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루샤 불패' 올해도?..'명품 재테크' 열풍 파고든 백화점들 [홍키자의 빅테크]

홍성용 2022. 1. 29.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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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키자의 빅테크-48] 롯데백화점 본점과 신세계백화점 본점에 이른 아침에 가본 적 있나요? 아직 백화점 문을 열기도 전인데 백화점 주변으로 길게 늘어서 있는 사람들의 줄을 보고 '뜨악'하실 수 있습니다. 영하의 날씨에 방한용품으로 중무장한 사람들이 다닥다닥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겁니다. 프랑스 명품 브랜드 '샤넬'을 구입하기 위해 줄을 서 있는 사람들입니다. 일명 '오픈런'이라고 표현하는데, 원래는 공연이 끝나는 날짜를 지정하지 않고 계속해서 공연하는 것을 의미했죠. 하지만 요즘은 한정판 구매나 명품 가격 인상 전에 구입하려는 고객들이 백화점 개점을 기다리며 길게 줄 선 현상을 말합니다. 올해도 백화점들은 명품 장사가 흥할까요?

연 매출 1조원 돌파 백화점만 11개…키워드는 '패션·명품'

지난해 `샤넬 가격 인상설`에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2층에는 샤넬 입장 예약을 위해 이른 새벽부터 100여명의 인파가 몰렸다. <사진=매경DB>
30대 직장인 유지민 씨는 올겨울 해외여행을 계획하다가 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인 오미크론이 확산하자 계획을 접었습니다. 여행비로 잡아둔 목돈은 루이비통 가방으로 '플렉스'했습니다. 유씨는 "지난해 국내여행은 꽤 다녔고, 겨울에 해외여행을 계획했다가 포기하자 스트레스를 풀 만한 창구가 필요했다. 그래도 오랫동안 맘에 둔 가방을 구매하니 기분이 좀 풀린다"고 밝혔습니다.

유씨처럼 '보상소비'를 하거나 '보복소비'를 하는 소비자들이 지난해 꽤 많아졌고, 그 결과 백화점들의 지난해 매출은 전년 대비 2배가량 늘었습니다. 실제로 2021년 매출 1조원을 돌파한 국내 백화점은 역대 최다인 11개로 나타났는데요. 2020년 5개에 비해 1년 새 2배가 늘어난 수치였습니다.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뿐만 아니라 부산과 대구 등에서도 1조원을 돌파한 백화점들이 줄을 이었죠. 특히 연 매출 1조원을 돌파한 백화점 11곳 중 7곳이 3대 명품인 '에르메스·루이비통·샤넬'을 모두 갖춘 점포로 나타나면서 명품 중심 성장세를 재확인했습니다. 개장 4년11개월 만에 연 매출 1조원을 달성한 신세계 대구점도 2020년 에르메스에 이어 지난해 샤넬까지 입점시켰습니다. '에루샤' 없으면 장사가 안된다는 게 정말 괜한 소리가 아닌 겁니다.

업계 관계자는 "명품 브랜드 중 에루샤 입점 여부는 백화점 위상을 보여준다. 에루샤는 특히 매출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에루샤 유치를 위해 적극 경쟁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명품 판매 수수료는 국내 브랜드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적다. 하지만 명품 브랜드는 백화점 규모를 늘리는 데 큰 역할을 한다"며 "명품을 쇼핑하며 추가 구매하는 집객 효과를 놓칠 수 없어 백화점들은 명품 브랜드 유치에 적극적"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여성 고객 비중이 절대적이었던 백화점 명품 시장에는 최근 남성 고객 비중도 급격하게 늘었습니다. '명품은 곧 여성'이라는 키워드가 완벽하게 깨진 것이에요. 백화점들은 남성들에게 인기 있는 명품을 입점시키거나 전용 명품관을 열면서 남성 고객에게도 러브콜을 보내고 있습니다.

현대백화점은 압구정점 4층을 남성 명품관인 멘즈 럭셔리관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압구정본점은 구찌 멘즈, 발렌시아가 멘즈, 프라다 워모, 루이비통 남성 전문 매장이 입점해 있죠. 롯데백화점도 본점 5층을 남성 명품관으로 만들고 남성을 위한 매장 30여 개를 입점시켰습니다. 신세계백화점은 남성 명품관인 멘즈 살롱에 루이비통, 구찌, 벨루티, 펜디, 톰포드, 돌체앤가바나 등 남성 럭셔리 브랜드를 오픈했습니다.

명품 재테크는 '앉아서 돈 버는 방법'

서울 강남구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에 마련된 루이비통 남성 전문 매장. <사진=현대백화점>
명품으로 재테크하는 사람이 늘어난 것도 명품 수요 급증의 원인입니다. 수요가 늘어나자 고급화 전략을 위해 에루샤는 최대 5차례나 가격을 인상하기도 했죠. 특히 샤넬의 인기 제품은 1000만원을 넘어섰고, 올 초에는 코코핸들·비즈니스 어피니티 등 일부 인기 핸드백 가격을 인상했습니다. 코코핸들 스몰은 560만원에서 619만원으로 11% 올랐습니다. 미디엄 사이즈는 610만원에서 677만원으로 역시 11% 가격이 뛰었죠. 샤넬의 경우 상품 가치 보존을 위해 일부 인기 핸드백 품목을 1인당 1개씩만 살 수 있는 구매제한 조치를 단행하기도 했습니다.

