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 포장재 없는 '명절 장보기' 도전해보셨나요?

김민제 2022. 1. 30. 10:4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지난 추석 이후 폐플라스틱 69.5% 증가
플라스틱 포장 없는 설 장보기 해보니
대형마트는 포장 판매가 '기본값'..
시장선 '호의'로 비닐 줘 '첩첩산중'
지난 26일 서울 마포구 대형마트와 전통시장을 돌며 플라스틱 포장재 없이 장보기에 도전해봤다. 포장 판매 중인 제품이 많아 플라스틱 포장재를 전혀 사용하지 않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김민제 기자

명절은 각종 쓰레기가 넘쳐나는 기간이다. 식품 포장재인 플라스틱 쓰레기가 특히 많다. 지난해 추석 연휴 환경부가 전국 민간선별장 154곳을 조사한 결과, 연휴 이후(9월23일~29일) 폐플라스틱류 반입량은 이전(9월9일~15일) 대비 69.5% 증가했다.

이래도 되는 것인가하는 ‘현타(현실자각타임)’가 온 소비자들의 문제의식이 커지면서 쓰레기 발생량을 줄이려는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플라스틱 포장재를 쓰지 않고 장을 보려는 시도도 그중 하나다. 화려한 포장이 넘쳐나는 한국 소비 환경에서 과연 가능한 일일까. 지난 26일, 플라스틱 포장재를 쓰지 않고 명절 식재료를 사러 나섰다.

‘제로웨이스트’ 장 보기 가능할까?

지난 26일 오후, 서울 마포구의 홈플러스 월드컵점은 설을 앞두고 들뜬 분위기였다. 판촉 행사 중인 직원들 사이로 명절 선물세트가 존재감을 뽐냈다. 색색의 포장재가 더해져 눈길을 사로잡았다. 일반 식품 코너에 진열된 과일, 야채, 해산물도 비닐 포장재를 입은 채였다. 소비자가 할 일은 물건을 집어 그대로 카트에 넣는 것이 전부다. 편리함으로 충만한 마트인 셈인데 식재료가 쌓인 카트를 보면 어딘가 찜찜하다. ‘이렇게 많은 플라스틱을 쓸 생각은 없었는데…’ 같은 후회다. ‘플라스틱을 사지 않을 권리’가 사라진 마트의 흔한 풍경이다.

지난 26일 서울 마포구 홈플러스 매장에 진열된 명절 선물세트. 김민제 기자

먼저 다회용기 5개와 장바구니 1개를 챙겨 홈플러스 월드컵점으로 향했다. 떡국을 만드는 데 필요한 재료인 떡, 소고기, 파, 마늘, 소고기, 각종 고명, 참기름 등을 다회용기에 담아오자는 목표였다. 대형마트에서는 발길이 닿는 곳마다 난관이 있었다. 정육 코너의 고기는 손질되어 팩에 담겨있었고 국물용 멸치는 육수용 팩과 겉면의 비닐봉지로 이중 포장되어 있었다. 떡도 진공 포장되어 있었다. 마늘, 파 등 야채 역시 비닐봉지로 개별 포장을 마쳤다. 이곳에는 리필스테이션인 ‘제로마켓’ 1호점이 지난해 12월 문을 열었으나 세제 등 세척용품 위주로 취급해 선택의 폭이 넓지 않았다.

서울 마포구 홈플러스 매장 2층에 위치한 리필스테이션. 김민제 기자

이미 예쁘게 두겹씩 포장되어 있는 마트 상품들

맞은편에 위치한 마포 농수산물 시장은 상황이 나은 편이었다. 미리 포장된 채 진열된 제품이 대형마트에 비해 확연히 적었다. 떡집을 찾아 다회용기를 내밀자 주인은 “비닐을 안 쓰면 좋은 일”이라며 호응했다. 야채 가게에서도 다회용기 크기에 맞춰 마늘 등을 담아줬다. 다만 정육점의 경우 대형마트와 마찬가지로 이미 손질된 고기가 진열되어 있었다. 다회용기에 담아가겠다고 요청하자 포장을 뜯어 그대로 옮겨 담는 수밖에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판매자의 배려가 걸림돌이 되기도 했다. 대파를 주문하며 비닐포장은 거절했으나, 가게 주인은 흙이 떨어지면 장바구니가 더러워질 수 있다며 비닐을 한 겹 씌워서 내밀었다.

일부 상인은 플라스틱 쓰레기에 대한 소비자들의 경각심이 조금씩 커져가는 것을 체감하기도 했다. 마포 농수산물 시장에서 방앗간을 운영 중인 장경미(51)씨는 “최근 비닐 포장을 해주지 말라고 요청하는 손님들이 간혹 보인다”며 “환경에 관심이 많은 젊은 손님들 위주로 변화가 나타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 마포 농수산물 시장에 진열된 과일들. 대형마트에 비해 포장 판매 비율이 확연히 적다. 김민제 기자

“친절하게 비닐 포장 안해주셔도 돼요~.”

대형마트와 시장을 돌며 시도한 플라스틱 포장재 없이 장보기는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리필스테이션과 같은 기반 시설이 부족한 데다 포장 판매 관행이 마트와 시장에 공기처럼 자리 잡은 탓이 컸다. 포장되지 않은 식재료를 찾아 마트와 시장을 구석구석 살피느라 20~30분 내로 끝날 일에 1시간30분이 걸렸지만, 장바구니에는 각종 플라스틱 포장재가 어쩔 도리 없이 담겼다. 대파와 국물용 멸치를 감싼 비닐, 김 포장 트레이, 양념 통 등이다.

이 같은 상황은 시민 모니터링 조사 결과에서도 드러났다. ‘플라스틱 프리’를 실천하는 활동가들이 운영하는 플랫폼 ‘피프리미’는 지난 2020년 2월21일부터 3월25일까지 한달 동안 전국 100곳의 대형마트와 슈퍼마켓, 전통시장 등의 포장 판매 실태를 모니터링했다. 결과를 보면, 대형마트의 포장 판매 비율은 73.7%에 달했다. 생활협동조합도 81.5%, 슈퍼도 60.3%나 됐다. 전통시장은 10%로 포장 판매보다 무포장 판매 비율이 높았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 소장은 “명절 포장 문화 자체가 획기적으로 변화할 필요가 있다”며 “종이 포장을 이용한 제품이나 플라스틱 포장재를 뺀 선물 세트처럼 다양한 대안이 나와야 소비자의 선택이 보다 용이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장 볼 때 폐기물을 덜 만들려면 결국 낱개 포장을 지양하는 게 중요하다”며 “프랑스에서는 이미 일부 과일과 채소에 대한 포장을 금지시키며 (낱개 포장을 줄이려는) 시동을 걸고 있다. 다른 나라에서 먼저 시작된 과감한 조치도 참고해볼 수 있다”고 조언했다.

김민제 기자 summer@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