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석자 내세워 파리서 매출 1위 찍은 디자이너 [W인터뷰]

이영욱 2022. 1. 28.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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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end Interview] 우영미 '솔리드 옴므·우영미' 디자이너
韓 최초 파리의상조합 정회원

"한국에서 온 디자이너의 쇼를 봤는데, 우영미가 왜 파리에 매장을 내지 않는지 모르겠다." 2002년 프랑스 파리에서 그가 만든 브랜드 '우영미'를 처음 선보였을 때, 우영미 디자이너는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패션의 본고장 유럽에서 만난 패션 관계자들의 텃세는 심했고, 이름난 브랜드들과의 경쟁은 힘에 부쳤다. 마치 보이지 않는 높은 벽에 가로막힌 느낌이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일요일 오전 10시 반, 우여곡절 끝에 쇼를 마친 우영미 디자이너는 다음 날 프랑스 유력 언론 르 피가로에 실린 기사를 보고 깜짝 놀랐다. 파리 컬렉션을 다룬 기사 중 신인 디자이너를 소개하는 코너에 자신을 극찬하는 평가가 실린 것이다. 아시아에서 온 동양인 디자이너를 거들떠보지도 않던 유럽인들의 시각을 완전히 바꿔놓은 것이다.

한국 최초의 남성복 디자이너로 활동한 여성 디자이너, 한국 최초의 파리의상조합 정회원 등 우영미 디자이너에겐 `최초`란 수식어가 유독 많이 따라다닌다. [사진 제공 = 쏠리드]
지난해 말 서울시 강남구 쏠리드 본사에서 만난 우영미 디자이너는 2022년 1월 18일부터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2022 FW 파리 패션위크를 준비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20년 동안 '우영미'는 파리에서 가장 잘나가는 한국 패션 브랜드가 됐다. '우영미' 브랜드를 선보인 지 20년 만에 디자이너 우영미는 자신의 또 다른 브랜드 '솔리드 옴므'를 처음으로 파리 무대에 올렸다. 한국 최초의 남성복 디자이너로 활동한 여성 디자이너, 한국 최초의 파리의상조합 정회원 등 그에겐 '최초'란 수식어가 유독 많이 따라다닌다.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남성을 위한 옷을 디자인하는 쏠리드 대표 우영미 디자이너를 만나 패션과 함께한 그의 인생에 대해 들어봤다.
―'우영미' '솔리드 옴므'는 어떤 브랜드예요.

▷1988년 '솔리드 옴므', 2002년 '우영미'를 출시했으니 '솔리드 옴므'가 형인 셈이죠. '솔리드 옴므'는 30여 년 전 제가 생각했던 남성이고 '우영미'는 제가 그보다 조금 더 나이 들어 만든 남성입니다. 제가 두 남성복 브랜드를 각각 큰아들, 작은아들로 소개하거든요. 마치 아들처럼 의인화해서 브랜드에 캐릭터를 부여하는 것이죠. 둘 다 2030 남성 소비자를 타깃으로 하고 있습니다.

―두 아드님 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우선 큰아들 이야기부터 해볼까요(웃음). '솔리드 옴므'는 전형적인 맏이예요. 믿음직하고 시크하죠. 지구를 지키는 슈퍼히어로 같은 그런 듬직한 면이 있는 남자, 결혼 상대로 100점 만점인 그런 사람이요. 반면 작은아들 '우영미'는 로맨틱한 면도 있고, 보헤미안 같은 자유분방한 영혼을 가진 존재예요. 결혼보다는 연애에 좀 더 적합한 남자죠.

―여성 최초의 남성복 디자이너로 알려져 있습니다. 디자이너가 된 계기가 있나요.

▷대학시절 교과 과정은 남녀 구분 없이 '의상학' 딱 하나였어요. 저는 여성복을 전공했는데, 반도패션(현 LF의 전신)에 잠깐 몸담았다가 외국계 기업으로 이직했습니다. 문득 회사가 원하는 게 아니라 제가 원하는 옷을 만들고 싶어 1988년 솔리드 옴므를 출시·독립했습니다. 88서울올림픽을 기점으로 해외 유학생이 들어오면서 압구정 '오렌지족'이 주목받던 시기였어요. 당시 여성복에서 남성복으로 옮기는 디자이너는 없었는데, 남성복을 패션으로 보지 않는 시대적 분위기 때문이었죠.

―20년 전으로 잠깐 돌아가볼게요. 파리에 진출했을 때 정말 힘드셨다면서요.

