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프리즘] 누가 대출금리를 올렸는가

황정일 2022. 1. 29.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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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일 경제산업에디터
요즘 신규 전세대출의 이자가 전월세전환율보다 높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전세대출 이자를 내느니 차라리 월세가 낫겠다’는 말까지 나온다. 실제 그렇다. 요즘 전세대출(주택금융공사 보증상품) 금리는 연 2.9~4.94%. 일부 은행은 연 5.112%로, 우대금리 혜택을 못 받으면 연 5%가 넘는 이자를 내야 한다. 금리가 연 5%이고, 전세대출로 1억원을 조달한다면 임차인의 월 이자는 41만원 정도다. 하지만 전셋값 중 1억원을 월세로 전환하면(지난해 12월 전월세전환율 3.75%·KB국민은행 통계) 월 31만원가량 부담하면 된다. 서울은 지난해 말 기준 전월세전환율이 3.13%로 전국 평균치보다 더 낫다. 서울에서는 대출 받아 전세 들 바엔 월세가 낫다는 얘기다.

전세대출만이 아니다. 요즘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이나 신용대출 이자는 자고 나면 오른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대출금리 상승세가 최근 더 가팔라진 것이다. 대출금리가 이렇게 빨리 오른 적이 있나 싶을 정도다. 이유가 뭘까.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렸기 때문에? 글쎄. 물론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린 건 맞다. 그렇다고 해도 기준금리는 코로나19 이전인 2년 전으로 복귀한 연 1.25% 수준이다. 그러나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시중은행의 각종 대출금리는 2년 전보다 1.4%포인트가량 높다.

「 각종 대출금리 상승 속도 너무 빨라
정책 실패 탓 … 애꿎은 국민이 부담

구체적으로 지난해 12월 은행이 취급한 신용대출 평균금리(서민금융 제외)는 3.89%다. 2020년 3월(2.78%) 대비 1.11%포인트 높다. 주담대 역시 2년 전(2.67%)보다 1.13% 높은 3.8%에 이른다. 기준금리는 같지만, 대출을 받은 사람들은 2년 전보다 더 많은 이자를 내고 있는 것이다. 이는 대출금리를 낮춰주는 각종 우대금리가 줄거나 사라졌기 때문이다. 덩치가 큰 주담대의 우대금리는 2년 전보다 0.41%포인트 줄었는데, 이 기간 지표금리(0.35%포인트)·가산금리(0.34%포인트) 상승폭보다 크다.

은행이 우대금리를 줄이기 시작한 건 지난해 3분기 금융당국이 가계대출 총량 한도 관리를 시작하면서다. 대출을 줄이라고 하니 은행은 대출금리를 인상할 수밖에 없었고, 이를 위해 우대금리를 축소하거나 우대금리를 그대로 두는 대신 가산금리를 붙여 대출금리를 인상했다. 정부는 가계대출이 급증하면서 나라 경제에 빨간불이 켜졌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본질은 대출 규제를 통한 집값 안정화였다. 실패한 부동산 정책 탓에 집값이 급등하자 아예 돈줄을 끊어 집값 잡기에 나선 것이다.

어디 이뿐인가. 수년째 적자 살림에 잇따른 추경(추가경정예산)으로 대출금리의 선행지표인 국고채 금리가 치솟고 있다. 지금의 비정상적인 대출금리 상승세는 결과적으로 부동산 정책 실패와 나라 살림살이 형편에 따른 결과인 셈이다. 그런데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이 떠안고 있다. 영영 집을 못 살까 두려워 대출을 받아 집을 산 사람, 집을 담보로 생활비를 조달한 영세사업자, 급등한 전셋값을 대출로 마련한 사람…. 정부는 이들에게 대출을 받았으니 이자를 더 내놓으라고 윽박지르고 있다.

2일 집권여당의 한 의원은 자신이 SNS에 이렇게 적었다. “코로나에 자영업자들이 문을 닫고 세입자들이 높은 이자에 허덕이는 중에 은행들은 ‘약탈적 금리’를 통해 배를 불려왔다. 정부는 21세기 탐관오리인 금융기관들이 더이상 서민들의 피땀으로 배를 불리는 일이 없도록 시중은행에 즉각적인 금리 인하를 강하게 요구해야 한다.” 은행들의 잘못도 분명 없지 않지만, 대출금리 상승의 원흉인 집권여당이 할 소리는 아닌 것 같다. 정부와 여당이야말로 서민들의 피땀을 자신들의 정치이념 실현과 정권 유지에 활용하는 것을 멈춰야 한다.

황정일 경제산업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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