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엔진 독립 '미션 임파서블'일까?

김영배 2022. 1. 29.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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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파운드포스 이상급 국산 엔진 추진
정부 "추력 1만lbf 이상급 개발 검토"
기술·국제인증 벽 높고 수요처 제한
"막대한 자금, 개발기간 10년 이상"
국산화 회의론·도전론 두 갈래 흐름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직원들이 창원사업장에서 항공기 엔진을 조립한 뒤 검수 작업을 벌이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제공

이달 14일 ‘항공우주인 신년 인사회’ 자리에 모습을 드러낸 문승욱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인사말에 눈길을 끄는 대목이 한군데 있었다. “제트기급 첨단 엔진 개발을 관계부처와 함께 적극 검토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문 장관은 “제트기급 엔진 개발은 오랜 시간 많은 예산을 들여야 하는 사업이지만 항공 분야를 넘어 기계산업 전 분야로 이어지는 파급 효과가 크다”는 점을 검토 배경으로 들었다.

문 장관의 당시 발언록에도 들어 있었듯이 제트기급 엔진이라 함은 ‘추력’ 1만파운드포스(lbf)급 이상을 말한다. 추력은 앞쪽에서 받아들인 물·공기·가스 따위를 프로펠러나 엔진으로 가속해 뒤쪽으로 밀어냄으로써 얻는 추진력을 말한다.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 1단부에 장착된 엔진 4기의 추력은 각각 75t이었다. 이 정도 무게를 궤도로 날려 보낼 힘을 갖고 있다는 뜻이다. 항공기의 추력을 표시하는 ‘파운드포스’의 개념은 이와 약간 다르다. 날개에서 발생하는 ‘양력’을 고려하기 때문이다. 1만파운드의 단순 무게는 4.5t 남짓이다.

‘차원 다른’ 엔진 기술에 도전장

현재 국내에선 1만파운드급 이상은 물론이고, 그 아래 단계 추력의 항공기 엔진도 개발 완성 단계에 이르지 못한 실정이다. 첫 국산 로켓인 누리호에 실린 엔진처럼 발사체에 장착된 것으로 국산화 사례가 있을 뿐 항공기 엔진의 국산화는 미결 숙제로 남아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에서 2~3년 전부터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진 추력 5500파운드급 항공 엔진의 개발도 언제 마무리될지 아직 미정이다. 그만큼 고난도 기술을 필요로 하는 영역이라는 뜻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문 장관이 거론한 제트기급 엔진 개발은 더 먼 미래의 과제로 여겨진다.

산업부 관계자는 “항공기 엔진 개발은 (착수 뒤) 10년이나 15년 이상 걸리는 일이라 봐야 할 것”이라며 “특히 민항기용 엔진 개발에는 엄청난 액수의 자금이 들어갈 뿐 아니라 국제 인증기관에서 신뢰성을 인정받아야 하는 지난한 과제”라고 말했다. 로켓은 한번 쏘고 나면 끝인 데 견줘 항공기 엔진은 20년가량 지속해서 사용해야 하는 것이라 기술의 차원이 다르다는 설명이다. 사람을 태우고 다니기 때문에 고도의 안전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점에서도 본질적인 차이를 띤다.

수백명의 승객을 실어나르는 민항기 엔진 쪽이 군용 항공기보다 훨씬 더 높은 기술적 완성도를 필요로 한다는 점도 같은 맥락이다. 제트기 엔진의 추력은 높은 게 2만2천파운드급 안팎인 데 견줘 민항기 엔진의 추력은 10만파운드급을 넘는 경우까지 있다. 이런 차별적인 성능(힘)에 더해 장기간에 걸쳐 사고를 일으키지 않는다는 확신을 심어줄 안전성 데이터를 확보·축적하고 이를 국제기관에서 인정받아야 한다. 문 장관이 목표로 제시한 제트기급 엔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격차를 띤 분야로 꼽힌다.

현재 세계 항공기 엔진 시장은 3~4개 회사 과점 체제로 짜여 있다. 산업부에 따르면 민·군 가스터빈 엔진 전체 기준으로 시장점유율(2018년 기준)에서 미국의 제너럴일렉트릭(GE)이 1위로 35%를 차지하고 있다. 이어 영국의 롤스로이스 21%, 미국의 프랫앤휘트니(P&W) 19% 수준이다. 이들 외에는 프랑스의 사프랑(시장점유율 16%)이 항공기 엔진 시장에 한발을 들여놓고 있을 뿐 일본도 이 시장에는 명함을 못 내밀고 있다. 사프랑은 프랑스 다소항공의 전투기 ‘라팔’에 장착된 엔진을 개발한 업체로 유명하다.