소비자들은 '샤테크(샤넬 재테크)' 등 명품 재테크를 위해 백화점 '오픈런'에 열을 올리는 실정입니다. 한파 속에도 오픈런을 위해 대기할 정도죠. 하룻밤 사이 100만원 단위 가격 차가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명품 재테크족인 A씨는 "샤넬은 2~3년 전만 해도 기본백이 600만원 선이었는데, 지금은 1000만원이 훌쩍 넘는다"며 "최대한 빨리 사서 늦게 파는 게 돈 버는 법"이라고 밝혔습니다.

실제로 기록을 봐도 이 같은 명품 중심 성장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산업통상자원부의 '유통업체 매출 동향'에 따르면 백화점 전체 매출에서 명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11월 31.5%를 기록했습니다. 지난해 11월 명품의 전년 동기 대비 매출 증가율도 32.9%에 달했습니다.

그래서 백화점 3사가 자사 대표를 '패션·명품' 카테고리 전문가로 배치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백화점 매출 중 40% 가까이가 패션·명품 카테고리에서 발생하고 있는 상황에서 관련 파트에 대한 이해가 깊은 이들을 중용하는 게 시대적 트렌드에 맞는다는 것입니다.

롯데백화점을 이끄는 정준호 대표는 내부 순혈주의의 대명사로 꼽혔던 롯데백화점에서 이례적으로 신세계 출신 인사인데요. 1987년 신세계백화점에 입사해 30년간 신세계그룹에 몸담아왔습니다. 패션 기업 신세계인터내셔날 해외패션 본부장, 조선호텔 면세사업부, 이마트 '부츠' 사업 담당 등을 맡아왔습니다. 이후 2018년 롯데GFR에 합류했습니다.

업계에서는 해외 패션 유통 분야에서 국내 최고 전문가로 손꼽히는데요. 신세계인터내셔날 밀라노 지사장 등을 거치며 프랑스와 이탈리아 브랜드를 두루 접하며 안목을 키워왔죠. 정 대표는 아르마니, 몽클레어 등 30여 개 유명 패션 브랜드를 국내로 직접 들여온 인물입니다. 업계 관계자는 "실무에 있을 때는 가브리엘 정(정 대표 영문 이름)을 거치지 않으면 한국에 브랜드를 낼 수 없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전했습니다.

2021년 10월 선임된 신세계백화점의 손영식 대표도 백화점에서 해외명품팀장과 상품본부장, 패션본부장을 거친 MD 전문가입니다. 1987년 신세계백화점에 입사해 2012년과 2014년 각각 상품·패션본부장 부사장보를 지냈죠. 2016년 신세계디에프 대표로 취임한 손 대표는 신세계디에프 대표 재직 시절 3대 명품 브랜드를 연이어 유치하며 신세계면세점을 '업계 빅3' 구도를 만드는 데 일조했습니다.

현대백화점은 2020년에 이 같은 트렌드를 미리 반영한 듯 패션계열사 한섬을 진두지휘하던 김형종 대표를 신임 대표로 발탁한 바 있습니다. 김 대표는 현대백화점 목동점장, 상품본부장을 거친 뒤 2012년부터 한섬 대표를 맡아 2019년까지 패션업계를 주도해왔습니다.

'1자산'을 갖추지 못한 시대…명품으로 눈 돌리는 MZ

지금의 명품 열풍은 1자산을 갖추기 힘든 시대를 반영하는 시대상이기도 합니다. 요즘 MZ세대인 2030을 중심으로 명품을 구매하는 이들이 많아졌죠. 이들에게 명품은 1자산을 포기하면서 선택할 수 있는 차선의 선택이라는 겁니다. 1자산은 당연히 '집'이죠. 나의 보금자리인 집값이 천정부지로 뛰면서 집을 사는 것을 포기하니 그다음 자산으로 시선을 돌린 겁니다. 그래서 요즘엔 '카푸어'도 늘었습니다. 이전보다 더 비싼 자동차도 서슴없이 살 수 있는 겁니다. 왜냐고요. 1자산을 포기하니 가능한 얘기죠.

명품 열풍도 그와 같습니다. MZ세대는 비싼 명품을 구매할 때 소유한다는 생각을 별로 하지 않습니다. 대신 '이용권'을 구매한다고 생각합니다. 6개월 이용권, 3개월 이용권을 구매한다고 생각하고 옷 태그도 떼지 않고 깨끗히 입고, 리셀로 파는 것이죠. 사용료를 내는 개념이라는 겁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명품도 살 만한 것인 것이죠. 명품 열풍이 단순한 시대상이 아닌 다층적인 깊이를 가진 스토리를 띠고 있는 겁니다.

[홍성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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