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하는 자체가 기쁨".. 유럽 오페라 무대 한 획 그은 한국인

박성준 2022. 1. 30. 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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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 왕립 오페라단 종신단원 고경일 성악가, 20년 만에 고국 무대
악마 메피스토펠레스를 열연해서 ‘몸이 휘청일 정도’로 큰 갈채를 받았다는 고경일 성악가의 2021년 ‘파우스트’ 공연 장면. 덴마크 왕립 오페라단 홈페이지
“너는 목소리가 특이한데 성악을 해보면 어떻겠니. 한번 들어보라”며 교회 성가대 지휘자가 음반을 준 게 오페라와 첫 만남이었다. ‘이런 세계가 있었나’ 온몸에 소름이 돋고 성악의 길에 심취했다. 예중·예고에서 명문대로 이어지는 엘리트 코스를 밟은 건 아니었지만 나날이 실력이 향상했다. 국내 콩쿠르에서 계속 좋은 성적을 거두면서 ‘그래, 한번 도전해보자’는 마음이 생겨서 지도 한장 들고 무작정 이탈리아로 갔다. 그래서 처음 참가한 콩쿠르가 베르디 국제성악콩쿠르였고 ‘세기의 테너’ 호세 카레라스가 참여한 심사단은 그를 결선 진출자로 뽑았다. 화려한 음색과는 거리가 먼 베이스인 점을 고려하면 외국 콩쿠르 첫 도전에서 결선 진출은 훌륭한 성과였다. 콩쿠르 도전은 유학과 현지 무대 활동으로 이어지면서 프랑스에서 6년, 독일에서 8년을 노래 불렀다. 그리고 다시 보금자리를 튼 곳이 덴마크 왕립 오페라단. 무려 1748년에 설립된 전통과 명망의 오페라단 전속가수로 노래 부르게 된 게 ‘성악가 고경일’이 만들어 온 스토리다. “저는 무조건 부딪히는 스타일입니다. 나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해서 망하는 경우도 있지만 나 자신을 믿어서 잘되는 경우도 있는데 저는 그쪽이라고 해야 할까요.”

동양인을 받아들이는 건 오페라단 274년 역사에서 흔치 않은 일이다. 보통 아리아 한두곡 부르는 오디션은 네곡을 부르는 데서 끝나지 않고 “다음 주에 다른 노래를 가져와 보아라”는 추가 오디션으로 이어졌을 정도다. “그래서 또 갔죠. 두 곡 부르고 나니 바로 계약하자더군요. 그 일주일 동안 엄청난 회의를 했겠죠. 대신 1년짜리 계약만 일단 주겠다더군요.”

유럽 오페라 무대에 서는 성악가를 크게 나누자면 특정 오페라단·극장에 속한 전속가수, 그리고 여러 공연에 따로 초청받아 무대에 서는 프리랜서 가수로 나눌 수 있다. 전속가수, 솔리스트는 또 시즌별로 계약을 새로 하거나 갱신하는 게 보통이다. 세계일보와 인터뷰에서 고경일은 “1년간 모든 작품에서 성공하니 다시 1년짜리(계약)를 주더라. 처음에 같이 들어간 동료들이 있는데 자꾸 ‘나 잘렸어’하면서 나갔다. 그래서 저도 ‘언젠가는 나가겠구나’하고 마음의 준비를 했다”고 말했다. “오페라 극장은 당연히 그런 거에요. 그런데 어느 날 극장장이 부르더라고요. 그래서 엄청 긴장하고 갔는데 칭찬을 엄청나게 하더니 ‘종신단원 계약’을 주겠다는 거에요. 전혀 예상을 못했죠. 내 귀를 의심했습니다. 정말 솔리스트가 종신 단원이 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에요.”

그렇게 고경일은 2019년 덴마크 왕립 오페라단 역사상 첫 동양인 종신단원이 됐다. 얼마나 대단한 성취인지는 유럽 오페라 무대에서 현재 종신단원으로 활동 중인 우리나라 성악가 숫자가 말해준다. 성악강국인데도 고경일말곤 독일 쾰른 오페라극장의 사무엘 윤(윤태현), 독일 함부르크 국립 오페라극장의 헬렌 권(권해선), 독일 할레 극장 박기현 뿐이다.
고경일 성악가의 2018년 ‘일 트로바토레’ 공연 장면. 덴마크 왕립 오페라단 홈페이지
고경일은 자신이 동양인 성악가의 벽을 뚫을 수 있었던 이유로 성실함과 적극성을 꼽았다. 철저한 자기 관리로 항상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고, 연습을 성실히 준비하고 빠짐 없이 참여하고, 연출가, 지휘자 및 동료들과 활발하게 소통하려고 노력한 게 가장 큰 자산이었다는 설명이다. “비유하자면 우리나라 국악원에 갑자기 외국인이 들어와서 ‘흥보가’를 부른다면 주변이 어떻게 반응했겠어요. 처음엔 서먹했을 수도 있잖아요. 차갑게 대하는 이도 있고, 그런데 매번 밝게 생활하고 무대에 당당하게 오르고 프로덕션마다 잘 부르고 칭찬받으니 단원들도 다 마음의 문을 열더라고요. 물론 길거리에야 몰상식한 인종차별자들이 코로나 시대에 더 많아졌지만…”

