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귀향 포기한 설.. 반추와 회복을 바란다면
작은 동네
손보미 지음|문학과지성사|316쪽|1만4000원
근래 작가 손보미는 집요할 정도로 맹렬하게 열 살 전후의 아이가 등장하는 성장소설 집필에 몰두하고 있다. 반복의 혐의를 무릅쓰고 작가가 이토록 유사한 주제에 매달리는 까닭은 무엇일까? 작가는 자신을 일신하려는 시기에 흔히 ‘자기 기원에의 탐구’로 들어서게 되는데, 여기서 일단의 단서를 찾을 수 있지 싶다.
장편소설 ‘작은 동네’의 주인공 ‘나’는 삼십 대 후반으로 시간강사 일을 하며 살고 있다. 남편은 연예 기획사 직원. 부모는 오래전에 이혼했는데 어머니가 최근에 담낭암으로 사망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아니, 그 전에 어머니가 열아홉 살에 미금도라는 섬을 몰래 빠져나와 목포에 정착하면서 ‘나’의 수수께끼 같은 드라마가 펼쳐진다.
미금도, 목포, 경기도 광주, 서울, 경주로 이어지는 여정에서 주인공은 자신이 열한 살 때까지 살았던 광주의 ‘작은 동네’를 회상하고 추적한다. 도대체 나는 누구인가? 이런 의혹에 사로잡혀 매번 다가왔다 멀어지기를 되풀이하는 아버지를 찾아다닌다. 또한 남편의 연예 기획사 소속이었던 배우의 실종과 과거 작은 동네에서 만났던 전직 여가수의 자살을 연관시키며 자신의 출생에 관한 비밀에 극적으로 접근한다. 마침내 생모를 포함해 지금까지 인식하고 있던 자신과는 전혀 다른 나와 조우하는 것이다. 세상에 혼자 남겨졌다는 사실과 함께.
이 소설은 추리적 요소와 낯선 공간 분위기를 연출하면서 독자에게 거부하기 힘든 질문과 암시를 던져준다. 우리는 과연 자신이 알고 있던 ‘나’와 동일한 존재인가? 라는 궁극의 질문. 비단 작가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자주 정체성의 혼란을 겪으며 살아가고 있다. 명절이 되면 자기 기원을 찾아 떠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이번 설은 코로나 때문에 귀향을 포기한 사람이 많다. “책 속에는 모든 세계가 다 들어 있어.” 이 소설 속 인물이 하는 말인데, 자신을 고요히 반추하고 회복하는 계기가 되리라 생각하며 감히 일독을 권한다.
윤대녕·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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