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당이 깨겠다는 '진보의 금기'란?

전혜원 기자 2022. 2. 1. 0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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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정 정의당 후보가 모든 일정을 중단하고 칩거하다 닷새 만인 1월17일 복귀했다. 기자회견에서 그는 "진보의 금기를 공론화하겠다"라고 말했다. 선대위 해체 뒤 선거 캠페인을 총괄하는 종합상황실장으로 임명된 조성주(44) 현 정의당 정책위 부의장에게 '진보의 금기'를 물었다.

더 힘든 사람들을 위한 책임 있는 대안에 대해 그동안은 진보 안의 분열이나 문제 제기가 두려워서 얘기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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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대선] 2022 대선 의제 ③ 비정규직과 연공급제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가 "진보의 금기를 공론화하겠다"라고 말했다. 그중 하나가 연공서열제 개혁이다. 선거 캠페인을 총괄하는 조성주 종합상황실장에게 그 배경에 대해 물었다.
조성주 종합상황실장은 “연공서열제가 노동시장의 전반적 문제, 비정규직 문제와 깊이 연관되어 있다”라고 말했다.ⓒ시사IN 조남진

심상정 정의당 후보가 모든 일정을 중단하고 칩거하다 닷새 만인 1월17일 복귀했다. 기자회견에서 그는 “진보의 금기를 공론화하겠다”라고 말했다. 선대위 해체 뒤 선거 캠페인을 총괄하는 종합상황실장으로 임명된 조성주(44) 현 정의당 정책위 부의장에게 ‘진보의 금기’를 물었다.

대선 52일 남기고 ‘진보의 금기’를 말했다.

낮은 지지율 때문에 숙고에 들어갔다기보다는, 시민들이 정의당을 바라보는 시선이 예전 같지 않다는 느낌을 후보가 받았다. 우리는 올바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왜 더 이상 신뢰를 받지 못하는가. 시민들이 정의당에 이렇게 질문하고 있는 것 같다. ‘너희가 진짜 사회적 약자들 편이야?’ 진보정치도 정치잖나. 더 힘든 사람들을 위한 책임 있는 대안에 대해 그동안은 진보 안의 분열이나 문제 제기가 두려워서 얘기하지 못했다. 이걸 솔직하게 얘기해야만, 진보정당이 더 힘든 사람들의 편에 서 있는 정당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

대표적인 ‘진보의 금기’로 ‘연공서열제 임금체계’를 들었다.

연공서열제는 단순히 ‘왜 부장님은 나보다 세 배 더 받나요’를 넘어서, 우리 노동시장의 전반적 문제, 비정규직 문제하고도 깊이 연관되어 있다. 호봉제로 대표되는 연공서열제는 ‘동일노동 동일임금’이 아니라 ‘동일입사 동일임금’이다. 중소기업은 임금체계도 아예 없는 곳이 많다. 한국의 대·중소기업 간 분단선이 거의 흡사하게 이 선에서 나뉜다. 그동안 진보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대기업-중소기업 간 격차 해소를 분단된 노동시장의 대안으로 이야기해왔다. 그런데 그게 가능하기 위한 조건이 뭔가? 이 질문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는 게 연공서열제인데, 이건 건드리지 않으면서 ‘정규직화’나 ‘격차 해소’가 대안인 것처럼 주장했다.

연공서열제 개혁이 왜 진보의 금기였나?

당에서도 문제의식이 없던 건 아닌데, 공론화하지 못했다. 한국의 노조가 사실은 연공서열제 임금체계를 적용받는 기업에 많이 조직되어 있는 게 현실이잖나. 진보정당의 기반은 조직노동 진영이었기에, 학계나 공론장에서는 논의되었지만 우리는 이야기하지 못했다. 우리 안의 금기였다.

어떻게 깨겠다는 건가?

구체적 대안은 논의를 더 거쳐야겠지만, 아무래도 직무급(하는 일에 따라 임금을 지급하는 것) 성격의 임금체계를 마냥 외면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직무급도 나라마다 형태가 다르다. 한국적 상황에서 어떻게 한 기업만이 아니라 한 업종이나 산업에 걸쳐 (임금체계가) 적용되게 만들지 대안을 진지하게 검토할 때다.

양대 노총은 연공서열제를 선호하는데?

설득해야 한다. 심상정 후보는 개신교계 단체를 찾아갔을 때에도 차별금지법 이슈를 회피하지 않았다. 임금은 노사 합의 사항이지만, 사회와 정부가 충분히 리드할 수 있다. 공무원이나 공공부문부터 괜찮은 모델을 만들어서 확산시켜나갈 수 있다. 이 복잡하고 분단된 노동시장에서 비정규직 철폐,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라는 구호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건 맞지 않는다. 이 구호를 정당이 외친다고 해서 현실의 불평등과 차별이 해결된다고 누구도 생각하지 않고, 실제로 작동하지도 않았다. 이제는 실질적인 대안을 이야기해야 한다.

