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병이 유행할 때는 차례 생략하기도"..한국국학진흥원, 고문서 속 제례문화 소개
[경향신문]
한국국학진흥원은 명절 때 차례상을 간소하게 차리고 전염병이 돌 때 제사를 지내지 않기도 했다는 기록이 옛 문서에 남아있다고 28일 밝혔다.
한국국학진흥원은 소장 일기자료 가운데 역병이 유행하는 탓에 설과 추석 등 명절 차례를 생략했다는 내용이 담긴 일기가 있다고 소개했다. 경북 예천에 살았던 초간 권문해가 쓴 ‘초간일기’의 1582년 2월15일자에는 “역병이 번지기 시작하여 차례를 행하지 못하니 몹시 미안하였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또 안동 하회마을의 류의목은 1798년 8월14일 ‘하와일록’에 “마마(천연두)가 극성을 부려 마을에서 의논하여 추석에 제사를 지내지 않기로 정했다”고 적었다. 안동 풍산의 김두흠 역시 1851년 3월5일 자신의 일기인 ‘일록’에 “나라에 천연두가 창궐하여 차례를 행하지 못하였다”고 썼다.
과거 집안에 상을 당하거나 환자가 생기는 등 나쁜 일이 생겼을 때는 차례는 물론 기제사도 지내지 않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는 게 국학진흥원의 설명이다.
국학진흥원 측은 “이는 유교뿐만 아니라 민간에서도 마찬가지였다”면서 “조상에게 제수를 올리는 차례와 기제사는 정결한 상태에서 지내야 하는데, 전염병에 의해 오염된 환경은 불결하다고 여겼던 것이다”고 밝혔다.
한국국학진흥원은 역병이 돌 때 차례를 비롯한 모든 집안 행사를 포기한 이유로 전염의 우려가 컸기 때문이라고 봤다. 사람 간의 접촉 기회를 최대한 줄여 전염병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가 반영된 움직임이라는 것이다.
또한 한국국학진흥원은 제례문화의 지침서인 ‘주자가례’를 보면 설 차례 상에 술 한 잔, 차 한 잔, 과일 한 쟁반 등 3가지 음식을 차렸고 술도 한 번만 올리며 축문도 읽지 않는다는 기록이 남아있다고 소개했다. 즉 술·떡국·과일 한 쟁반을 기본으로 차리되, 나머지는 형편에 따라 일부를 추가하거나 빼도 예법에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앞서 한국국학진흥원은 2017년부터 제례문화의 현대화 사업을 추진하면서 예서와 종가, 일반 가정의 설 차례상을 조사한 바 있다. 그 결과 일반 가정의 차례 음식이 전통 예서 및 종가에 비해 평균 5~6배 가량 많은 수의 제수를 차례상 위에 올리는 것으로 파악됐다.
국학진흥원은 전통 격식을 지키는 종가의 설 차례상 역시 주자가례에 나타난 차례상 수준과 비슷하다고 밝혔다. 실제 경북 안동에 위치한 퇴계 이황 종가에서는 술, 떡국, 포, 전 한 접시, 과일 한 쟁반 등 5가지 제수를 진설한다.
이황 종가에서는 과일 쟁반에 대추 3개, 밤 5개, 배 1개, 감 1개, 사과 1개, 귤 1개를 담는다. 주자가례에 비해 차가 생략된 대신 떡국과 전, 북어포가 추가된다. 하지만 일반 가정의 차례상에는 평균 25~30가지의 제수가 올라가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국학진흥원 관계자는 “우리 제례문화도 시대의 변화와 환경에 따라 간소한 수준으로 바꿔야 한다”면서 “또 요즘과 같이 (코로나19와 같은) 전염병이 퍼질 때는 조선시대 선비들처럼 일상의 변화를 통해 차례의 예를 바꿀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백경열 기자 merc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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