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언의 책과 사람들] 살기 위해 투쟁한 그 때 그 소녀들
기사내용 요약
책 ‘여공 1970’과 영화 ‘미싱타는 여자들’
[서울=뉴시스] 2017년 가을, 호주 시드니에서 열린 대양주 한국학회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나를 비롯해 총 4명의 연구자들이 ‘3천만의 여배우’라 불렸던 배우 문예봉을 주제로 한 팀이 되었다. 마침 그 해가 일제강점기를 대표하는 배우 문예봉의 탄생 100주년이었기에 이를 기념하는 의미로 기획한 것이었다.
2박3일에 걸친 학술대회에서 소위 문예봉 팀은 둘째 날 오후에 발표가 있었다. 그날 우리는 오전부터 긴장 상태였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드디어 우리 차례가 되었고 문예봉에 관한 4개의 발표와 청중과의 질의응답까지 무사히 마쳤다. 준비한 발표가 끝나자 홀가분한 마음에 한국에서 온 다른 연구자들과 어울려 늦도록 술집에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술자리는 우리보다 먼저 발표를 마친 분들과 함께였는데 그들은 우리 팀의 전우형 선생과 잘 아는 사이였다.
그날 자리에 함께했던 분이 ‘여공 1970’(이매진, 2006)의 저자 김원 선생이라는 것을 안 것은 몇 년이 지나서 우연찮게 본 그분의 페이스북을 통해서였다. 그날 그 자리에서 내가 감동적으로 읽은 책의 저자와 한자리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존경의 헌사를 술자리가 파할 때까지 입이 닳도록 했을 텐데 아쉬울 따름이다.
한때 대학에서 한국영화사를 강의했던 적이 있었다. 매 학기 마지막 수업에 대학생들이 읽었으면 하는 소위 추천도서 몇 권을 알려주는 것으로 한 학기 수업을 마무리하곤 했다. 어느 해 마지막 수업에 김원 선생이 쓴 ‘여공 1970’을 학생들에게 추천한 적이 있었다. 1970년대 노동현장에서 일했던 여공들에 관한 다양한 사례들이 소개된 진지한 연구서임에도 울컥한 감동에 눈물을 훔치며 읽었던 책이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머릿속에 떠오른 풍경이 있었다. 1980년대 초반 내가 살던 동네에는 작은 봉제공장들이 몇 군데 있었다. 거리에 어둠이 깔리면 유쾌한 웃음소리와 함께 그곳에서 일하는 누나들이 퇴근하는 소리가 들렸다. 당시 우리 집은 담뱃가게를 했었는데 좋아하는 남자 직원에게 선물을 한다며 담배를 사 가던 누나가 유독 기억에 남는다. 담배 몇 갑을 선물로 주겠다는 소박한 마음 때문이었는지 다들 신나 했던 모습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남아있다.
1970년대 평화시장의 봉제공장에서 일하던 여성노동자들에 주목한 다큐멘터리 ‘미싱타는 여자들’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여공 1970’이 떠올랐다.
최근 개봉한 이 영화는 전태일의 누이들이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전태일이 뿌린 씨앗이 싹 틔우고 뿌리내릴 수 있게 힘썼던 평화시장의 여성 노동자들의 모습과 그 과정에서 있었던 노동교실 철거 반대 농성 사건을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나는 이 영화를 지난해 DMZ영화제에서 보았는데, 영화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부터 울컥울컥 하는 감정이 목구멍 아래로부터 넘어왔고 급기야 영화가 끝날 때까지 눈물을 펑펑 쏟으며 볼 수밖에 없었다. 초등학교 정도만 마친 아이들이 얼마나 배움에 목말라했는지, “우리 학교”를 지키기 위해, 노동자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는지를 그들의 목소리, 표정, 몸짓을 통해 느꼈다. 그때마다 쏟아지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이 영화를 만든 두 분의 감독 중 김정영 감독과는 2018년 국제영화제 평가위원을 함께 하면서 알게 된 사이이다. 그때 그는 봉제 노동자들의 구술사를 기록하는 일을 하고 있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여성노동자들의 구술을 바탕으로 다큐멘터리를 만들겠다고 했다. 그렇게 시작된 프로젝트가 감동적인 작품으로 완성되었다는 게 대견하고 뿌듯할 따름이다.
그러고 보니 이 영화를 보고 난 후 내 마음이, 1947년 메이데이 행사에 대오를 지어 행사장으로 행진해 오는 여성노동자들의 늠름한 모습에 눈물을 훔치며 박수를 보냈던 배우 문예봉의 마음과 꼭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한상언영화연구소대표·영화학 박사·영화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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