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기를 이렇게 쓴다고?..비둘기 쫓는 '인공 매' 변신

이정호 기자 2022. 1. 29.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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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영국 런던의 리젠츠 파크에서 비둘기들이 떼지어 모여 있다. 최근 비둘기 떼 규모가 일정 수준을 넘어가면 무인기를 자동으로 출동시켜 쫓아내는 시스템이 개발됐다. 위키피디아 제공


비둘기 떼가 감지되면 자동으로 무인기(드론)를 출동시켜 특정 장소에서 쫓아내는 시스템이 개발됐다. 비둘기가 집중적으로 서식하는 건물이나 교량, 문화재를 배설물에서 지킬 방안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스위스 로잔연방공대 연구진은 무인기를 이용한 비둘기 퇴치 시스템을 국제전기전자공학회(IEEE)가 발간하는 학술지인 ‘IEEE 익스플로러’에 지난 24일 발표했다. IEEE에 따르면 비둘기는 미국에서만 매년 약 10억달러(1조2000억원)의 경제적 손실을 일으킨다. 가장 큰 이유는 배설물이다. 비둘기의 배설물은 도시 미관을 해치는 데다 산성을 띠기 때문에 건축물을 부식시킨다. 배설물은 인력을 동원해 청소해야 하는데, 워낙 양이 많아 일일이 치우기가 어렵다. 비둘기 떼를 근본적으로 통제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매 같은 자연 포식자를 풀어놓는 것이다. 하지만 자연 환경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도심에서 이런 방법을 널리 쓰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연구진은 ‘인공 포식자’를 만들기로 했다. 바로 무인기다. 매처럼 비둘기를 공격해 잡아먹지는 않지만, 비둘기가 경계심을 갖고 도망치도록 하는 방법을 고안한 것이다. 연구진은 스위스 로잔에 있는 스위스 테크 컨벤션센터 지붕을 실험 구역으로 삼았다. 이곳은 여느 도심의 건물처럼 비둘기가 대량으로 서식한다. 연구진은 비둘기 떼를 그대로 내버려 둘 때와 무인기를 띄워 쫓아냈을 때를 비교해 차이점을 확인했다.

실험 결과는 놀라웠다. 무인기를 가동한 5일 동안 출동 횟수는 모두 55회에 이르렀다. 무인기를 띄우지 않았을 때 컨벤션센터 지붕에서 비둘기 떼가 머문 시간은 평균 147분에 달했지만, 무인기를 띄웠을 때에는 4분50초에 그쳤다. 이렇게 비둘기 떼를 효과적으로 쫓을 수 있었던 건 비둘기 떼 감지와 출동, 퇴치 과정이 모두 자동화돼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일일이 비둘기 떼가 있는지 눈으로 확인하거나 무인기를 조종할 필요가 없다.

연구진은 인공지능(AI)을 이용해 비둘기들이 주로 어디에 모이는지 탐지한 뒤 ‘집중 감시 지역’을 위성항법시스템(GPS) 좌표로 정리했다. 이를 바탕으로 비둘기 떼를 감지하는 카메라가 일정 수 이상의 비둘기를 확인하면 지상 관제센터가 무인기에 ‘출동’을 지시하도록 시스템을 구성했다. 지시를 받은 무인기는 즉각 이륙해 앉아 있는 비둘기 떼 위를 시위하듯 비행했다. 무인기를 본 비둘기 떼는 깜짝 놀라며 자리를 떴다. 다만 연구진은 이번 실험에서 완전 자동화 기능을 켜진 않았다. 스위스 등 각국의 무인기에 관한 법적인 제약 때문에 출동 지시를 내리는 역할은 컴퓨터가 아니라 사람에게 맡겼다.

비둘기 떼는 규모에 따라 무인기에 경계심을 갖는 정도도 달랐다. 연구진은 IEEE를 통해 “규모가 큰 비둘기 떼는 무인기가 40~60m 앞에 나타나기만 해도 겁을 먹었지만, 규모가 작을 때에는 무인기가 코앞에 다가와서야 움직였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동물 행동을 연구하는 학자들과 협력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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