▷파리 진출 약 4년 전부터 유럽의 모든 전시회에 옷을 들고 가 제 브랜드를 선보였어요. 무명의 한국 디자이너로 패션쇼를 꾸준히 열었죠. 유럽에서 성공하겠단 확신이 들어 유럽에서 컬렉션을 선보이겠다고 선언했더니 주변에서 '미쳤다' '주책이다' 등의 반응이 돌아왔습니다. 우리나라 디자이너로서 성공한 전례가 없었기 때문에 더 그랬죠.

―결국 무모한 도전이 결실을 맺었네요.

▷유럽 시장에 도전한 것은 '두려움' 때문이었어요. 제가 유럽 진출을 결정했을 때 전 세계 브랜드들이 한국 시장으로 밀려 들어오는 걸 보면서 국내에서 안주하면 언젠간 제 브랜드도 (해외 브랜드에 밀려) 없어지겠다 싶은 거예요. 해외 진출 전략은 없었지만 무조건 현지 시장의 문을 두드리기로 한 거죠. 돌이켜보면 제가 전략은 없어도 감은 좋았지 않나 싶습니다.

―한국 디자이너 최초 파리의상조합 정회원이기도 하시죠. 가입이 까다롭다고 들었습니다.

▷정회원은 90명 정도인데 우리가 아는 명품 브랜드들은 거의 다 있어요. 물론 정회원이 되기 어렵고, 협회에서 정식으로 패션쇼 스케줄을 배정받는 것도 까다롭습니다. 협회의 깐깐한 심사를 거친 뒤 파리 컬렉션의 위상을 무너뜨리지 않을 디자이너란 판단이 서야 정회원이 될 자격이 생깁니다. 협회 인정을 받아야 전 세계 유력 매체들을 만나 제 브랜드를 알릴 수 있어요. 우리 시간으로 '솔리드 옴므'는 1월 19일, '우영미'는 24일 패션쇼를 선보입니다.

―현지에서 '솔리드 옴므' '우영미'의 인기, 어느 정도인가요.

▷'우영미'는 2020년 파리의 유명 백화점 봉 마르셰(LVMH그룹이 운영하는 17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백화점)의 남성관 매출 1위를 달성했어요. 추가 주문을 하겠단 연락도 여러 곳에서 받았어요. '우영미'는 유럽에 뿌리를 잘 내렸다고 생각합니다. 전생에 제가 유럽에서 살았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웃음).

―한국적인 것이 현지에서도 통한 건가요.

▷"당신의 옷은 서양적이지도, 동양적이지도 않다." 한 언론인이 제게 했던 말인데, 제 브랜드를 가장 잘 표현하는 말이다 싶어요. 유럽 소비자들은 '우영미'를 한국 브랜드라고 보지 않아요. 그들은 브랜드·디자이너의 국적보단 옷의 본질인 품질을 더 중시하거든요. 디자인에서 문화적 특수성보다 보편성이 중요한 이유죠.

[사진 제공 = 쏠리드]
―가족이 모두 패션·디자인 업계에 몸담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건축가였던 아버지, 중학교 교사였던 어머니 모두 라이프스타일에 관심이 많은 분이었어요. 1960년대 아버지는 매일 아침 로브가운을 걸치고 파이프를 피우며 드립 커피를 내려 드셨던 분이었죠. 한 달 뒤에 먹을 쌀이 없어도 예쁜 커피잔을 사야 했던 분이었는데, 이런 환경에서 자랐으니 집안 내력인 것 같기도 해요. 자매들도 그렇고요(언니 우경미 디자인알레 대표와 동생 우현미 소장은 '디자인 알레'라는 조경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디자인알레의 작업실이자 레스토랑과 카페가 있는 라이프스타일 농장이 과천 마이알레다). 보통 가족이 만나면 정치·경제·사회 등을 주제로 대화를 하는데, 저희 가족의 화제는 언제나 '디자인'입니다. 밤샘토론도 가능할 거예요.

―창작의 영감은 어떻게 얻습니까.

▷콕 집어 어디에서 얻는다고 말하긴 어려워요. 다만 영감을 얻기 위해 항상 머리 위 '안테나'를 세우고 삽니다. 전시회도 가고, 다큐·영화·책도 보고, 사람도 관찰하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하죠. 그러다 보면 뭔가 나에게 오지 않겠나 싶어서요. 누군가 툭 던진 말에 영감을 얻을 때도 있고요. 영감을 얻는 건 저에게 여전히 큰 숙제입니다. '저 사람을 아름답게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제가 항상 스스로에게 하는 질문이죠.

