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In] 3년간 단 한 건도 없었던 국민연금 대표소송

서한기 2022. 1. 2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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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2월부터 소송절차 개선 움직임에 재계 조직적 반발
시민단체 "장기적 기업가치 상승·투명한 경영에 꼭 필요"

(서울=연합뉴스) 서한기 기자 = 국민연금은 국내 주식시장의 큰손이다. 해외투자를 많이 하는 다른 주요 국가의 연기금과 견줘서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투자 비중은 높다.

작년 10월 말 기준 약 164조원을 국내 주식에 투자했는데, 이는 전체 국민연금 기금의 18%에 달한다.

2020년 말 기준으로 국민연금이 5% 이상 지분을 가진 종목은 270여개에 달하고, 10% 이상은 90여개에 이른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재계는 국민연금의 크고 작은 움직임 하나하나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혹시라도 국민연금의 입김이 기업경영에까지 미치지 않겠냐는 우려에서다.

'스튜어드십코드, 성과 없어' (서울=연합뉴스) 이재희 기자 = 16일 오후 제10차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의가 열리는 서울 중구 플라자호텔 앞에서 공공운수노조 국민연금지부, 참여연대 등 단체원들이 국민연금의 공익이사 추천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0.12.16 scape@yna.co.kr

특히 국민연금이 2018년 7월 말 스튜어드십코드(수탁자 책임 행동 원칙)를 도입해 주주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함으로써 기업 가치와 투자수익을 올리겠다고 나선 이후 경영계는 국민연금의 향방에 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스튜어드십코드는 기관투자자의 주주권 행사 지침을 말한다. 국민연금이나 자산운용사와 같은 투자자가 큰 집의 집안일을 맡은 충직한 집사(Steward)처럼 고객이 맡긴 자산을 자기 돈처럼 여기고 최선을 다해서 선량하게 관리, 운용하도록 책무를 정해놓은 가이드라인이다. 미국, 영국, 일본 등 전 세계 20개국에서 다양한 형태로 시행되고 있다.

대표소송 기준·요건·절차 갖추고도 3년간 사실상 손 놓아

국민연금은 스튜어드십코드 시행 후 6개월가량 흐른 2019년 1월에는 수탁자 책임 활동의 구체적 절차와 기준을 명시한 '국민연금 기금 국내주식 수탁자 책임 활동 가이드라인'을 제정했다.

비록 '투자대상 기업의 장기적 주주가치 증대에 기여한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만'이라는 단서를 달긴 했지만, 국민연금은 승소 가능성과 소송 실익(효과 대비 비용), 기업의 자체 손실 보전 조치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주주대표소송(이하 대표소송)이나 손해배상소송도 하기로 했다.

국민연금이 주주 권한 행사에 본격적으로 나서는 신호탄을 쏘아 올린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대표소송의 대상은 국민연금이 투자한 기업에 과거 재직했거나 현재 재직 중인 이사, 감사, 업무 집행 관여자 등이다.

대표소송은 주주가 기업가치를 제고하기 위해 활용할 수 있는 유용한 주주권 행사 수단이다. 자본주의가 발달한 미국 등에서는 연간 430여건의 대표소송이 제기될 만큼 활발하다.

회사 임원(이사 및 상법상 업무 집행지시자)이 불법행위나 임무해태로 기업에 손해를 끼쳤는데도 기업이 피해복구를 위한 조처를 하지 않고 책임추궁을 게을리하는 경우에 최소한의 요건을 갖춘 주주가 기업을 대신해서 해당 임원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이다. 주주가 원고이고 불법 등을 저지른 임원이 피고이지만, 주주가 승소하면 기업이 손해를 배상받는다.

이를테면 지배주주인 이사가 개인 이익을 위해 회계 조작으로 회사자금을 횡령하거나 입찰 시 사전 공모 등을 통해 가격담합을 했다가 걸려서 회사에 손해를 입힌 경우 등에 대표소송으로 회사 손해를 보전할 수 있다.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 관계자는 "이사의 위법행위로 인해 명확하게 큰 규모의 손해를 본 회사가 손해회복조치를 하지 않을 때 법령과 관련 지침의 범위 내에서 회사 및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회사를 대신해 대표소송을 실시하게 된다"고 강조했다.

대표소송은 상법에도 명시된 정당한 소수주주권이다.

상법 제403조는 '선관주의의무'(선량한 관리자의 주의 의무: 일반적으로 보통 사람이 어떤 행위를 할 때 일정한 주의를 기울일 의무를 말한다)를 가진 이사가 회사에 손해를 끼친 경우 주주들이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오너리스크와 기업의 불법행위에 대한 최소한의 견제 장치인 셈이다.

