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 리분희 북한체육 선전물 등장

2022. 1. 29.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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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필국 앵커 ▶

엿새 후면 베이징 겨울올림픽이 개막하죠?

북한은 코로나 19를 이유로 불참을 결정했는데요.

◀ 안주희 앵커 ▶

그런데 북한 내부적으로는 체육대회도 열고, 체육의 중요성을 연신 강조하고 있다면서요?

◀ 기자 ▶

네, 최근엔 현정화 선수와 함께 남북단일팀에서 활약했던 탁구 영웅 리분희가 대외선전매체에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 리포트 ▶

북한 체육정책을 영어로 홍보하는 이 영상에 리분희는 장애인 탁구선수 김영록과 함께 화면에 나오는데요.

"이 분이 리분희예요. 30년 전 남북 단일팀 탁구선수로 세계를 제패했었죠."

리분희는 현재 북한 장애인체육인협회 서기장으로, 자녀 가운데 한 명이 뇌성마비를 앓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 김필국 앵커 ▶

리분희가 현정화 선수와 함께 호흡을 맞췄던 게 벌써 30년이 넘었죠?

◀ 기자 ▶

네, 1991년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최강 중국팀을 물리치고 우승을 차지했었죠?

리분희 선수는 대회 직후 탁구 단일팀이 계속 이어지길 희망한다고 말했었는데요.

[리분희/1991년 5월 인터뷰] "꼭 우리가 이번 우승을 계기로 앞으로 계속 단일팀으로 나가자는 것을 현정화 선수에게 전달해주면 고맙겠습니다."

하지만 1993년 대회를 끝으로 두 사람의 만남은 성사되지 못했습니다.

두 선수 이야기는 영화로도 제작됐죠?

현정화 선수는 그 뒤 두 차례 방북도 했고요.

둘다 지도자로 활동했던 만큼 국제대회에서 재회할 거란 기대도 있었지만 만남은 번번이 불발됐습니다.

[현정화/2018년 9월 인터뷰] "보려고 했는데 못 보고, 만나고 싶다 그러는데, 만나려고까지 했는데 안 만나지고 자꾸 그러니까 북쪽에다가 나 이산가족 하나 남겨놓고 온 듯한 느낌.."

◀ 안주희 앵커 ▶

감동적이었던 단일팀 이야기, 저도 생각나는데요. 외국어로 북한 체육의 우수성을 홍보할만큼 북한이 체육의 중요성을 꽤 강조하는 것 같습니다.

◀ 기자 ▶

네, 얼마 전에는 우리의 전국소년체전에 해당하는 소백수상 청소년학생체육대회도 개최됐고요.

[조선중앙TV] "시·군을 거쳐 도 예선경기들에서 우승한 학교 종목별 전문화 체육소조원들이 18개 종목의 경기들에서 승부를 가리게 됩니다."

방송과 신문에선 계속 체육부문의 발전을 강조합니다.

세계적인 수준에 있는 종목의 국가대표 역량을 보존강화하고, 기술을 한단계 끌어올려야 한다.

체육을 과학화해야 한다며 기술을 부단히 연마할 것을 주문하기도 합니다

코로나 19 등의 이유로 국제대회에 나가진 못하지만 언제든지 성적을 낼 수 있게 실력을 유지하라는 뜻으로도 읽힙니다.

◀ 김필국 앵커 ▶

이런 가운데 북한은 또 미사일 시험발사를 했군요.

◀ 기자 ▶

네, 지난 25일 순항미사일을 쏜데 이어 27일에도 지대지 전술유도탄을 발사했습니다.

김위원장은 이번 발사는 참관하지 않았는데요.

조용원 비서와 미사일 개발의 핵심으로 불리는 김정식 부부장 등을 동행하고 군수공장을 시찰했습니다.

"우리 국방공업의 현대성을 상징하는 본보기공장으로 계속 발전시켜나가기 위한 과업과 방도들을 밝혀주셨습니다."

김위원장이 군수공장을 찾은 건 2019년 6월 이후 2년 8개월 만인데, 대북제재에 맞서 국방력 강화 행보에 나설 것을 분명히 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 김필국 앵커 ▶

네, 박기자 수고했습니다.

기사 원문 - https://imnews.imbc.com/replay/unity/6337234_2911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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