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의 '날개' 떠올리며 매일 같이 고향에 산다
날개 : 이상 소설전집
이상 지음|애플북스|420쪽|1만3500원
고향이라는 단어에 따라오는 옛적의 아련함과 그리움 같은 것이 내겐 생소한 개념이다. 본 적도 태어난 곳도 자라난 곳도 살고 있는 곳도 다름 아닌 서울인 까닭이다. 서울의 여러 도심을 이동하며 거처를 바꿨지만 내게 고향 소식은 재개발과 집값 상승의 풍문으로만 들려온다. 내가 살았던 아파트는 전부 허물어졌고, 신발 가방을 죽죽 끌며 터덜터덜 오가던 추억 속 오솔길 따위도 자취조차 없다. 어쩌면 내겐 그런 것을 그리워할 마음이 애초에 허락되지 않았다.
그러나 향수라는 단어를, 세간이 흔히 쓰는 방식이 아닌, 내 삶의 조건대로 바꿔본다면, 사실 나는 어디에서든 향수를 느끼고 고향을 생각한다. 모던 경성의 정오의 사이렌이 더는 울리지 않지만 여전히 ‘현란을 극한 정오’가 어울리는 대처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1936년 작 이상의 ‘날개’ 마지막 장면은 미쓰꼬시 백화점 옥상에 서 있는 화자에게서 나온다. 지금은 중구 소공로 신세계백화점 본점, ‘명동 신세계점’이다. 경성역 티룸에 앉아 있던 화자가 들입다 쏘다니다 ‘희망과 야심이 말소된 페이지’를 넘기며 다다른 곳. 지금은 2022년, 그 옥상에서 인공의 날개를 상상한다는 건 우스운 일일 것이다. 그러나 화자의 그 지극히 못나 빠진 망상에 동의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내게 여전히 내 고향 서울을 부감하는 가장 상징적인 장소는 바로 그곳이다. 마천루의 개념은 끝없이 갱신되어 이제 서울 하늘 성층권에 임박한 듯한 높은 건물이 세워졌지만, 하늘이 가깝다기보다 땅이 멀어 보이는 못난 인간의 절망을 나는 ‘날개’에서 이미 오롯이 겪었기 때문이다. 이 서울을 떠나지 못하고 남겨둔 자리 없는 사람의 마음으로, 매일같이 고향에 산다.
박민정·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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