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공약이 비슷할 때 보아야 할 것

이재원 기자 2022. 1. 2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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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넷째 주 서울 아파트 값이 소폭 내렸다고 한다. 20개월 만의 하락이다. 대출 규제와 오르는 금리, 그동안의 급등 피로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일 것이다. 집값이 너무 많이 오른 부작용이 컸으니 상승세가 멈춘 것은 다행한 일이다.

일각에서는 대세 하락이 시작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하지만 상당수 전문가는 더 지켜봐야 알 수 있다고 말한다. 극도로 위축된 거래량 속에서 급매물 위주로 체결된 거래가 만든 통계라서다. 실제로 시장을 둘러보면 싼 매물을 찾기가 아직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여전히 올해 상승을 점치는 전문가도 여럿이다.

특히 선거가 집값 향방을 가를 주요 변수라는 의견이 많다. 사려는 사람이나 팔려는 사람 상당수가 누가 대통령이 되는지를 보겠다며 행동을 미루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선거 결과가 부동산 시장에 어떤 힘으로 작용할지는 모호하다. 지지율이 높은 두 후보의 공약이 워낙 비슷해서다. 수백만 가구 공급 계획과 교통망 확충 계획, 보유세 부담 완화는 물론 양도소득세 완화 등이 그것이다.

공약으로는 비교가 어려우니 조금 다른 관점에서 후보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집값을 잡는다며 ‘자유’를 어디까지 제약할 사람인지를 가늠해보는 것은 어떨까. 사실 지금 무주택자는 물론 1주택자와 다주택자까지 모두가 불만이 가득한 가장 큰 이유도 바로 집값을 잡는다며 자유를 제약한 것에서 찾을 수 있다.

지금 대한민국은 집을 사고파는 것에 대해 정부가 모든 것을 정해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신은 집을 사도 되고 당신은 안된다. 대출을 쓰려면 이 물건은 되고 이 물건은 안 된다. 오늘 파는 것은 괜찮고 내일 파는 것은 안된다. 이런 규칙이 사방팔방에 널려 있다.

은퇴를 앞둔 A씨는 연금만으로는 부족한 생활비를 위해 퇴직금으로 작은 빌라를 하나 사서 월세를 받고 싶다. 그러나 그럴 수 없다. 그 퇴직금으로 집을 사는 순간 받는 월세보다 많은 세금이 기다리고 있어서다. 내가 집을 사면 집값이 더 오른다니 이해가 가면서도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사실 이 정도는 약과다.

이미 7년 전 작은 빌라를 사서 월세를 받던 B씨는 이제 막대한 양도세를 부담하며 집을 팔려고 한다. 보유세가 너무 많이 나와서다. 왜 내가 애써 모은 돈으로 산 작은 빌라 한 채를 정부가 ‘사는 집 아니면 파시라’며 강요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빌라를 구매한 당시는 집값이 오르던 시기도 아니다. 나는 그냥 희생시켜도 되는 사람인가 라고 생각하니 분통이 터진다.

4년 전 대출을 합해 8억원에 집을 산 C씨는 지병이 생기신 부모님 곁으로 이사하기를 포기했다. 집값이 16억원으로 뛰었으니 내야 하는 양도세는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런데 15억원이 넘는 주택은 대출이 나오질 않아 비슷한 수준의 집을 살 수가 없다. 사실 상당수 서울의 1주택자가 양도세와 대출 때문에 지금의 집에서 반강제로 계속 살아야 한다. 이사도 못 가게 하는 나라가 정상 국가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청약을 통해 집을 조금이나마 싸게 장만하려던 D씨는 높은 청약점수를 가졌어도 고를 수 있는 집이 제한돼 있다. 분양가가 9억원이 넘는 순간 중도금 대출이 안 돼서다. 전셋집에 살면서 중도금을 어떻게 따로 마련한다는 말인가. 기다리는 동안 청약 점수는 높아졌는데 선택지는 오히려 좁아졌다.

물론 주택 가격이 마냥 오르는 것을 막기 위해 부동산 정책을 쓰는 것은 필요하다. 문제는 그 한계다. 개별 정책을 놓고 따지면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이렇게 하면 효과는 있는 것인지 답하기 어려운 것이 너무도 많다. 집값을 잡는다며 사방팔방에서 자유를 제한하는 것에 우리는 너무 익숙해져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고위공직자 임용에까지 주택 수를 세는 것이 가장 코미디라고 본다. 노부모를 부양하느라, 직장을 때문에 원거리에 살아서 등의 이유가 있어도 두 채를 가지면 일할 기회가 없다. 일 못 하는 1주택자와 일 잘하는 2주택자가 있다면 누가 장관이 되는 게 맞을까. 그런데 문재인 정부가 오르는 집값의 원인을 ‘다주택자’와 ‘투기꾼’으로 지목한 이후 이제는 능력보다 주택 수를 먼저 따진다.

자유는 그렇게 함부로 제약하는 것이 아니다. 정책을 만들 때 국민의 자유를 얼마나 침해하는지 비중 있게 따져야 한다. 목적이 옳다고 수단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대출과 과세의 기준은 보편적이어야 하고, 과거의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소급해 페널티를 줘서는 안 된다. 9억원, 11억원, 12억원, 15억원으로 제각각인 고가주택 기준을 보면 황당하지 않은가. 그렇다고 집값을 잡은 것도 아니다. 시장의 기능을 무시한 채 남발한 규제만 부담으로 남았을 뿐이다.

그런데 지금 공약들을 보면 문재인 정부 정책을 반대로 한다고만 하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정책 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지향점이다. 집값은 공급으로 확실하게 잡겠다면서 자유도 반드시 돌려주겠다고 힘주어 말하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아직은 그런 목소리가 들리질 않는 것 같아 걱정이다. 공약이 구체화 되는 과정에서 반영되길 기대해 본다.

[이재원 부동산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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