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가' 사령탑의 우려는 현실이 된다.. 허나 얻은 것도 있다

스포츠한국 허행운 기자 2022. 1. 2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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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국생명의 박미희 감독. ⓒ한국배구연맹(KOVO)

[삼산=스포츠한국 허행운 기자] 경기 전 박미희 감독이 드러냈던 걱정은 그대로 현실이 됐다. 그러나 또 그의 말대로 얻은 것 또한 없지 않은 경기였다.

흥국생명은 지난 28일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도드람 2021~2022 V-리그 여자부 5라운드 현대건설과의 홈경기에서 세트스코어 0-3(20-25, 17-25, 20-25)로 패배했다.

다소 무기력한 패배였다. 팀의 주포 캐서린 벨(캣벨)의 부진이 너무 뼈아팠다. 캣벨은 이날 단 1득점에 그쳤다. 오픈 공격 5개 중 1개만 성공시켰을 뿐, 퀵오픈(0/6), 후위공격(0/3) 모두 말을 듣지 않는 최악의 부진이었다. 범실 2개에 상대 블로킹에 막힌 공격도 4개나 된다. 캣벨은 이날 공격성공률이 7.1%에 그치는 굴욕을 맛봤다.

그에 따라 1,2세트는 일찌감치 정윤주와 교체되며 코트를 떠났다. 3세트는 아예 스타팅으로 발탁되지도 않고 웜업존에서 경기를 지켜봤다.

이날 경기가 꿀맛 같은 올스타브레이크 이후 펼쳐진 첫 경기라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아쉬움이 남는다. 휴식기간 몸을 만들고, 외인 선수로서 자신이 맡은 에이스 역할을 다하는 것은 본인의 몫이다. 하지만 이날 캣벨에게 그런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박미희 감독도 경기 후 “무릎이 안좋다고는 하는데 그거랑 상관없이 본인 책임을 다 못했다. 책임감 가질 수 있도록 질타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라며 이례적으로 공개적인 자리에서 캣벨을 지적했다.

흥국생명 외국인 선수 캐서린 벨. ⓒ한국배구연맹(KOVO)

하지만 휴식 이후 첫 경기였다는 특수성을 제외하면 마냥 캣벨을 나무랄 수는 없다. 캣벨이 흥국생명에서 홀로 감당하고 있는 짐이 너무나도 크기 때문.

캣벨은 현재 여자부 득점 선두(645점)를 달리고 있다. 하지만 이 기록에는 맹점이 있다. 캣벨은 25경기에서 91세트를 소화했다. 모두 외인 선수 중 최다 경기 최다 세트다. 그만큼 그에게 주어진 공격 횟수가 많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흥국생명에는 캣벨과 쌍두마차를 이뤄줄만한 주축 선수가 부족하다.

이를 뒷받침하는 또다른 지표가 바로 공격 성공률이다. 캣벨의 공격성공률은 37.03%로 전체 7위로 결코 낮진 않지만, 외국인선수로 좁혀보면 이야기가 다르다. 교체가 있었던 IBK기업은행(레베카 라셈→달리 산타나)을 제외하면 외국인 선수 중 가장 낮다. 성공률이 떨어짐에도 누적 득점이 1위라는 것은 그만큼 흥국생명의 공격이 캣벨에게 쏠려 있다는 뜻이다.

실제 그의 공격 점유율은 46.18%로 매우 높다. 박 감독도 “지난 라운드 가장 아쉬웠던 것은 역시 캣벨 의존도가 높아 리스크가 컸다는 점”이라며 그 점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리스크’는 바로 캣벨의 컨디션이 떨어졌을 때 팀 전체가 아무것도 해보지 못하고 패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흥국생명은 한 세트도 따내지 못하고 무력하게 홈팬들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하지만 매 세트 흥국생명은 잘 따라가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심지어 분위기를 살려 리드한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승부가 갈리는 순간에 책임을 다해줄 ‘에이스’가 부재하다는 사실이 인천 팬들에겐 너무 잔혹했다.

흥국생명의 레프트 정윤주(왼쪽)와 센터 이주아. ⓒ한국배구연맹(KOVO)

하지만 수확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경기 전 “설령 패하더라도 얻는 것이 있어야 발전이 있다”라는 박 감독의 말처럼 이날 흥국생명에서는 정윤주가 반짝였다.

정윤주는 올해 암흑기에 빠진 흥국생명의 몇 안되는 히트상품이다. 아직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않은 프로 새내기 정윤주는 올 시즌 이윤정(한국도로공사), 정호영(KGC 인삼공사) 등과 함께 쟁쟁한 신인왕 후보로 분류되며 존재감을 연일 드러내고 있다.

박 감독은 정윤주에 대해 “예체능은 어느 분야든 노력으로는 한계가 있다. 타고나는 부분이 무조건 있어야하는데 (정윤주는) 그 부분에서 좋은 점을 갖췄다”고 평가를 내렸다. 그만큼 정윤주가 가지고 있는 피지컬에 주목한 것. 앞으로 더 갈고 닦는다면 흥국생명의 미래를 책임질 자원이라는 의미가 담겨있었다.

이날도 정윤주는 에이스를 대신해 중간에 투입돼 큰 인상을 남겼다. 1세트부터 5점을 몰아치며 손끝을 달궜다. 팀 전체가 가라앉은 2세트를 지나 3세트에는 스타팅으로 나서 팀 공격의 대부분을 책임졌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팀을 홀로 이끈 것. 이날 정윤주는 공격 점유율이 24.3%로 팀 내에서 가장 높았다. 그러면서도 44.4%의 공격성공률과 함께 13점을 올리며 분전했다.

하지만 이런 중요한 역할을 맡는 어린 제자에 대해 박 감독은 미안함도 드러냈다. 그는 “(정)윤주 정도 막내면 분위기가 좋을 때 투입되면 좋은데, 팀이 안될 때 투입되다보니 자꾸 부담을 주게 돼서 안타깝다”며 “이럴 때 분위기를 바꿔보고 잘 견디면 성장 속도가 빠를 것이다. (현대건설전) 주눅들지 않고 본인이 하고 싶은 것 잘했다”고 칭찬을 빠트리지 않았다.

올시즌 흥국생명이 봄배구를 하려면 기적이 필요한 상황. 그러나 기적은 준비된 자에게 찾아오는 법이기도 하고, 흥국생명은 아직 그 기적을 잡아내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다. 그렇기에 정윤주라는 미래를 볼 때다. 뿐만 아니라 이주아, 김채연 등 젊은 센터라인도 날이 갈수록 발전하는 것도 긍정적이다. 남은 흥국생명의 시즌은 이들을 주목해봐야 한다.

스포츠한국 허행운 기자 lucky@sportshank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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