자 지원 등에 투입되는 것도 아니다. 자영업자·소상공인의 희생으로 일군 'K-방역', 해외에 자랑하면서도 자영업자들의 희생은 외면하다가 K-방역이 휘청대자 자영업자 등에게 더 큰 희생을 강요하는 지금까지의 과정을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자영업자 등에 대한 지원과 보상은 대폭 확대되어야 한다. 국민 과반이 자영업자 등에 대한 손실보상 확대를 위한 추경 편성에 동의하고 있다는 여론 조사들은 우리 사회가 자영업자 등의 아픔을 깊이 공감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이런 점에서 여당 의원들의 진정성까지 의심할 필요는 없다고 보지만, 여당 의원들의 '과거'는 '현재' 이들의 진정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건 어쩔 수 없다.

과반 의석 여당 의원들이 농성을 하는 이례적인 상황은 이미 지난해 있었다. 현재 추경 편성 확대의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는 자영업자에 대한 지원을 위해서였다. 지난해 5월 민주당 의원 40여 명은 소급 적용이 포함된 손실보상법 입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문에 이름을 올렸다. 현재 추경 편성 확대를 주장하며 농성을 벌이고 있는 여당 의원이 대표로 기자회견문을 읽기도 했다.

진짜 의지가 있었다면 과반 의석의 여당이 단독으로 법을 통과시킬 수도 있는데 무슨 기자회견이냐는 상식적인 질문은 잠시 뒤로 미뤄두자. 이후 보인 여당 의원들의 모습이 이 질문의 답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국회 상임위 소위에서 손실보상법의 소급 적용에 찬성하거나 기자회견까지 했던 여당 의원들은 막판에는 소급 적용이 배제된 법안 통과에 앞장서거나 동조했다. 당시 당 지도부가 전 국민 재난지원금 카드를 꺼내자, 손실 보상법의 소급 적용을 접었다는 평가가 나왔다. 전례가 손에 꼽을 정도인 입법 청문회에서 자영업자·소상공인의 아우성이 빗발쳤지만, 기립 표결까지 해 가며 법을 통과 시킨 것은 여당 의원들이었다. 손실보상법이 만들어진 후 법의 한계와 문제점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지만, 교정은 없었다. 그런데 지금 거대 여당 의원들이 추경 편성 '확대'의 명분으로 자영업자 지원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은 민망한 일이다.


(참고 : [취재파일] 코로나19 피해 보상 어려운 손실보상법, 그리고 국가의 책임,
[ 원문 링크 : https://news.sbs.co.kr/d/?id=N1006372538 ][취재파일] 민주당이 보여준 국회 입법의 민낯)
[ 원문 링크 : https://news.sbs.co.kr/d/?id=N1006439978 ]
 

과반 의석 거대 여당의 책임 정치

'과거'가 있는 여의도 정치인들이 '현재'의 자신들의 행동이 의심 받을 거라는 것을 모르지는 않을 터, 그러면 '현재'의 이유는 다른 곳에서 찾아야 한다. 당연히 이유는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대선일 것이다. 지난달 29일 열린 민주당 최고위원회. 공개 모두 발언을 한 6명 중 5명은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가 추경 편성 확대를 요구했다고 언급했다. "이재명 후보가 제안한 추경 예산 규모의 확대는 국민을 위한 진심을 담고 있다"(최강욱 최고위원, 1월 29일)고 밝힌 사람도 있었다.

이쯤 되면 추경 편성 확대는 이재명 후보의 치적 쌓기 용이 아닌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 과반 의석의 거대 여당 의원들이 정부를 상대로, 그리고 야당 대선 후보를 상대로 추경 편성 확대를 요구하고 있는 건, 현 정부와의 차별성 강조를 통해 높은 정권 교체 여론의 파고를 넘기 위한 정략적 행위가 아닌지 의심이 될 수밖에 없다. 추경 편성 확대의 명분을 관철 시킬 몇 번의 기회를 흘려보낸 거대 여당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특정인의 치적을 위해 이용될 지라도 당장 국민들에게 필요한 정책이라면 시행되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그 정책을 주장하는 쪽이 책임 있는 여당이라면, 특히나 과반 의석의 거대 여당이라면 단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으로는 모자라다. 현재의 필요성을 실현시킬 기회를 반복적으로 놓쳐왔다며 필요성 주장만으로는 더욱 공감을 사기 어렵다. 우리 사회는, 우리 국민들은, 그리고 훗날의 역사가들은 과반 의석의 가진 거대 여당 소속 의원들의 현재 농성을 어떻게 평가할까.

박원경 기자seagull@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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