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우크라, 러의 일부”라는 푸틴
워싱턴DC에서 맞은 올해 1월은 여러모로 우울하다. 오미크론 변이 확산으로 주변에서 코로나 확진자와 밀접 접촉자가 속출하고 있다. 공급망 경색과 폭설이 겹쳐 마트 진열대가 텅 비는 일이 잦아졌다. 인플레이션과 달러 강세로 얇아진 지갑을 들고 풍요의 나라라는 미국에서 야채와 우유를 찾아 휑한 마트를 순회하는 것은 참 낯선 경험이었다.
더 암울한 것은 국제 정세다. 우크라이나 국경에 10만 대군을 배치해 둔 러시아는 “국익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할 것”이라며 침공을 시사했다. 중국은 “주권 보호를 위한 훈련”이라며 하루 39대의 전투기를 대만 방공식별구역에 진입시켰다. 북한은 극초음속 미사일으로 시작해 하루가 멀다 하고 미사일을 쏘아댄다. 북·중·러의 도발이 처음도 아니건만 올해 더 침울하게 느껴진다. 코로나 대유행이 ‘우리가 알던 세계는 더 이상 없다’는 사실을 각성시켰기 때문일까.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부 장관은 24일(현지 시각) 한 대담에서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해 “두 차례 세계대전과 냉전 이후 평화를 유지하고 안보를 제공하며 세계가 다시 무력 충돌로 빠져드는 것을 막아온 ‘국제 관계의 근본적 원칙들’이 위기에 처해있다”고 말했다. ‘타국을 침공해 무력으로 국경을 변경해서는 안 된다’든가 ‘세력권을 형성해 타국에 특정 정치체제나 정책을 강요할 수 없다’는 원칙들이 무너질 수 있다는 뜻이다. 한국의 번영을 가능케 했던 이른바 ‘전후 질서’가 하나씩 허물어지고 있다는 말로도 들린다.
미국의 러시아 전문가 피오나 힐은 최근 뉴욕타임스를 통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008년 나토 정상회의 때 조지 W.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에게 했던 말을 소개했다. “당신은 우크라이나가 국가도 아니라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그 영토의 일부는 동유럽에 있지만 더 큰 부분은 우리에게 주어졌던 것이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난 2014년, 푸틴은 소련 시절 우크라이나에 양도했던 크림 반도부터 병합했다. 그리고 “크림 반도는 언제나 러시아의 ‘분리할 수 없는 일부분’이었다”고 연설했다.
이런 일화를 읽으며 문득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17년 4월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에게 “한국은 사실 중국의 일부였다”고 말했다던 일이 떠오른다. 2016년 5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남북 관계 개선을 주장하며 “조국통일 실현이 조선노동당의 가장 중대하고 절박한 과제”라고 했던 일도 기억난다. 한국이 ‘자국의 일부’였다고 주장하는 나라가 바로 이웃해 있고, ‘남쪽 통일’을 절박한 과제로 삼는 이들이 핵과 극초음속 미사일까지 쥐게 된 이 엄혹한 시기에 우리 정치권은 대선 정쟁에 몰두할 뿐 위기의식이 조금도 없어 보이니 두렵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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