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하는 자체가 기쁨".. 유럽 오페라 무대 한 획 그은 한국인
동양인을 받아들이는 건 오페라단 274년 역사에서 흔치 않은 일이다. 보통 아리아 한두곡 부르는 오디션은 네곡을 부르는 데서 끝나지 않고 “다음 주에 다른 노래를 가져와 보아라”는 추가 오디션으로 이어졌을 정도다. “그래서 또 갔죠. 두 곡 부르고 나니 바로 계약하자더군요. 그 일주일 동안 엄청난 회의를 했겠죠. 대신 1년짜리 계약만 일단 주겠다더군요.”
유럽 오페라 무대에 서는 성악가를 크게 나누자면 특정 오페라단·극장에 속한 전속가수, 그리고 여러 공연에 따로 초청받아 무대에 서는 프리랜서 가수로 나눌 수 있다. 전속가수, 솔리스트는 또 시즌별로 계약을 새로 하거나 갱신하는 게 보통이다. 세계일보와 인터뷰에서 고경일은 “1년간 모든 작품에서 성공하니 다시 1년짜리(계약)를 주더라. 처음에 같이 들어간 동료들이 있는데 자꾸 ‘나 잘렸어’하면서 나갔다. 그래서 저도 ‘언젠가는 나가겠구나’하고 마음의 준비를 했다”고 말했다. “오페라 극장은 당연히 그런 거에요. 그런데 어느 날 극장장이 부르더라고요. 그래서 엄청 긴장하고 갔는데 칭찬을 엄청나게 하더니 ‘종신단원 계약’을 주겠다는 거에요. 전혀 예상을 못했죠. 내 귀를 의심했습니다. 정말 솔리스트가 종신 단원이 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에요.”
격의 없이 지난 일을 이야기하는 모습에선 객지에서 홀로 길을 뚫어온 한 예술가의 근성을 이루고 있는 매사 낙천적인 성격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자신의 노래가 예술로서 인정받을 수 있을지 언제 확신했는지 묻자 고경일은 “무대에 서는 게 행복했고 노래하는 자체가 기쁨이었다”고 말했다. “처음 노래를 배울 때 콩쿠르에 나가면 절반 이상은 수상하니깐 저의 천직인가보다 생각했어요. 노래로 무대에 서는 매력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었습니다.”
많게는 1년에 열네편 정도를 무대에 올리는 덴마크 왕립오페라단에서 그는 서너 작품에 출연한다. 자신의 무대에 대해 “연기를 기가 막히게 한다. 연기는 타고나는 것 같다”고 너스레를 떨었는데 마주 앉아 대화하면서 전해지는 ‘끼’가 과장 같지 않다.
작품 하나를 위한 연습 기간은 보통 여섯주. 베이스에게 주어지는 어지간한 배역은 다 했는데 바그너 작품 출연은 아직 기회가 없었다. “소리가 더 익으면 해보고 싶다”는 그에게 아직도 발전의 여지가 남은 것인지 물었다. “엔리코 카루소가 ‘성악가는 관에 들어갈 때까지 연구해야 한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테크닉적으로 자유로워져야 하는 거죠.”
현재 그의 극장에선 모차르트 오페라 ‘돈 조반니’가 한창 공연 중이다. 출연 일정 조정까지 해준 극장장 배려로 모처럼 고국 무대에 설 기회를 놓치지 않을 수 있었다. 지난달 20일 공연을 마친 다음 날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고, 이제 다시 극장으로 돌아가 6일 공연에 출연해야 한다.
“저의 인생은 상상하지 못하는 일들이 계속 벌어지고 있습니다. 처음에 유학 갈 때는 그냥 한 3, 4년 하고 들어가겠지. 그런 생각이었는데 뭐가 계속 계약 연장이 되니까 올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이렇게 20년이라는 세월이 이렇게 벌써 금방 지나가 버렸습니다. 행복하고 감사합니다. 정말 많은 일이 있었고 포기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그냥 버텼더니 또 이렇게 고국 공연처럼 좋은 일이 생기니 진짜 감사한 마음입니다.”
박성준 기자 alex@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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