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은심 여사는 그 시대 모든 청년의 어머니였다

문경란 2022. 1. 29.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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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벽두에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여사의 별세 소식을 접했다.

그렇게 고통을 함께 느끼고 나누며 배은심 여사는 이한열의 어머니에서 세상의 어머니가 되었다.

"한열이와 둘이 가요. 그래서 두렵고 무서운 것이 없다 그래요." 어느 자리에선가 30년 민주화 투쟁의 소회를 밝히며 배은심 여사는 아들과의 동행을 강조했지만, 그는 일찌감치 개인적 모성을 넘어 "민주주의는 사람들의 피와 눈물과 땀이 범벅이 되어 한 발짝씩 나아간다"라는 인권 역사의 정수를 꿰뚫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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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은심 여사는 일찌감치 개인적 모성을 넘어 "민주주의는 사람들의 피와 눈물과 땀이 범벅이 되어 한 발짝씩 나아간다"라는 인권 역사의 정수를 꿰뚫고 있었다.
1월10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한열동산에서 배은심 여사 추도식이 열렸다.​​​​​​​ ⓒ시사IN 조남진

새해 벽두에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여사의 별세 소식을 접했다. 아들이 떠난 지 35년. 그 인고의 세월은 헤아리기조차 어렵지만 목울대가 먹먹했다.

한 영상에서 배은심 어머니의 애절한 목소리를 들었다. “(아들 묘소를) 다니다가 다니다가 날마다 다니다가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이 나왔어요. 네가 보고 싶어서 온 게 아니라 내 맘을 위로하려고 온 것 같다 이놈아.”

이한열의 죽음은 먹통 같던 한국 사회에 민주항쟁의 새 장을 열어젖혔다. 동시에 아들의 죽음은 어머니의 새로운 탄생이었다. “이제 다 풀고 가거라. 엄마가 갚을란다. 한열아! 한열아!” 장례식장에서의 절규대로 배은심 여사는 이후 이한열의 어머니에서 인권활동가로 거듭났다.

배은심 여사는 정의로운 죽음이 있는 곳, 자식 잃은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곳이면 어디에나 달려갔다. 1991년 강경대와 그 이후 연이은 죽음의 현장, 용산참사 유가족과 세월호 엄마들, 그리고 미얀마 민주시민의 지인·가족들까지 품어 안았다. 고통의 상통성이라 했던가. “나, 이한열 에미요”라는 한마디는 죽음 앞에서 망연자실한 이들에게 다른 설명이 필요 없는 위로요 치유제였을 것이다. 그렇게 고통을 함께 느끼고 나누며 배은심 여사는 이한열의 어머니에서 세상의 어머니가 되었다.

더 나아가 배은심 여사는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한 싸움의 현장으로 내달렸고 항상 선두에 섰다. 어머니는 “아들을 잊지 않으려고 30년 동안 대중 속으로 들어갔다”라고 했다. 온갖 시위 현장에서 아들이 맞았던 최루탄 가스를 마셨고, 닭장차로 끌려가 구류도 살고, 400일이 넘는 천막 농성을 길 위에서 견뎌냈다. 이렇게 해서 ‘민주화운동보상법’과 ‘의문사진상규명특별법’을 이끌어냈다. 용산범대위 공동대표로 폭압 정치에 항거했으며, 촛불항쟁에서는 앞장서 촛불을 밝혔다. 최근 몇 년 사이에도 나는 카리스마 있는 목소리로 마이크를 잡은 길 위의 배은심 여사를 여기저기서 보곤 했다.

“한열이와 둘이 가요. 그래서 두렵고 무서운 것이 없다 그래요.” 어느 자리에선가 30년 민주화 투쟁의 소회를 밝히며 배은심 여사는 아들과의 동행을 강조했지만, 그는 일찌감치 개인적 모성을 넘어 “민주주의는 사람들의 피와 눈물과 땀이 범벅이 되어 한 발짝씩 나아간다”라는 인권 역사의 정수를 꿰뚫고 있었다.

인권활동가로 거듭난 어머니들

민주 역사의 궤적에서 돌파력 있고 헌신적인 인권운동가로 우뚝 선 배은심 여사를 추모하다가 동시에 인권활동가로 거듭난 어머니들이 떠올랐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며 자신의 몸을 불살라 한국 사회의 양심을 흔들어 깨웠던 전태일 열사와 어머니 이소선 여사를 잊을 수 없다. “내가 못다 이룬 뜻 어머니가 대신 이루어주세요”라는 아들의 유언을 한평생 가슴에 품고 여사는 혹한의 세월을 견디며 노동자의 어머니이자 걸출한 노동운동가이자 민주투사로 평생을 사셨다.

2018년 컨베이어벨트에 감겨 사망한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 여사는 아들의 죽음 후 ‘김용균재단’을 설립했다. 비정규직 없는 세상과 건강하게 일하는 세상을 일구겠다며 재단의 이사장으로 활동하는 그는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을 위한 근 한 달간의 단식농성도 마다하지 않았다.

최근엔 성소수자 자녀를 둔 어머니들의 맹활약도 이어지고 있다. 혐오와 차별에 시달리는 성소수자 자녀들을 뜨겁게 껴안아주고 울타리가 돼주는 성소수자 부모모임의 엄마들은 최근 몇 년째 퀴어축제에서 최고의 감동적인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그럼에도 인권활동가로 거듭난 어머니들을 떠올리면 마음이 저려온다. 많은 이들이 우리 시대 ‘어머니’들의 곁으로 다가와 다 함께 자녀들 인권의 옹호자가 되길 기대해본다.

문경란 (스포츠인권연구소 대표)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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