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지않는' 크리스 폴, 단신 1번의 자존심

김종수 2022. 1. 28.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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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현대 농구의 트랜드중 하나는 포지션 파괴다. 갈수록 전략‧전술이 디테일하게 발전하는 가운데 과거의 분업농구 대신 전 선수의 올라운드화를 요구하는 토털농구 시스템이 인기를 끌고 있다. NBA를 기준으로봐도 최근 그러한 성향의 팀들이 좋은 성적을 거두며 리그 전체의 흐름을 끌고가고 있는 분위기다.


그러다보니 좀처럼 바뀌지 않을 것 같았던 포인트가드와 센터 포지션에도 많은 변화가 오고 있다. 타 포지션이야 그렇다쳐도 팀원 전체를 이끌어야하는 1번과 골밑을 지키는 임무가 첫 번째인 5번은 기본적으로 요구되는 사항이 확실한지라 좀처럼 변화가 쉽지않은 영역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마저도 크게 의미가 없어보인다. 스테판 커리, 루카 돈치치 등은 1번이지만 팀내 주포 역할을 담당하고 있고 니콜라 요키치는 단순히 패싱센스가 좋은 센터를 넘어 어지간한 정통 포인트가드 뺨치는 시야와 게임전개 능력으로 컨트롤타워 역할을 과시중이다. 포지션에 플레이를 고정시켜놓지 않고 자신의 장기를 무기로 팀을 이끌어나간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가 많다.


1번 포지션같은 경우 평균 사이즈가 커진 것은 물론 득점 리더 등 유니크한 스타일이 많아졌다. 매직 존슨, 페니 하더웨이 등은 기량도 기량이었지만 2m가 넘는 신장으로 인해 자신의 시대에서 높은 주목을 받았다. 이제는 어지간한 스윙맨급 사이즈를 갖춘 장신 포인트가드가 한둘이 아닌지라 특별한 것 없는 시대가 됐다.


그런점에서 피닉스 선즈 돌격대장 'CP3' 크리스 폴(37·182.8cm)은 또다른 의미로 대단한 1번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제는 역으로 귀해져버린 일반적으로 팬들이 생각하는 작고 빠르고 센스넘치는 포인트가드로서 오랜시간동안 경쟁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시대의 흐름과 관계없이 클래식한 리얼 1번으로 자신의 길을 걷고 있다.


"빈틈이 없다" 코트의 야전사령관으로서 폴을 가장 잘 나타내는 말이다. 폭발적인 득점력으로 상대 수비진을 박살내거나 사이즈를 앞세워 매치업 상대를 압살시키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공수전반에 걸쳐 안정된 플레이를 바탕으로 팀을 강하게 만들어 승리를 이끌어내는 유형이다.


이를 입증하듯 폴이 이끄는 피닉스 선즈는 38승 9패(승률 0.809)로 서부컨퍼런스 1위를 달리고있는데 이는 동부를 포함한 리그 1위의 성적이다. 개인성적 역시 휼륭하다. 정규리그 46경기에서 평균 14.5득점, 10.1어시스트(리그 공동 1위), 4.4리바운드, 1.9스틸(리그 3위)로 전방위 활약을 펼치고 있다.


사이즈의 이점을 전혀 받을 수 없는 선수로서 순수 기술만으로 승부해야만하는 테크니션에 30대 후반에 접어드는 나이를 감안했을 때 여전히 이러한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다는 자체가 놀라울 뿐이다.


폴은 일반적으로 퓨어포인트가드와 듀얼가드로 나뉘기 힘든 선수로 불린다. 팀 동료들을 살려주면서 함께하는 농구를 펼친다는 점에서는 퓨어 1번이 맞지만 어지간한 공격형 가드 못지않은 빼어난 득점생산능력까지 겸비했기 때문이다. 단순히 잘한다는 수준을 넘어 양쪽 모두 최상급인지라 상황에 따라 여러 가지 방식으로 공격전개가 가능하다. 토탈패키지 1번이라는 평가가 어색하지않은 만능 포인트가드다.

