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에 아첨하는 절친에 다 빼앗겨"..말수 없던 그의 핑계였네 [씨네프레소]

박창영 2022. 1. 29.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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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 이 기사에는 영화의 전개 방향을 추측할 수 있는 스포일러가 다소 포함돼 있습니다.

[씨네프레소-20] 영화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

축구를 잘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축구를 잘하게 태어나는 것이다. 노력하면 과거의 자신보다 잘하게 될 순 있겠지만, 노력한다고 누구든 메시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미술, 음악, 발명, 공부 등 대부분 영역에서 개인의 선천적 요소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사회생활 역시 마찬가지다. 어떤 사람은 특별히 노력하지 않아도 타고난 외향성으로 조직에 스며든다.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에서 마르그리트(조디 코머·사진)는 남편 장 드 카루주가 사회에 섞여들지 못하는 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본다.<사진 제공=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이들은 때론 별 수고도 없이 악덕 상사 기분까지 맞춘다. 이는 옳고 그름, 정당함을 가치 판단의 중심에 놓는 사람들에게 '아첨꾼'이란 오해를 사기 딱 좋은 모습이다. 영화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2021)에서 두 친구가 겪는 갈등에도 이런 타고남의 요소가 자리하고 있다. 1300년대 파리, 장 드 카루주(맷 데이먼)는 세상에서 인정받는 뛰어난 전사이지만, 자기 편을 만드는 데 서툴다. 영주가 참여하는 파티에서 의례적 미소를 짓는 것조차 불필요한 행위라고 여기는 듯 늘 심각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 영주 피에르(벤 애플렉)에게 미움을 사 권력의 중심에서 차츰 멀어지는 이유다. 반면 절친 자크 르 그리(애덤 드라이버)는 사교성을 타고났다. 그에게 영주와 농담을 섞으며 편하게 지내는 건 특별한 노력이 필요한 게 아니다. 영주의 총애를 받게 된 그는 원래 친구가 조직에서 차지하고 있던 것을 하나씩 자기 것으로 만든다.
장 드 카루주(맷 데이먼·사진)는 대의명분을 중요시하는 성격이다. 그렇기에 원칙 없이 생활하며 자신의 자리를 위협하는 친구가 더욱 불편하게 느껴진다.<사진 제공=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비열한 친구가 내 모든 걸 빼앗아갔다

그러나 장 드 카루주 입장에서는 자크 르 그리는 아첨쟁이일 뿐이다. 총 3장으로 이뤄진 이 영화에서 1장은 장 드 카루주의 시각으로 자크 르 그리의 비열함을 고발하는 부분이다. 장 드 카루주는 전투에서 위험에 처한 자크 르 그리를 구해준 바 있다. 장 드 카루주 입장에선 자신이 패전을 이유로 영주에게 찍혀 입지가 좁아지는 동안, 친구가 반사이익을 얻어 승승장구하는 모습이 배은망덕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 번쯤은 영주 앞에서 자신을 변호해주는 게 인간 된 도리라고 생각하지만, 친구는 영주의 옆자리를 차지하고 지위를 즐길 뿐이다.
장 드 카루주(왼쪽)와 자크 르 그리(아담 드라이버·오른쪽)는 원래 절친이었다. 자크 르 그리가 친구의 것을 하나씩 차지하게 된 데에도 처음부터 악의가 있었던 건 아니다.<사진 제공=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사실 자크 르 그리가 처음부터 친구를 곤경에 빠뜨릴 목적을 가졌던 건 아니다. 그저 그는 아부하려는 의지 없이도, 윗사람들과 잘 융화될 뿐이다. 영주는 늘 심각한 표정을 한 채 옳고 그름을 따지고 드는 장 드 카루주가 마뜩지 않다. 영주가 자크 르 그리에게 털어놓는 장 드 카루주에 대한 가장 큰 불만은 "재미없다"는 것이다. 대신 본인을 편하게 해주는 자크 르 그리에게는 자연스럽게 마음이 간다. 이 모든 일엔 자크 르 그리의 악의가 없지만, 결과적으론 친구의 자리를 빼앗은 모양새가 됐다. 두 사람 사이는 점점 서먹해진다.
영주(왼쪽)의 바로 옆 자리에 자크 르 그리가 앉아 있는 반면, 장 드 카루주는 불청객처럼 두 사람 앞에 서서 이야기해야 하는 상황이 반복된다.<사진 제공=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오래된 과거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로서 이 작품이 갖는 장점은 주인공들의 이런 현실적인 고민에 있다. 두 사람은 현대의 관객들에게 잘 와닿지 않는 당대의 거대 담론을 가지고 싸우는 게 아니라, 사회생활 때문에 갈등한다. 친한 친구끼리도 조직 내 관계 때문에 별 악의 없이 멀어지기도 하고, 때론 서로의 장점 때문에 불쾌한 일을 겪을 수 있는 것이다. 역사극 하면 웅장, 장엄, 비장 같은 단어가 떠올라 부담스러워 기피하는 사람도 이 영화는 '나의 아저씨'류의 직장생활 드라마로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자크 르 그리는 고장에서 소문난 미남이기도 하다. 교양과 위트까지 겸비한 그의 주변엔 여자가 끊이지 않는다.<사진 제공=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스포일러를 피하고 싶으면 이 단락은 건너뛰세요) 친구를 믿지 못함에도 아내를 소개했다

