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의 바다'의 충격부터 '악의 마음'의 열정까지, 배우 정순원을 만나다[인터뷰S]
[스포티비뉴스=김현록 기자]“그 사람이 이 사람이었어?”
요즘 배우 정순원을 가장 기쁘게 하는 반응이다. 2006년 데뷔 이후 어느덧 배우 생활 17년차. 하반기 들어 여러 출연작이 연이어 공개된 2021년은 정순원에게 “저라는 사람이 누구인지 기억되고 각인되는 시간”이었다. KBS2 '대박부동산'을 시작으로 티빙 ‘유미의 세포들’의 유미네 상사 남과장, tvN ‘어사와 조이’의 인간말종 차말종, 넷플릭스 ‘고요의 바다’의 엔지니어 공수찬에 이어 이제 파트1을 마무리한 SBS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의 형사 남일영까지. 정순원은 다채로운 장르를 넘나들면서도 또렷한 개성을 풍기는 캐릭터들로 시청자와 만났다.
“이전엔 ’나 여기 있어요’ 하는 것 같았다면, 지금은 그런 마음이 많이 덜어진 것 같아요. 많은 배우분들 모두 마찬가지지만, 어디선가 발을 움직이고 있으면 언젠가는 좋은 작품, 좋은 역할 만날 때가 온다는 걸 선배들을 보며 느꼈어요.”
정순원은 “막연한 동경심이 있었던 것 같다”며 처음 연기를 꿈꿨던 시절을 떠올렸다. 동두천 시골에서 유치원을 다니던 때부터 TV에 나오고 싶었던 막연한 꿈이 현실이 된 건 사촌누나의 권유에 계원예술고에 진학하면서부터. 고민하던 시절 찾아간 고등학교 은사님의 이야기도 그를 자극했다. “‘대학로 가서 오디션 봐. 니가 할 게 뭐가 있어, 할 줄 아는 게 연기밖에 없는 놈이’ 하셨죠. 바로 필드로 나가라고 하신 거예요.”
그로부터 정순원은 쉼없이 연기하다시피 했다. 군에서도 2008년 육군 최초 뮤지컬 ‘마인’ 팀에서 강타 양동근 고 임윤택 등과 전국을 돌며 무대 경험을 쌓았다. 연극 무대에 섰던 힘들었던 시절, 방송 영화 뮤지컬에 적응하느라 고생했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단 한번도 연기 아닌 다른 걸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었단다. 그렇게 우직하고도 꾸준하게 한 길을 걷다 보니 지금에 왔다.
넷플릭스 ‘고요의 바다’는 특히 퇴장이 강렬했다. 폐쇄된 달 기지의 문을 열었던 엔지니어 공수찬이 그의 몫. 대원들 중 처음으로 '월수'에 감염된 그는 온 몸으로 물을 토하며 죽음을 맞아 그 신비롭고도 무시무시한 힘을 드러내 보인다. 힘겹게 걸음을 옮기던 그가 쓰러져 콸콸 물을 쏟아내는 장면은 '고요의 바다'를 통틀어 가장 충격적으로 다가오는 장면이자, 본격적인 사건의 출발을 알리는 장면이기도 하다.
"월수에 감염이 되면 어떤 증상이 생기고 어떻게 죽어가는지를 보여주는 게 정순원이란 배우가 받은 미션이었어요. 월수가 감염됐을 땐 물 위로 콧구멍 1mm만 나와있을 정도의 찰랑거림이 몸 안에 있을 정도의 가쁜 숨을 생각했어요. 이미 제가 아닌 상태로 근육과 혈액이 모두 월수에 잠식했다가 월수와 제가 분리되는 거라고요. 가장 충격적으로 보이고 싶었어요."
공수찬이 물을 토해내는 장면의 경우, 호스 배관을 통해 정순원의 입 안으로 물줄기가 들어오면 그것을 입으로 물기둥처럼 만들어 쏟아붓는 식으로 촬영했다. 사인이 맞지 않으면 숨조차 쉴 수 없어 위험할 수 있기에 모든 사람이 긴장한 가운데 촬영이 이뤄졌다. 잘 해내야 한다는 두려움과 초조함도 있었다. 흠뻑 젖어 몸살이 다 났을 정도. 이어진 수중촬영 또한 만만치 않았다. 스쿠버다이빙 자격증이 있는 정순원이지만, 거두운 물 속에 맨몸로 들어가니 공포스러웠다. 그렇게 공을 들여 완성한 장면은 '고요의 바다'가 공개되자마자 반응이 뜨거웠다. 그저 '나쁘지 않게 했구나' 안도했다는 정순원은 18개월된 딸과 아내가 자는 동안 혼자 그 장면을 혼자 확인하며 눈물이 났다 했다.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을 빼놓을 수 없다. 범죄자프로파일링의 태동기를 그린 이 작품에서 정순원은 기동수사대 소속이자 팀장 윤태구(김소진)과 팀을 이뤄 움직이는 형사 남일영 역을 맡았다. 눈치도 행동력도 100단인 에이스 형사가 그대로 튀어나온 듯한 느낌이다.
그에게 이 작품 이야기를 처음 한 건 다름아닌 파트너 김소진. 뮤지컬 '그날들'과 영화 '스프링송'을 함께했던 그녀가 '네 생각이 났다'며 연락을 해 왔고, 책과 대본을 읽은 뒤엔 '무슨 역할이든 이 작품에 함께하고 싶다' 했을 만큼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단다. 다른 출연진과 인연도 남다른데, 국영수 역 진선규는 한 소속사에서 한솥밥을 먹는 사이다. 송하영 역 김남길과는 영화 '어는 날'을 함께 찍었다. 당시만 해도 주연이었던 김남길이 어려웠던 시절, 땡볕에 있던 그의 이름을 부르며 그늘로 불러들인 '츤데레' 배우의 넒은 마음씀씀이를 그는 따뜻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김원해 이대연, 그 베테랑들이 입체감있게 현장을 챙겨주시고, 선규형 소진 누나가 디테일하게 연기하시고, 남길이 형이 또 이끌어가는 현장 자체가 너무 즈겁고 재미있어요. 심장이 뜁니다. 한 20편 더 했으면 좋겠다 할 만큼요. 하지만 시즌2를 하며 대한민국을 뒤흔든 사건들을 그저 '엔터'로 쓰지 말자고 이야기하곤 해요. 우리가 이 사건을 다루더라도 남겨진 사람들이 있다고. 대본을 읽으면서 저도 많이 울었어요. 저도 결혼하고 아기가 있다보니까 아동 살인사건이 나오는데 마음이 너무 이입되면서 미칠 것 같더라고요."
그런 진심으로 연기하기에 정순원의 캐릭터들이 그렇게 살아 움직이는 게 아닐까. 작품을 만드는 이들도, 작품을 보는 시청자들도 그를 점점 더 알아보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 점점 더 바빠져 지난 하반기 가장 바쁜 시간을 보냈다는 정순원은 "몸은 힘들어도 행복하다"며 "그래도 더 달리고 싶다"고 환하게 웃었다.
"소진 누나, 선규 형을 보면서 생각해요. 그 분들이 상을 위해 노력한 것이 아니잖아요. 그저 늘 좋은 사람 좋은 배우로 존재했던 거죠. 요리사는 요리를 잘 하면 되듯, 배우는 그저 연기를 잘 하면 된다고 생각하면서 꾸준히 열심히 길을 걸어가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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