 


정통이든 공격형이든 1번의 최대 덕목은 원활한 볼간수다. 포인트가드는 공격의 지휘관답게 볼을 많이 잡을 수밖에 없다. 그러한 과정에서 볼간수가 불안정하면 모든게 흔들릴 수 있다. 자신도 실책이 많아질 가능성이 크고 동료들까지 불안해진다. 안정적인 볼간수는 볼의 최대 장점이다. 작고한 조부의 영향으로 어릴때부터 오른손을 묶어놓고 훈련했을 정도로 양손의 밸런스를 맞추기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결과 양손 모두 완벽하게 컨트롤이 가능한 빼어난 드리블 실력을 갖추게 됐고 이는 모든 플레이를 펼치는데 있어서 든든한 바탕이 되었다. 폴의 드리블은 화려함과 실속을 모두 갖추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양손으로 드리블을 치면서 스피드와 훼이크 동작을 통해 상대를 한쪽으로 제쳐버리는 것은 물론 상대 가랑이 사이로 공을 통과시킨 후 다시 잡아 따돌리기도한다. 

 

드리블을 치며 마크맨 주변을 한바퀴 돌기도하며 앞으로 달려갈 듯 하다가 멈추는 동작을 통해 상대의 중심을 완전히 무너뜨리며 굴욕을 선사하는 것도 예사다. 전후좌우 속도를 조절하며 장신숲을 헤짚고 다니면서도 보는이들에게 전혀 불안감을 주지 않는다.


무엇보다 폴을 막기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수비수가 감당해야할 선택지가 너무 많다는 부분이 크다. 아무리 다재다능하고 뛰어난 1번이라고해도 몸에 배여있는 주된 스타일이라는 것이 있다. 급박한 상황이나 중요한 순간이 왔을 때 퓨어 포인트가드는 패스를 통해 경기를 풀어가고 듀얼가드는 자신이 에이스 역할을 자처하는 경우가 많다. 변수가 있을 수 있겠지만 대부분 플레이어는 승패와 직결된 순간에서는 자신이 가장 잘하는 것을 본능적으로 먼저 시도한다.


폴은 이러한 부분에서 좀더 상대팀을 헛갈리게 만든다. 3쿼터까지는 퓨어 1번처럼 운영에 집중하면서 플레이하다가 4쿼터에 들어서 해결사로 빙의하는가하면 쿼터중에도 스타일을 바꿔버리며 혼선을 준다. 플루터슛과 스쿱샷에 모두 능하고 주로 상대의 중심을 빼앗아놓고 슛을 시도하는지라 성공률이 매우 높다. 

 

젊을 때 당한 부상 그리고 나이 등으로 예전같은 폭발적인 운동능력은 상당부분 상실했지만 대신 미드레인지 점퍼를 갈고닦아 지금은 장인수준 소리를 들을 정도로 잘 던지고 있다. 늦은 나이까지도 리그 정상급 1번으로 위용을 떨치고있는 이유다.


NBA무대에서 테크닉좋은 단신가드가 살아남기 힘든 이유는 공격보다는 수비적인 부분이 크다. 폴에게는 이마저도 통하지않는다. 그는 동포지션 최고의 수비수 중 한명으로 꾸준히 불려왔다. 신장은 작지만 웨이트 트레이닝을 통해 탄탄한 몸을 유지하고 있는지라 어지간해서는 힘에서 밀리지 않으며 때론 영리하게, 때론 지저분한 플레이를 섞어가며 괴롭힌다. 거기에 끊임없는 손놀림을 통해 공을 가로채는 능력은 상대 선수에게 두려움을 안겨주기에 충분하다.


사이즈는 타고나지 못했지만 다른 부분을 갈고닦아 꾸준히 정상급 1번으로서 명성을 떨치고 있는 폴이 언제까지 최고 포인트가드의 자리를 지킬 수 있을지 주목된다. 분명한 것은 신장도, 나이도 현재의 베테랑을 막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글_김종수 칼럼니스트

# 사진_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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