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는 '직업계고'.."특단 대책 필요한데, 정부는 무관심"

정지형 기자 2022. 1. 3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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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 변화에 저임금시장 내몰리면서 입지 좁아져
현장 전문가 원인 진단과 대책.."정부 움직여야"
지난 2020년 10월27일 서울 한 고교에서 취업박람회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뉴스1 © News1

(서울=뉴스1) 정지형 기자 = "특성화고 졸업자에 취업 문이 활짝 열리면서 이른바 신의 직장이라는 곳에 특성화고를 졸업한 선배들이 취업하는 것을 보고, 성적이 우수한 학생이 주위 만류에도 소신 있게 특성화고에 지원한 것으로 분석된다."

서울시교육청이 2012년 11월에 배포한 보도자료에 담긴 내용이다. 당시 교육청은 특성화고 신입생 모집 원서 접수를 마감한 결과 전체 특성화고 71개교가 정원(1만6730명)을 초과했다고 밝혔다.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가 2007년 교육청은 특성화고 모집이 '인기 폭발'이라고까지 홍보했다. 10여년 전만 해도 승승장구하던 특성화고가 지금은 깊은 시름에 빠져 있다. 직업교육이 무너지고 있다는 목소리도 흘러나온다.

30일 교육계에 따르면, 과거와 달리 최근 들어 서울 특성화고들은 신입생을 구하지 못해 애를 먹고 있다. 지난해 12월 기준 2022학년도 서울 관내 특성화고(68개교) 신입생 모집 결과를 보면 충원율이 78.4%로 잠정 집계됐다. 최종 충원율은 다음 달에 확정되지만 80%를 넘길 수 있을지 장담하기 힘든 상황이다. 모집 정원을 채우지 못한 미충원학교 수도 전체 70개교 중 2016학년도 10개교에서 2021학년도 49개교로 늘었다.

◇"양질의 노동시장으로 길 터줘야…기업 혜택도 필요"

특성화고 위기 원인을 두고는 다양한 진단이 나온다. 감염병 사태로 인한 홍보 제약, 대학 진학 선호 현상, 학령인구 감소, 고졸자 임금 격차와 차별, 현장실습 사고 등이 거론된다. 교육계에서는 직업교육에 위기를 초래한 근본 원인을 짚고 하루라도 빨리 정부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우선은 학령인구 감소가 위기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지난 2011년 서울 중학교 3학년 학생 수는 11만3675명이었다. 지난해는 6만7623명으로 10년 만에 4만6052명(41%)이 줄었다. 가정에서도 1~2명뿐인 자녀를 대학 진학을 위해 일반고로 보내려는 경향이 강하다. 인구구조 변화와 과거부터 이어진 직업교육 기피 풍조가 맞물려 특성화고 인기가 갈수록 떨어지고 있는 셈이다

학생 수 감소만을 탓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성화고나 마이스터고 등 직업계고 학생이 졸업 후 저임금 노동시장에 내몰리면서 직업교육 기피 현상이 심화했다는 것이다. 졸업생들이 최저임금 수준에 그치는 노동시장으로 진입하는 일이 반복되면서 뒤늦게 4년제 대학으로 선회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정부가 직업계고 졸업생을 대상으로 '선취업 후진학제'를 실시하고 있지만 어렵게 학위를 취득하더라도 직장에서 여전히 고졸자 취급을 받는 문제도 있다.

전국특성화고노조 조합원들이 지난해 9월9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 마련된 '제21차 일자리위원회' 회의장 앞에서 농성을 벌이던 중 김용기 대통령직속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이 도착하자 특성화고 졸업생들의 일자리 부족 문제에 대한 정부의 대책을 촉구하는 항의서한을 전달하고 있다. /뉴스1 © News1 민경석 기자

결국은 고졸자가 양질의 노동시장에 진입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길을 열어주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 부회장인 임운영 경기 경일관광경영고 교사는 "특성화고 학생에게 일자리를 과거처럼 보장해줘야 한다"며 "고졸 일자리를 위해 기업에도 혜택을 줘야 한다"고 밝혔다. 직업계고 사이에서는 과거 정부가 고졸 취업 정책에 신경 쓴 것과 달리 현 정부는 고졸 일자리에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는 시각이 짙다.

◇방치되는 직업교육, "중앙정부가 직접 학교 이끌어야"

산업구조 변화에 맞는 학과 개편과 학생 맞춤형 교육환경 조성 등 특성화고가 풀어야 하는 과제도 적지 않다. 강연흥 서울성동광진교육지원청 교육장은 "직업계고를 학생이 만족할 수 있는 맞춤형 학습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며 "기능중심교육에서 벗어나 문제해결능력 위주로 교육과정을 획기적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과거처럼 기업에서 요구하지도 않는 자격증 취득에 매몰돼 학생들이 시간을 허비하는 일은 사라져야 한다는 설명이다.

문제는 학교 힘만으로는 역부족이라는 점이다. 지금도 시·도 교육청에서는 인공지능(AI) 학교 전환과 학과 재구조화 사업을 위한 예산을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중앙정부 차원에서도 움직임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크다. 사회부총리인 교육부 장관이 고용노동부와 중소벤처기업부 등과 협력해 미래산업 변화를 반영한 비전을 제시하고 학교를 이끌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학교에만 혁신을 맡길 경우 성과도 없이 예산만 허비하는 꼴이 될 수도 있다.

직업교육 지원 대책이 학생뿐 아니라 교사에게도 맞춰져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마이스터고인 서울 로봇고의 강상욱 교장은 "선진 직업교육을 위한 교사 재교육을 위해서는 물리적 시간이 필요하다"며 "기업에 가서 교사가 3일은 교육을 받고 2일은 학교에서 근무하는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직업계고 교원을 더 늘려 학교 수업결손을 최소화하고 전체 교사의 10% 정도를 순환해 재교육을 받도록 하는 식이다.

반복되는 현장실습 사고도 넘어야 할 산이다. 현장실습을 폐지해야 한다는 요구도 일부 나오지만 한편에서는 현장실습을 없애면 오히려 특성화고나 마이스터고의 장점이 사라질 수 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강 교장은 "현장실습 사고를 일으킨 기업은 강력하게 처벌하는 법이 만들어져야 한다"며 "현장실습 사고로 희생된 학생은 기업과 국가에서 책임지고 예우하고 보상 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kingkong@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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