이후 로베르 드 티부빌의 딸 마르그리트(조디 코머)와 결혼하며 가장이 된 장 드 카루주는 다시 한 번 심기일전한다. 그러나 아내의 어린 시절 추억이 깃든 땅까지 영주가 빼앗아가고, 그 땅이 다시 자크 르 그리의 차지가 되며 두 친구 사이에 놓인 벽은 더욱 높아진다. 그래도 집안을 일으키기 위해선 자크 르 그리와 관계를 회복할 필요가 있음을 인정한 그는 연회에서 자크 르 그리를 만나고, 화해의 의미로 본인의 아내가 그에게 입맞춤하게 한다.
영화의 주인공들은 불행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 뻔해 보이는 결정을 내리기도 한다. `라스트 듀얼`에서 장 드 카루주가 자신의 아내에게 자크 르 그리와 입맞춤할 것을 권하는 순간이 그렇다. 평소에 신경 쓰지 않던 사회생활을 하려다 무리수를 뒀는지 모른다.<사진 제공=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1장의 전개를 따라가던 관객이라면 당연히도 이 장면에서 불안함을 느끼게 된다. 본인에게 소중한 모든 것을 가져가던 친구에게 자신의 아내와 입맞춤을 권하는 장 드 카루주의 판단력이 의심스러워진다. 적성에 안 맞는 사회생활을 하려다 보니 악수를 뒀는지도 모른다. 연회 이후 장 드 카루주는 해외로 출전하느라 오랜 기간 집을 비운다. 그가 전쟁을 마치고 돌아온 날, 마르그리트는 남편에게 말한다. 어느 날 자크 르 그리가 집에 함부로 들어와 자신을 성폭행했다고 알린다. 장 드 카루주가 자크 르 그리를 국왕 앞에서 고발하고, 목숨과 명예를 건 결투를 신청하는 것으로 1장은 마무리된다.
(*스포일러를 피하고 싶으면 이 단락은 건너뛰세요) 자신에게 불리한 이야기는 쏙 빼놓고 말하는 '신사'들의 공방전

이 영화의 또 다른 재미는 3장 구성에 있다. 1장 '장 드 카루주가 말하는 진실', 2장 '자크 르 그리가 말하는 진실', 3장 '마르그리트가 말하는 진실'을 통해 세 사람이 이 사건을 보는 시각 차가 있음을 드러낸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형식을 취하는 작품들의 전범으로 평가받는 구로사와 아키라 '라쇼몽'(1950)과 비교하게 될 것이다. 다만 '라쇼몽'의 경우 각기 다른 인물 관점으로 이야기가 하나씩 추가될 때마다 사건의 진실이 무엇인지 더 헷갈리게 된다면, '라스트 듀얼'은 후반부로 갈수록 실체가 비교적 뚜렷하게 드러나는 편이다.
구로사와 아키라의 `라쇼몽`을 자연스레 떠오르게 하는 구성이다. 같은 사건을 당사자들이 모두 다르게 기억할 수 있음을 다룬 작품이다.
관객은 새로운 챕터로 넘어갈 때마다 두 남자가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고 미화하느라 빼놓은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일단 2장으로 넘어가면 자신은 신사이자 피해자, 친구는 파렴치한이자 가해자로 묘사했던 장 드 카루주의 설명이 공정하지 않았음이 드러난다. 단적인 예로, 장 드 카루주는 본인만 친구 목숨을 구해준 은인인 것처럼 말했지만, 사실 자크 르 그리 역시 그를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나게 해줬던 것이다.
1장에서 장 드 카루주는 자크 르 그리가 자신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지고도 은혜를 갚지 않는 파렴치한으로 묘사한다. 그러나 2장을 통해 관객들이 알게 되는 건 자크 르 그리 역시 그를 위기에서 몇 차례 구해줬다는 사실이다.<사진 제공=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3장에선 추악한 진실이 폭로된다. 두 사람이 서로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벌이는 싸움이 마르그리트에겐 얼마나 같잖아 보이는지 느끼게 해준다. 사랑으로 포장된 두 사람의 싸움에서 마르그리트 입장은 철저히 무시됐다. 마르그리트 의사와 상관없이 자신의 정욕을 표출하는 자크 르 그리나 아내를 재산쯤으로 여기는 장 드 카루주나 그녀 인생을 비참하게 만들고 있을 뿐이다.
장 드 카루주(왼쪽) 역시 아내 마르그리트를 인격적으로 존중하지 않음은 마찬가지다. 성폭행 사건에 어떻게 대응할지 결정하는 과정에 아내 의견은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사진 제공=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반쪽짜리일 뿐이었던 남자들만의 역사

남자들 사이의 출세 경쟁을 다루는 듯하던 이 작품은 중반부를 넘어가며 범죄를 두고 진실 공방을 벌이는 법정 영화 성격을 띤다. 그러다 3장에선 두 남자에게서 거리를 두고 역사를 돌아본다. 감춰졌던 것은 특정 사건의 진실일 뿐만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아가던 여성들의 목소리 그 자체였다는 것이다.

'글래디에이터'를 연출한 리들리 스콧이 메가폰을 잡고, '굿 윌 헌팅' 각본을 쓴 맷 데이먼, 벤 애플렉이 시나리오를 집필했다. 영화의 스펙터클을 중시하는 관객도, 드라마 또는 메시지에 집중하는 사람도 두루 즐겁게 볼만한 작품이다.

`라스트 듀얼` 포스터.<사진 제공=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장르: 액션·스릴러
감독: 리들리 스콧
출연: 맷 데이먼, 애덤 드라이버, 조디 코머
평점: 왓챠피디아(3.8/5.0), 로튼토마토 토마토지수(85%), 팝콘지수(81%)
※2022년 1월 28일 기준.
감상 가능한 곳: 디즈니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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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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