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일해도 최저임금 올라야 월급 오르죠"

한겨레 2022. 1. 29.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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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박수정의 오늘, 여성노동자][한겨레S] 박수정의 오늘, 여성 노동자
사무직 노동자 현수씨
"육체적·정신적 스트레스 클 때
최저임금은 늘 부족했어요
상사한테 괴롭힘 당했을 때도
그냥 울면서 억지로 버텼어요"
지난해 8월26일 오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맥도날드 사회적 책임 촉구 대책위원회’가 연 기자회견. 이들은 맥도날드가 ‘식자재 유효기간 스티커 갈이’ 공익제보 이후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의 휴대전화 사용을 금지한 것 등이 인권침해라고 비판하며 인권위에 진정서를 제출했다.(사진은 기사와 관련이 없음)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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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급여를 정확하게 말씀 못 드려서요. 2017년 3월에 입사해서 12월까지 120만원 받았어요. 근데 이게 지금 찾아보니까 2017년 최저시급에 따른 월급보다 더 적네요. 내가 최저보다 더 못 미치는 돈을 받았어요. 2018년에 최저가 올라서 최저시급에 맞춘 월급인 150만원대 받았고요. 또 2019년에 최저시급이 올라서 최저 기준에 맞춰서 180만원대 받았어요. 2020년 210만원대로 이때부터 최저보다 더 받았네요. 정리하면 매년 아래처럼 받았어요.”

휴대전화 문자에 현수(가명)씨가 연도, 급여, 최저임금과 비교한 사항을 또렷하게 기록했다. 전날 만나서는 자신이 직장에서 하는 일에 비해 돈을 많이 받는 것 같다며 자꾸 자기를 깎아내렸다.

“초반에는 좀 힘들었는데, 지금은 힘든 일은 하나도 없어요. 내가 단순한 일을 해요. 총무 업무이기도 하고, 업무 담당자들을 보조하는 업무랄까요. 계속 책상 앞에 앉아서 서류를 보고, 다음 단계로 전달하죠. 일의 강도에 비해 좀 많이 주는 것 같아요. 일 자체가 계속 생각해야 하는 업무는 아니어서 성장 쪽에서 보면 퇴사해야 하는 게 맞는데, 계속 안주하게 되는 그런 게 있더라고요.”

‘최저’도 안 되는 월급 열달이나

어느 회사가 노동자에게 공돈을 주겠는가. 하루 삶을 뚝 떼어 날마다, 지난 5년간 결근도 지각도 한번 없이, 해가 뜨면 집을 나서 일 나가고 해가 지면 돌아오기까지 시간과 에너지, 자신을 바치면서 현수씨는 왜? 그래서 그간 현수씨가 받은 임금의 내력을 따져보았다. 5년 근무 중 3년은 최저 미만이거나 최저에 맞춘 돈이었다. 입사 첫해 석달은 최저임금에 훨씬 못 미치는 돈을 받았다고 말했는데, 집으로 돌아가 되짚었더니 그해가 다 가도록 열달간 최저임금 미만을 받았더라며, 바로잡은 문자를 보내왔다. 기억은 왜 그랬을까.

입사 2, 3년차이던 2018년과 2019년에는 최저임금 인상 폭이 이전보다 커 현수씨는 임금이 오른 걸 실감했다. 그렇잖아도 낮은 최저임금을 그 미만으로 받아왔으니 얼마나 크게 느껴졌을까. 2022년 올해 회사에서 통보받은 연봉은 월급으로 따지면 경기도 생활임금과 서울시교육청의 생활임금을 웃돈다.

“아예 ‘확’까지는 아니지만, 최저가 뛰니까 월급도 오르잖아요. 신입 때는 최저가 되게 중요하다는 걸 알았지요. 최저임금이 어쨌든 사회적으로 높아져야 내 회사에서 주는 임금도 좀 더 높아지니까요.”

현수씨는 학생 때 일해봐서 최저임금을 잘 안다. 무슨 일을 해도, 몇 년을 해도 늘 최저임금에서 맴돌았으니까.

“프랜차이즈 빵집과 패스트푸드점에서 판매 알바, 초밥집과 치킨집에서 서빙 알바를 주로 했어요. 알바는 뭐든지 다 최저로 주잖아요. 최저임금은 늘 부족했어요. 너무 육체적 노동이 세게 다가오니까 이거보다 더 많아야겠다, 더 받아야 하는 거 아닌가 생각했죠. 여러 방면에서 스트레스가 크잖아요. 육체적으로도 그렇지만 서비스직이면 정신적으로 손님들한테도 스트레스 많이 받으니까요.”

