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기록의 기억](4) 세월에, 코로나에..시름 깊어진 '쇼핑 1번지'
[경향신문]
서울 명동은 한국에서 땅값이 가장 비싸다. 그러다보니 물건 값도 타 지역에 비해 비싸고 서민들은 구매 불가능한 수입명품 가게들도 많았지만 의외로 허름한 전당포 간판도 보인다. 클래식음악 감상실, 외국잡지 파는 곳, 중국대사관, 문화재급 건물인 국립극장(명동예술극장), 고딕 건축양식의 명동성당 등이 있는 거리를 걷다보면 외국 관광객이 된 기분인데 부동산 시세 가장 높은 명동은, 1980년대 전두환 독재정권에 대항하던 집결지였다.
1987년 6월항쟁, 낮 12시 정각에 대학생들은 삼삼오오 명동에 모여들어 시위를 벌였다. 서울시내의 한복판 명동은 대학생들이 버스, 지하철로 접근성이 좋았고 수많은 사람들이 북적대어 여기만큼 반정부 유인물을 살포하기 적합한 곳은 없었다. 전투경찰들이 시위대를 향해 최루탄을 발사하면 대학생들은 불붙은 화염병을 던졌는데 화염병은 건물 측면에 다닥다닥 부착되어있는 양복점, 안경점, 식당, 금은방 간판들을 스치듯 날아갔다. 그 당시 시위대 눈에 보였던 건 뿌연 최루탄 가스, 간판들 그리고 건물 사이로 살짝 비친 푸른 하늘이었다.
1971년에 촬영한 명동 사진에는 차량 통행이 가능했고 인도와 차도를 구분하는 쇠말뚝과 다양한 업종의 간판들이 빽빽이 보이는데 특히 오른쪽 코스모스 백화점 영문간판이 눈에 띈다. 재래시장 수준의 백화점이었지만 ‘돌을 갖다놔도 팔린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길목이 좋았고 에스컬레이터를 설치해서 그걸 타보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그러다가 거대자본 롯데의 백화점·호텔이 도로 건너편에 들어서면서부터 코스모스 백화점과 영세업체 간판들은 사라지기 시작했다. 쇼핑, 식당, 문화공연에 숙박업까지 겸비한 롯데백화점·호텔이 명동 일대 업종별 모든 가게들을 잡아먹어버린 것이다.
2021년 명동 거리는 차량통행이 금지고 대형 금융업, 복합 쇼핑몰이 들어선 고층 건물의 외벽으로 튀어나온 간판은 볼 수 없다. 한류에 힘입어 명동 일대 상점들 간판에 일본어, 중국어도 등장했지만 지금은 코로나19로 인해 관광객이 뚝 끊기면서 한국 땅값의 간판스타 명동은 이름값을 못하고 있다.
※이 칼럼에 게재된 신문의 사진은 셀수스협동조합 사이트(www.celsus.org)에서 다운로드해 상업적 목적으로 사용해도 됩니다.
김형진 셀수스협동조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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