하지만 국내에서 상장회사에 대한 대표소송은 1년에 평균 2건만 제기될 정도로 지지부진하다. 기관투자자들이 나서지 않는 상황에서 소액 개인 주주들만으로 대표소송 제기에 필요한 지분요건을 갖추는 게 어렵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이처럼 대표소송을 할 수 있는 근거를 바탕으로 요건과 절차 등 구체적 가이드라인까지 모두 마련했지만, 지난 3년간 대표소송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지금까지 실제 국민연금이 대표소송을 제기한 경우는 단 한 건도 없었다.

[국민연금공단 제공]

대표소송 결정 주체 수탁자책임위로 일원화하자 재계 반발

이렇게 국민연금이 대표소송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자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비판의 목소리가 많이 나왔다. 그러자 국민연금은 이를 의식해서인지 작년 상반기에 내부적으로 소송 대상 사건 유형, 손해 발생금액, 제소기한 등을 고려한 세부 기준과 절차를 다듬고서 "연내 대표소송을 진행하겠다"고까지 공언했지만, 끝내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다.

대표소송에 사실상 뒷짐을 지다시피 하던 국민연금은 그간의 관련 법령 변경 사항 등을 고려해 작년 12월에 국민연금 최고의결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에 대표소송 관련 가이드라인을 손질하는 안건을 상정하는 등 개정작업에 나섰다.

2020년 12월 상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주주활동에 모회사의 주주가 자회사의 이사를 대상으로 제기하는 '다중대표소송'이 추가된 내용을 반영해 종전 '주주대표소송'으로만 국한됐던 가이드라인 내 문구를 '대표소송'으로 바꾸고 소송 실무는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가 맡되, 소송제기 의사결정은 기금운용위 산하의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이하 수책위)가 담당하도록 일원화한 게 주요 내용이다.

지금은 원칙적으로 기금운용본부(내부 투자위원회)가 결정하되, 판단하기 곤란해 수책위에 요청하거나 수책위 재적 위원 3분의 1 이상이 회부를 요구한 경우 수책위에서 결정하게 돼 있다.

수책위는 사용자(기업)·근로자·지역가입자 단체가 금융·경제·자산운용·법률·연금제도 분야에서 각각 3명씩 추천한 민간 전문가 9명(상근전문위원 3명 포함)으로 구성된 기금운용위 산하 전문위원회이다.

가이드라인 개정작업을 벌이는 보건복지부 연금재정과 관계자는 "적시성 있고 일관된 의사결정 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수책위가 대표소송 제기 여부를 결정하도록 지침을 개정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개정 가이드라인은 올해 2월 말 열릴 기금운용위에서 안건으로 다뤄져 최종 확정될 예정이다.

국민연금 대표소송 정책토론회 (서울=연합뉴스) 20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한국상장회사협의회와 한국경영자총협회 주최로 열린 '국민연금 대표소송 정책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기념 촬영하고 있다. 2022.1.20 [한국경영자총협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그런데 이런 국민연금의 움직임에 대해 재계는 국내 상장사들을 상대로 소송압박에 나설 수 있다고 우려하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한국경제인총협회, 한국상장사협의회 등 경제단체들은 국민연금의 대표소송 추진에 대해 '기업 벌주기식 주주 활동', '기업 임원 처벌 프로젝트', '자국 기업 향한 공격, '소송 남발로 소송 공화국 될 판' 등의 격한 목소리를 쏟아내며 비난했다.

지난 20일에는 '국민연금 대표소송 추진, 이대로 괜찮은가'라는 토론회까지 열어 대표소송으로 기업 활동이 위축되고 수익률이 떨어지면 결국 기업에 투자한 국민연금도 손해를 보게 될 것이라고 압박하며 비판의 수위를 높였다.

반면 시민단체는 뒤늦게나마 국민연금이 주주대표소송에 나선 것은 다행이라며 재계 반발을 이유로 흐지부지하게 후퇴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수탁자 책임 활동을 펼쳐야 한다고 촉구했다.

경제개혁연대는 "국민연금은 '주주대표소송을 통해 기업 경영진의 기업가치 훼손 행위 유인을 실효적으로 억제하고 장기적으로 주주가치 증대에 기여하겠다'고 공언한 것이 빈말이 아님을 이번 기회에 증명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는 "대표소송은 여전히 심각한 이사의 업무해태·불법행위를 선제적으로 막아 장기적 기업가치 상승과 투명한 경영에 꼭 필요하다"며 "국민연금은 당장이라도 이사 불법행위에 대한 대표소송을 개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연금 주주권 행사 촉구 (서울=연합뉴스) 한종찬 기자 = 24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국민연금공단 충정로 사옥 앞에서 열린 '현대산업개발-카카오-이마트 정기주총 국민연금의 주주권행사 촉구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발언하고 있다. 2022.1.24 saba@yna.co.kr

sh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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