격의 없이 지난 일을 이야기하는 모습에선 객지에서 홀로 길을 뚫어온 한 예술가의 근성을 이루고 있는 매사 낙천적인 성격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자신의 노래가 예술로서 인정받을 수 있을지 언제 확신했는지 묻자 고경일은 “무대에 서는 게 행복했고 노래하는 자체가 기쁨이었다”고 말했다. “처음 노래를 배울 때 콩쿠르에 나가면 절반 이상은 수상하니깐 저의 천직인가보다 생각했어요. 노래로 무대에 서는 매력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었습니다.”

많게는 1년에 열네편 정도를 무대에 올리는 덴마크 왕립오페라단에서 그는 서너 작품에 출연한다. 자신의 무대에 대해 “연기를 기가 막히게 한다. 연기는 타고나는 것 같다”고 너스레를 떨었는데 마주 앉아 대화하면서 전해지는 ‘끼’가 과장 같지 않다.

작품 하나를 위한 연습 기간은 보통 여섯주. 베이스에게 주어지는 어지간한 배역은 다 했는데 바그너 작품 출연은 아직 기회가 없었다. “소리가 더 익으면 해보고 싶다”는 그에게 아직도 발전의 여지가 남은 것인지 물었다. “엔리코 카루소가 ‘성악가는 관에 들어갈 때까지 연구해야 한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테크닉적으로 자유로워져야 하는 거죠.”

마르그레테 2세 덴마크 여왕의 종신예술가로서 이제 고경일에겐 주어지는 건 객석의 갈채. 그리고 5년 후엔 훈장을 받는다. 종신이라지만 60세까지 무대에 오를 수 있으며 연금수령 나이가 65세인 국민보다 더 먼저 연금을 받게 된다. 베이스로 무대에 서는 직업 특성을 묻자 “모든 오페라 스포트라이트는 테너가 다 받는다”고 말문을 열었다. “오페라에선 대부분 테너가 주인공으로 소프라노와 사랑을 하고 영웅으로 주목을 받아요. 베이스는 살인자, 악마, 아니면 왕이긴 한데 항상 테너에게 사랑하는 여인을 뺏기고 밤에 혼자서 우는 역할이죠. 공연 중엔 배역에 몰입하는데 주로 이런 역할을 하다 보니 한동안 일상에서도 인상을 쓰고 다니곤 하죠. 하하하.”
서울시립교향악단 1월 정기공연에서 모처럼 고국 무대에 선 덴마크 왕립오페라단 종신단원 고경일 성악가. 서울시향 제공 
고경일은 지난 29, 30일 고국을 떠난 지 이십여년 만에 처음 예술의전당 무대에 섰다. 서울시향의 올해 첫 정기공연 모차르트 레퀴엠 연주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사실상 국내 데뷔 공연이다. 서울시향 음악감독 오스모 벤스케가 요청해 성사된 금의환향이다. “프랑스에서 여러 번 공연한 작품이었죠. 새해를 시작하면서 ‘레퀴엠’을 하는 의미를 생각하며 출연 계약을 했습니다. 코로나 시대에 희생된 영혼을 달래고 모두를 위로하는 작품 아닐까요.“

현재 그의 극장에선 모차르트 오페라 ‘돈 조반니’가 한창 공연 중이다. 출연 일정 조정까지 해준 극장장 배려로 모처럼 고국 무대에 설 기회를 놓치지 않을 수 있었다. 지난달 20일 공연을 마친 다음 날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고, 이제 다시 극장으로 돌아가 6일 공연에 출연해야 한다. 

“저의 인생은 상상하지 못하는 일들이 계속 벌어지고 있습니다. 처음에 유학 갈 때는 그냥 한 3, 4년 하고 들어가겠지. 그런 생각이었는데 뭐가 계속 계약 연장이 되니까 올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이렇게 20년이라는 세월이 이렇게 벌써 금방 지나가 버렸습니다. 행복하고 감사합니다. 정말 많은 일이 있었고 포기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그냥 버텼더니 또 이렇게 고국 공연처럼 좋은 일이 생기니 진짜 감사한 마음입니다.”

박성준 기자 alex@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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