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선출된 지도자의 민주주의 파괴

기자 2022. 1. 28.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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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 논설위원

선관위 조해주 사퇴촉구 성명

선거공정성 훼손에 대한 경고

민주주의 파괴 심각성 일깨워

사법부·언론·선거 규칙 장악

선출된 독재자 행태 답습하는

文정권에 국민·공무원 맞서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전체 직원이 조해주 상임위원 사퇴 촉구 공동성명을 발표한 2022년 1월 20일은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에서 하나의 분기점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두 번이나 반려했던 조 상임위원의 사직서를 수리했기 때문이 아니다. 9명(1명 공석)의 선관위원 중 7명이 친여 인사이고 1명이 여야 합의로 선출된 중립 성향 인사인 상황에서 조 위원의 사퇴만으로 대선 관리의 공정성이 담보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1963년 선관위 설립 이후 처음인 이번 집단행동은 강렬한 메시지를 던졌다.

1차 타깃은 문재인 정권이다. 직원 중에는 친문도 있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 지지자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1∼9급과 17개 시·도 선관위 지도부 등 2900여 명 직원 전원이 성명 발표에 참여했다. 선거의 공정성 유지는 민주주의의 마지노선이고 이를 무너뜨리려는 시도는 정파나 이념을 가리지 않고 강력한 저항에 부딪힐 수 있다는 경고다. 2차 타깃은 국민이다. 문재인 정권의 민주적 가치 훼손과 민주주의 파괴행위에 시나브로 익숙해져 이젠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는 우리를 일깨우는 것이다.

선출된 지도자에 의한 민주주의 파괴는 쿠데타나 계엄령 선포 같은 헌정 중단 사태 없이 점진적으로 교묘하게 진행된다. 의회나 법원의 승인을 받았다는 점에서 합법적이다. 국민은 예전과 같이 투표하면서 여전히 민주주의 체제에 살고 있다고 착각한다. 문재인 정권은 출범 직후부터 선출된 독재자의 전형적 행태를 답습했다.

첫째, 사법부를 비롯한 중립 기관들을 입맛대로 바꿔 무기로 활용했다. 대법원의 경우, 대법관 14명 중 13명이 문 정권에서 임명됐는데 이 중 7명은 친정부 성향의 우리법연구회와 국제인권법연구회,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출신이다. 지난 25일 단행된 고위법관 인사에서 서울행정법원장,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 대법원장 비서실장 등의 요직을 차지한 판사도 마찬가지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이 같은 코드 인사를 한 뒤 권력형 사건을 배당해 코드 판결을 유도하고, 이마저 어려우면 재판을 지연시켰다는 의혹을 받는다. 헌법재판소도 9명의 재판관 중 8명이 문 정권에서 임명됐고 6명이 친정부 성향이다. 준사법기관인 검찰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더 노골적이다. 검찰은 이 후보 연루 대장동 비리사건 수사를 ‘꼬리 자르기’로 일관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반면 공수처는 출범 이후 1년간 직접 수사한 12건의 사건 중 4건이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사건이었다.

둘째, 언론과 민간 영역을 통제하거나 매수해 비판을 봉쇄했다. 야당 추천으로 임명된 강규형 KBS 이사를 업무추진비 사적 유용 등의 혐의로 해임한 뒤 KBS 경영진을 정권 입맛에 맞는 사람으로 구성한 것을 시작으로 공영 방송과 정부 투자 언론을 장악했다. 비판 보도에는 무차별 소송을 제기하는 방식으로 언론사를 압박했다. 징벌적 손해배상, 고의·중과실 추정 등의 독소조항이 담긴 언론중재법안을 강행하려다 해외에서까지 비판 여론이 들끓자 슬그머니 후퇴했다. 그러나 멈추지 않았다. 정부 광고를 통해 언론을 길들이기 위해 광고 집행 지표인 신문 열독률을 조사했다가 사무실 구독률을 빠트려 신문사의 반발을 사고 있다.

셋째, 정치게임의 규칙을 바꿔서 경쟁자에게 불리한 운동장을 만들었다. 이미 지난 대선과 울산시장 선거에서 문 대통령 측근과 청와대 관계자 등이 조직적으로 개입한 사실이 드러나 관련자들의 유죄가 확정되거나 재판이 진행 중이다. 대선이 목전이지만 선거 중립내각의 핵심인 총리와 법무부 장관, 행안부 장관에는 당파성이 강한 전·현직 의원이 포진해 있다. 그러다 급기야 전례를 무시하고 경기의 심판격인 선관위원 임기를 3년 연장하려다 발목이 잡혔다.

선관위 직원들이 침묵했다면 문 정권의 민주주의 파괴 행보는 장기집권 단계로 나아갔을 것이다. 이미 전방위 위기 상황이다. 자유와 인권, 헌법과 법률을 침해하는 권력의 작용을 감시해야 한다. 공무원들도 정치 중립과 국익을 훼손하는 권력의 시도에 맞서야 한다. 행동 없는 분노만으로 민주주의를 지켜낼 수 없다. 선관위 직원이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호소했듯이 자신과 후손의 미래를 위해 용기를 발휘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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