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과반 의석 거대 여당의 추경 농성과 책임 정치
'농성'은 전통적으로 소수 야당의 투쟁 무기였다. '여대야소' 상황에서 국민 여론 환기를 통해 수적 열세를 극복해 보려는 전략적 활용 도구였다. 멀게는 군사 독재 시절 YS, DJ의 투쟁에서부터 가깝게는 '코로나19 손실보상법'과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를 위한 정의당의 농성, '대장동 특검 도입'을 촉구하는 국민의힘 농성까지, 해당 이슈에 대한 동의 여부를 떠나 '농성'은 소수 야당의 투쟁 수단으로 용인될 여지가 많았다.
추경 편성 '확대'를 요구하는 거대 여당의 농성
물론, 코로나19와 같이 예상치 못 했던 상황이 발생할 수 있고, 예상치 못 한 상황에 정부와 집권 여당은 대처해야 할 책무가 있다. 대처 방안으로서 필요하다면 1월 추경도 얼마든지 논의될 수 있다. 하지만, 선행되어야 할 것은 실책에 대한 책임있는 사과다. 여당은 연초 추경 편성 요구에 이은 현재의 추경 편성 '확대'의 이유로 오미크론 확산을 들고 있다.
현재의 상황은 2022년 예산안 국회통과 시점에는 예상 못 했던 일일까. 그렇지 않다. 지난해 11월 초, 오미크론 변이가 해외에서 첫 발견된 이래 "오미크론의 국내 유입은 시간문제"라는 예측은 지배적이었다. 오미크론의 전파력이 기존 델타의 몇 배에 달하고, 일단 유입되면 우세종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관측도 여러 곳에서 제기됐다. 지난해 12월 1일에는 국내에서 첫 오미크론 확진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정부가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한 9월과 달리, 국회에서 오미크론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대비할 시간은 있었던 것이다.
질병청장 "1월 중 확진자 최대 2만 명 가능성"
소급 적용 없는 손실보상법 밀어 붙인 여당
과반 의석 여당 의원들이 농성을 하는 이례적인 상황은 이미 지난해 있었다. 현재 추경 편성 확대의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는 자영업자에 대한 지원을 위해서였다. 지난해 5월 민주당 의원 40여 명은 소급 적용이 포함된 손실보상법 입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문에 이름을 올렸다. 현재 추경 편성 확대를 주장하며 농성을 벌이고 있는 여당 의원이 대표로 기자회견문을 읽기도 했다.
진짜 의지가 있었다면 과반 의석의 여당이 단독으로 법을 통과시킬 수도 있는데 무슨 기자회견이냐는 상식적인 질문은 잠시 뒤로 미뤄두자. 이후 보인 여당 의원들의 모습이 이 질문의 답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국회 상임위 소위에서 손실보상법의 소급 적용에 찬성하거나 기자회견까지 했던 여당 의원들은 막판에는 소급 적용이 배제된 법안 통과에 앞장서거나 동조했다. 당시 당 지도부가 전 국민 재난지원금 카드를 꺼내자, 손실 보상법의 소급 적용을 접었다는 평가가 나왔다. 전례가 손에 꼽을 정도인 입법 청문회에서 자영업자·소상공인의 아우성이 빗발쳤지만, 기립 표결까지 해 가며 법을 통과 시킨 것은 여당 의원들이었다. 손실보상법이 만들어진 후 법의 한계와 문제점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지만, 교정은 없었다. 그런데 지금 거대 여당 의원들이 추경 편성 '확대'의 명분으로 자영업자 지원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은 민망한 일이다.
(참고 : [취재파일] 코로나19 피해 보상 어려운 손실보상법, 그리고 국가의 책임,
[ 원문 링크 : https://news.sbs.co.kr/d/?id=N1006372538 ][취재파일] 민주당이 보여준 국회 입법의 민낯)
[ 원문 링크 : https://news.sbs.co.kr/d/?id=N1006439978 ]
과반 의석 거대 여당의 책임 정치
이쯤 되면 추경 편성 확대는 이재명 후보의 치적 쌓기 용이 아닌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 과반 의석의 거대 여당 의원들이 정부를 상대로, 그리고 야당 대선 후보를 상대로 추경 편성 확대를 요구하고 있는 건, 현 정부와의 차별성 강조를 통해 높은 정권 교체 여론의 파고를 넘기 위한 정략적 행위가 아닌지 의심이 될 수밖에 없다. 추경 편성 확대의 명분을 관철 시킬 몇 번의 기회를 흘려보낸 거대 여당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특정인의 치적을 위해 이용될 지라도 당장 국민들에게 필요한 정책이라면 시행되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그 정책을 주장하는 쪽이 책임 있는 여당이라면, 특히나 과반 의석의 거대 여당이라면 단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으로는 모자라다. 현재의 필요성을 실현시킬 기회를 반복적으로 놓쳐왔다며 필요성 주장만으로는 더욱 공감을 사기 어렵다. 우리 사회는, 우리 국민들은, 그리고 훗날의 역사가들은 과반 의석의 가진 거대 여당 소속 의원들의 현재 농성을 어떻게 평가할까.
박원경 기자seagull@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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