의문이 풀린다. 현수씨가 왜 자신이 하는 일에 비해 돈을 많이 받는다고 여기는지. 몸으로 힘들게 일하면서도 늘 최저임금만 받던 자신이 지나온 시간 어딘가에 있고, 지금도 저임금 노동 현장마다 몸과 맘이 지치도록 일해도 최저만 받는 누군가가 여전히 있으니. 그게 못내 미안했을까. “당연히 나는 노동자죠!”라고 말할 줄 아는 이의 본능은.

“아! 그 간격인가 봐요. 지금은 내가 편한 자리에 앉아 있으니까요. 진상 손님에게 당하는 일도 없고요. 상사가 불친절해봤자 이제 진상 손님과는 전혀 상대가 안 되니까요. 그래서 내가 그렇게 느꼈나 봐요. 해본 경험이 있으니까. 서빙은 쉬지 않고 계속 움직이잖아요. 진상 손님도 그렇고 육체적으로 힘든데도 그 최저임금을 받았던 건데요. 맞아요. 간격이 크네요.”

나름 대학 졸업하고 왔는데…

상사가 불친절해봤자 진상 손님에 비할 바가 아니라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입사해서부터 근 4년을 현수씨는 이전 대표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대표는 회사 일을 하러 나온 직원에게 사적인 일을 수시로 시키고, 기분이 거슬리면 언어·감정 폭력을 휘둘렀다. 총무과 신입 직원 서너명이 주로 당했는데, 회사를 떠나지 않고 남은 사람은 현수씨 혼자다.

“지금은 대표가 바뀌어 나갔는데, 계속 있었다면 나도 이렇게 못 다녔을 거예요. 대표가 개인 업무를 시키면 내가 하던 본업을 제쳐두고 해야 하는데, 그러다 보면 또 직속 상사가 업무를 재촉하고, 그럼 완전히 돌아버리죠. 배우자 가게 일부터 자녀 대학 원서 접수며 실기 준비물까지, 내 입시 때보다 더 자세히 모집 요강을 들여다봤어요. 그때 내가 아무리 최저 월급을 받는 사람이라 해도 이런 일까지 해야 하는지, 나름 대학을 졸업하고 왔는데 이런 일까지 해야 하는지 자괴감이 컸어요. 대표가 약간만 자기 마음에 안 들면 엄청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데, 다른 직원들이 다 알게 되는 거죠. 그게 너무 부끄럽고 창피해서 울었어요.”

우는 빈도가 잦았다. 화장실에 가서 울면 지난날 먼저 당했던, 어쩌면 자신보다 더 심하게 당했을 선임이 위로했다. 퇴근 뒤에는 함께 당하는 동료들과 술을 먹으면서 대표를 욕했다. 그래도 고통스러우면 일주일에 한두번은 소주 두어병씩 사서 방문을 잠그고 식구 몰래 혼자 울면서 마셨다. 어떻게든 버티고 살려고. 어른이 되면 절대 술 안 먹어야지 했던 현수씨가 1년씩, 6개월씩 그랬다. 그러고도 다음날 아침이면 제시간에 회사에 가 앉았다.

“중소기업은 특히 체계가 없으니까 대표가 개인 업무를 시키는 경우가 많을걸요. 그럴 때 ‘싫다’고 말할 수가 없죠. 체계상 그렇게 말할 분위기가 안 만들어져요. 그냥 참고 넘기는 거였죠. 나는 그냥 ‘오늘 울어도 또 내일 지나면 괜찮겠지’라는 생각으로 ‘괜찮아, 괜찮아’ 하면서 억지로 억지로 버텼는데요, 지금 누군가 형태는 다르더라도 직장에서 괴롭힘을 당한다면 버티지 말라고 하고 싶어요. 나는 어떻게 보면 버텨서 해결됐잖아요, 원인이 사라진 거니까. 근데 꼭 참고 버티는 게 능사는 아니에요. 특히 요즘 세대에게는요. 그만두고 다른 길을 찾아가거나, 문제 제기하거나…. 너무 참다가 자괴감이 깊어지면 나를 해칠 수 있잖아요.”

근로기준법 제6장의 2 ‘직장 내 괴롭힘의 금지’가 시행되었지만 현수씨에게 법은 멀어 당하고 참고 버티는 수밖에 없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겠지만, 혹여라도 어떤 일이 생긴다면 그때는 혼자 앓지 말자고, 문을 두드리면 함께할 사람이 얼마든지 있다며 우선은 한국여성노동자회니 직장갑질119니 떠오르는 이름을 들려주었다.

박수정 르포 작가. <여자, 노동을 말하다>(2013) 저자. 여성노동자가 머물고 움직이는 장소, 일하는 시간에서 이야기를 찾아 들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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