―패션 하면 트렌드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요즘 트렌드는 뭘까요.

▷트렌드는 인류가 나아가고자 하는 소망입니다. 일종의 역사이자 그 시대의 욕망이기도 하죠. 그 트렌드는 디자이너로서 내 정체성과 맞을 때도, 그렇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서핑에 비유할 수 있어요. 제가 트렌드라는 거대한 파도와 맞지 않는다면 몸을 낮춘 채 파도가 무사히 지나가길 기다리고, 저와 맞는 파도가 오면 그땐 서핑보드를 타고 파도를 넘는 것이죠. 디자이너는 소비자의 취향을 배려할 줄 알아야 하지만 너무 끌려가선 안 됩니다. 한발짝 정도 앞에서 소비자를 리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꾸준함의 비결이 궁금합니다.

▷비결은 없고 타고난 것 같아요. 한국식 '빨리빨리' 기준으론 전 빵점이에요(웃음). '30년간 디자인을 했으면서 그것밖에 못했어요?' 제가 디자인을 하면서 가장 많이 들은 이야기예요. 브랜드도 한 10개쯤 만들고, 홈쇼핑도 나가고, 매출도 크게 올렸어야 했는데 그 재주로 안타깝다는 지적이었죠. 물론 우리가 외적으론 성장하지 못했을 수 있지만 꾸준함 덕에 콘텐츠는 응축돼 있다고 생각합니다. 명품, 좋은 브랜드가 되려면 시간과 연륜이 필요한 거죠. 저희 같은 '패션 하우스'들이 늘어나야 디자인·마케팅·영업 등 다양한 인재들이 육성될 기반이 생깁니다.

―옷 잘 입는 비결이 있을까요.

▷객관화를 해보세요. 내가 정말 보여주고 싶은 내 모습이 무엇인지요. 그러려면 우선 나에 대해서 잘 알아야 합니다. 옷을 다양하게 많이 입어보세요. 여기엔 시간, 노력, 돈이 필요합니다. 큰돈을 쓰라는 것이 아니에요. 우리가 먹고 마시는 데 돈을 쓰듯 패션을 위해 최소한의 투자는 해야 한다는 것이죠.

―스스로에게 점수를 주신다면 몇 점일까요.

▷70점이요. 타고난 천재성이 있는 것도 아니고 머리가 좋은 것도 아니고 전략적이지도 못하지만, 적어도 제 스스로 정말 열심히 살았다고 인정할 수 있어요. 다시 살라고 해도 이렇게 열심히 살 자신은 솔직히 없거든요.

―디자이너 우영미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기억되길 원하시나요.

▷'하루하루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 최대한 사는 겁니다.' 법정 스님이 남긴 말씀이에요. 여기에 '나는 앞으로 나아갔다'는 말을 덧붙이고 싶네요. 우리는 모두 유한한 존재죠. 제게 주어진 기회가 인생이란 큰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디자이너로서 하나 욕심을 덧붙이면 사람들에게 우영미 하면 떠오르는 '룩'이 있었으면 하는 것이에요. 하지만 이보다 앞서 '우영미는 굉장히 최선을 다하고 산 사람이었다'고 기억되고 싶네요.

―우영미에게 디자인이란.

▷사람에 대한 배려. 배려가 가장 중요해요. 디자이너는 사람이라는 오브제를 따뜻한 마음으로 이해할 줄 알아야 합니다. 누군가를 더 멋지게, 더 자신감 있게 만들어주는 게 제 역할이죠. 디자이너의 역할은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그 시대의 사람을 어떻게 하면 멋있게 만들어줄지를 끊임없이 연구하는 사람이거든요.

▶▶ 우영미 디자이너는…

1959년생. 남성복 '우영미'와 '솔리드 옴므'를 만든 디자이너로 쏠리드의 최고경영자(CEO)다. 1988년 한국 여성 패션디자이너 최초로 남성복 브랜드 '솔리드 옴므'를 출시했으며, 2002년 '우영미'를 파리 패션위크에서 처음 선보인 뒤 매년 현지에서 남성복 패션쇼를 열며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2011년 한국인 최초로 프랑스 파리의상조합 정회원 자격을 취득했다. 2014~2016년 비즈니스오브패션(BoF)이 선정한 글로벌 패션 500인에 이름을 올렸다.

[이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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