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병주의역사유적탐방] 새해 왕들이 찾은 곳, 종묘

2022. 1. 28. 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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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왕실의 최대 존엄을 보여주는 공간인 종묘(宗廟)는 왕이 거처하는 궁궐보다 더 존엄을 상징하는 공간이었다.

종묘는 새해를 맞이하여 왕들이 찾아 선조에게 인사를 드리는 곳이기도 했다.

1763년(영조 39) '승정원일기' 1월1일 기록에는 새해 첫날 영조가 선대왕과 왕비의 위패가 모셔진 종묘에 거둥했던 모습이 나타난다.

후궁은 왕의 어머니일지라도 종묘에 모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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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 정전
조선시대 왕실의 최대 존엄을 보여주는 공간인 종묘(宗廟)는 왕이 거처하는 궁궐보다 더 존엄을 상징하는 공간이었다. 종묘는 새해를 맞이하여 왕들이 찾아 선조에게 인사를 드리는 곳이기도 했다. 1763년(영조 39) ‘승정원일기’ 1월1일 기록에는 새해 첫날 영조가 선대왕과 왕비의 위패가 모셔진 종묘에 거둥했던 모습이 나타난다. 영조는 진시(오전 7~9시)에 종묘로 향했고, 이 행차에는 승정원의 비서들과 사관(史官)들이 수행했다. 종묘 참배에 이어 영조가 찾은 곳은 생모 숙빈 최씨를 모신 육상궁(毓祥宮)이었다. 후궁은 왕의 어머니일지라도 종묘에 모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종묘는 태묘(太廟)라고도 하는데, 정전(正殿)과 영녕전(永寧殿)으로 구성되었다. 처음 태조의 4대조(목조·익조·도조·환조)를 모셨다가, 이후 왕이 승하하면 그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시는 방식이었다. 그러다가 1421년(세종 3) 정종(定宗)의 신주를 종묘에 모실 때 태실(太室)이 부족하므로, 정전과는 별도의 사당인 별묘(別廟)를 건립했는데 이것이 영녕전이다. 영녕전에는 태조의 4대조를 옮겨 모신 이후, 4대가 끝난 왕과 왕비들을 모셔왔다. 그런데 태조는 물론이고 태종, 세종, 세조처럼 공적이 많은 왕의 신주는 차마 영녕전으로 옮기지 못하였다. 결국 불천위(不遷位)라 하여 정전에 그대로 모셨고 서쪽부터 태조, 태종, 세종, 세조, 성종, 중종, 선조, 인조, 효종, 현종, 숙종, 영조, 정조, 순조 등 불천위 14위와 문조(효명세자), 헌종, 철종, 고종, 순종 등 총 19위의 신위가 모셔져 있다. 문조부터 고종은 순종의 4대조가 된다. 영녕전은 중앙에 태조의 4대조와 왕비의 신주를 모셨으며 서쪽부터 정종, 문종, 단종, 덕종(의경세자), 예종, 인종, 명종, 원종(인조의 아버지), 경종, 진종(효장세자), 장조(사도세자), 영친왕의 신위를 모셨다.

정전과 영녕전에 따로 배향된 왕의 모습에서, 조선시대에도 왕의 업적을 냉정하게 평가한 시대상이 확인된다. 정전은 국보, 영녕전은 보물로 지정되었으며, 종묘 전체는 소박하면서도 장엄한 건축의 멋을 인정받아 199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신병주 건국대 교수·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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