또 다른 진보의 금기로 연금개혁을 꼽았다.

한쪽에선 국민연금 재정 고갈을 문제 삼고, 다른 쪽에서는 ‘국민연금으로 노후가 보장되느냐’라고 지적한다. 지금까지 진보는 ‘소득대체율(일할 때 벌던 소득 대비 연금 수급액의 비율)’을 높이는 데 집중해왔다. 그런데 소득대체율을 올리려면 보험료율을 훨씬 더 많이 인상해야 한다. 재정 안정도 고려해야 하니까. 진보가 이 얘기를 책임 있게 꺼내지 않았다. 보험료는 거의 올리지 않으면서 소득대체율만 올리자는 식이었다. 심 후보는 미래세대의 부담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해야 한다는 의제를 던진 거다. 또한 노동시장의 불평등이 국민연금에도 반영된다(소득과 고용안정성이 높을수록 연금도 더 많이 받는다). 국민연금뿐 아니라 기초연금, 시민최저소득 등 다른 방식의 노후소득 보장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공무원·군인·사학연금과 국민연금 통합은?

공무원이 억울한 측면도 있다. 그들 잘못이 아니라 제도가 그렇게 설계돼 있었다. 보험료도 훨씬 많이 내왔다. 과거 공무원연금을 설계할 때는 낮은 임금에 대한 후불임금 성격이 있었다. 지금은 노동시장 변화로 공무원이 고용도 안정되고, 연금까지 더 받는다. (공무원연금 등의) 재정 안정화 측면에서도 통합이 맞다.

진보의 금기 중 하나로 증세도 언급했다.

전통적으로 진보정당은 법인세 인상이나 부자증세를 이야기해왔다. 기초연금을 비롯해 복지 확대를 위해서는 법인세 인상이나 부자증세, 혹은 세출 구조조정만으로는 부족하다. 중산층도 더 부담해야 한다. 부자만이 아니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증세는 정권을 유지하는 입장에서는 자폭 행위”라고 했는데, 증세를 안 하면 국가가 자폭한다. 민감하고 어려운 문제를 솔직하게 얘기하고 설득하는 게 정치의 역할이라고 심상정 후보는 생각한다.

민주당이나 국민의당과 뭐가 다른가?

민주당은 공정과 상식이라는 틀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고, 국민의당은 오른쪽에서의 변화를 이야기한다. 정의당은 왼쪽에서 불평등과 차별, 기후위기를 말하는 점이 다르다. 다만 현재의 불평등이 거대 양당만의 책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쩌면 우리 역시, 용기 내서 해야 할 말을 자꾸 늦추거나 모호하게 해왔기 때문에 불평등을 제어하는 힘을 약하게 만들고, 민주당과의 차이를 만들지 못한 것 아닌가. 그런 고민을 후보가 화두로 던졌고, 이를 계기로 당내에서 논쟁이 공론화되었다. 민주주의 선거의 장점이다.

조직노동의 반대를 넘어서기 쉽지 않을 듯하다. 노조를 개혁의 대상으로 보나?

아니다. 개혁의 동반자다. 그러니까 설득해야 하지 않겠나. 오히려 지금 연대의 가치를 회복해야 노동자들의 일자리도 더 안정적일 수 있다. 더 평등해야 더 지속 가능하다. 노동조합도 진보정당도 마찬가지다.

젠더 갈등이 이슈가 된 첫 선거라고들 한다.

과거 정치가 지역감정을 심화시켰듯, 정치인들이 젠더 갈등을 부추기는 흐름이 있다. 이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라도 노동시장에서의 불평등과 경쟁 격화 양상에 무심해서는 안 된다. 연공서열제 임금체계가 (경력단절 문제 등으로) 성별 임금격차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음이 여러 지표로 드러나고 있지 않나. 그동안 우리가 이 부분을 많이 조명하지 못해서 표피적인 젠더 갈등만 부각됐다. 지금 젠더 갈등에 대한 본질적이고 중요한 대안 중 하나가 노동시장 불평등 완화다.

왜 한국 사회에 진보정당이 필요한가?

여전히 정치에 반영되지 않는 ‘지워진 목소리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집이 없는 43%의 세입자들. 그렇기에 진보정당이 생존해 있다. 성원을 받고 때로는 채찍질도 당한다. 사실 지금 정당들이 하고 있는 것은 정치가 아니지 않나? 증오와 조롱을 배설하는 거지. 우리는 가족 논란이나 포퓰리즘, 밈(다양하게 복제되는 파급력이 있는 콘텐츠)으로 선거하지 않겠다. 우리 목소리를 필요로 하는 곳에서 보통 사람의 얼굴을 보고 말하겠다. 정치를 정치답게 하겠다.

전혜원 기자 wo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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