산업부 관계자는 “민항기 엔진 개발에는 막대한 자금이 들어가는데다 기술적 난점을 극복해 요행히 개발에 성공하더라도 미국, 유럽 항공당국의 안전성 인증이라는 장애물을 넘어야 한다는 어려움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항공기 엔진의 수요처가 보잉과 에어버스 정도로 좁다는 사실과 맞물려 항공 엔진 시장에 두터운 장벽을 치는 요인이다. 중국 연구진이 2020년 마하16 항공기용 엔진을 개발했다고 발표했지만, 국제적으로 그다지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사정에는 이런 배경이 깔려 있다. 여기서 항공당국이라 함은 미국 연방항공청(FAA), 유럽항공안전청(EASA)을 말한다.

군용 엔진 시장의 장벽은 그나마 상대적으로 얇은 편이다. 문 장관이 도전적 과제로 제트기급 엔진을 거론한 까닭이다. 일본은 이 시장에서 한국보다 앞서 있다. ‘방위성 기술연구본부 항공장비연구소’ 주도로 엔진체계기업인 아이에이치아이(IHI)와 협력해 1975년 항공 엔진 개발에 착수해 2019년 터보팬엔진(‘XF-9’) 개발에 성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추력 2만4천파운드급으로 한국형 차세대 전투기 ‘보라매’(KF-21)에 장착한 지이의 엔진(F414-GE-400)과 같은 수준이다.

일본의 항공 엔진 개발은 미국의 피앤더블유가 1972년 동급 엔진(추력 2만3천파운드 ‘PW F100’)을 처음 개발한 지 47년 만에 이뤄진 일이었다. 인도는 1986년 경전투기용 엔진 개발에 착수했다가 중형 전투기용(추력 2만1천~2만2500파운드)으로 개발 전환한 뒤 2012년 중단해 실패 사례로 기록돼 있다. 이 또한 항공 엔진 개발의 어려움을 보여주는 한 예다.

항공 엔진의 국산화 과제를 둘러싸고 국내에는 두 갈래의 상반된 흐름이 형성돼 있다. 세계적인 기업 서너곳에서나 할 수 있는 고난도 기술인데 국내에서 개발할 수 있겠느냐는 의구심이 한 갈래를 이룬다. 엔진 개발에 15년가량 걸린다고 볼 때 그동안 선도업체들은 더 싸게 더 좋은 걸 만들어 내놓지 않겠느냐는 합리적 추론이 여기에 덧붙는다. 수요처가 극히 제한돼 있다는 사정까지 고려할 때 국책사업으로 추진할 경우 반드시 거쳐야 하는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하기 어려울 것이란 논리도 이와 맥을 같이한다.

한국형 전투기 보라매(KF-21) 시제기. 현재 시험비행 중이며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 엔진(F-414)을 장착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두개의 시선, ‘일단 도전!’ 대 ‘될까?’

문 장관의 적극 검토 발언과 닿아 있는 다른 한 갈래는 ‘그럼에도 시도는 해봐야 하지 않겠느냐’는 주장이다. 민수용과 달리 군수용은 기술적 난점이나 인증에서 상대적으로 낮은 단계여서 도전적 과제로 추진할 만하다는 설명이다. 항공기 엔진의 수요처가 좁지 않으냐는 회의론에는 다른 용도로 이어지는 파생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반박이 따라 나온다. 기계산업의 정점인 항공 엔진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데이터를 축적할 수 있고 이를 수소 액화 기술, 함정, 헬기 등에 다양하게 적용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여기에 관련 공급망 구축을 통해 초정밀 기계, 가공기술과 함께 원자재, 소재 산업으로 파급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덧붙는다. 세계적으로 자국 중심의 공급망 재편 움직임이 일고, ‘요소수 사태’ 같은 뜻밖의 변수가 돌출했던 일도 ‘도전론’에 힘을 싣는 한 요인이다.

김영배 선임기자 kimyb@hani.co.kr

경제부장, 논설위원을 거친 뒤 산업 현장 취재를 맡고 있다. <민스키의 눈으로 본 금융위기의 기원>, <휴버먼의 자본론>, <무엇이 우리를 무능하게 만드는가>, <관료제 유토피아> 등을 번역해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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