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희의 커피하우스] 타는 목마름으로, 중립이여 만세

박성희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교수·한국미래학회 회장 2022. 1. 28.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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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관위 직원들, 편향성 시비 상임위원 사퇴 요구는
중립적이어야 할 곳, 그렇지 못하게 하니 나온 항변
방송은 중립적이고, 수사기관은 독립적인 게 정상
이 정권 잘못 중 으뜸은 중립·독립적인 곳 훼손한 일
새 정부에 ‘사회 통합’처럼 큰 건 바라지도 않는다
다만 중립적·독립적이어야 할 곳이 제자리 찾기를

빵 공장 직원들이 “우리 빵 만들게 해주세요”라고 시위했다면 좀 이상하지 않은가? 얼마 전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한 일이 딱 이랬다. 편향성 시비가 있던 조해주 상임위원의 사퇴를 요구하기 위해 1~9급 직원 전원과 전국 17개 시도 선관위 지도부가 집단행동을 한 일이다. 그들이 원한 건 선거관리하게 해 달라는 것뿐이었다. 59년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니 그 위기감의 강도가 짐작이 간다. 이번 선관위 시위는 나라의 하부구조 중 그래도 온전한 곳이 있다는 안도감과 함께 왠지 서글픔도 느껴진다. 그냥 우리는 우리 일을 제대로 하고 싶을 뿐이다. 정부가 그걸 못하게 방해하고 있었다는 거 아닌가.

정권 말기의 신호탄 같은 이번 시위를 보며 그동안 우리가 무엇에 목말라했는지 좀 더 또렷해졌다. 그건 바로 중립성과 독립성이다. 응당 중립적이어야 하는 곳이 그렇지 못하고, 당연히 독립적이어야 하는 곳에 목줄이 채워진 데서 오는 일종의 낭패감이 묵직한 통증처럼 가슴을 누르고 있었던 것이다.

/일러스트=이철원

정치나 이념에 관계없이 굴러가야 하는 부분이 나라에 적지 않다. 그런데도 지금 정부는 사회 전 분야에 정치의 입김을 불어넣어 괴상한 생물로 만들어 버렸다. 그 행태가 마치 독일 나치 정부의 ‘Gleichschaltung(글라이히샬통)’을 연상시킨다. 영어로는 ‘total control’쯤으로 의역되는 이 말은 정치는 물론 경제·교육·문화·미디어 등 사회 전 분야를 정권의 수단으로 장악하는 걸 뜻한다.

한때 ‘타는 목마름으로’(김지하 시인의 1982년 시 제목) 갈구했던 민주주의는 온데간데없고 그 자리에 유사 전체주의가 횡행하게 된 연유에 대해서는 좀 더 연구해야 할 것이다. 아마도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개념에 대한 학습이 부족하고, 구호로만 배운 민주주의를 이권과 정권 유지의 도구로 바꿔버렸기 때문은 아닌지 유추해볼 뿐이다. 정부가 의도한 결과는 아니겠지만, 아무튼 지금 우리나라는 민주주의에서 매우 멀어져 있다.

전파라는 공기(公器)를 사용하는 방송이나 인터넷은 대표적으로 중립성이 요구되는 곳이다. 특히 공영방송은 누구나 접근할 수 있어야 하고 네트워크도 동등하게 접속할 수 있는 ‘망중립성’이 중요하다. 대통령 선거를 앞둔 민감한 시기에 야당의 대표주자 부인과 한 인터넷 언론이 사적으로 나눈 대화를 정색을 하고 방송한 MBC는 아무리 후하게 보려고 해도 결코 중립적인 언론이라고 할 수 없다. 내용을 들어보니 더더욱 이해할 수 없는 방송이었다. 대화 어느 구석에서도 유권자와의 공적 연관성(public relevance)을 찾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검찰 개혁을 위해 정부 여당이 1년 전 밀어붙이듯 만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는 초기의 야망과는 다르게 비독립적이고 비효율적이며 무능한 조직으로 판명되고 있다. 중립성이나 독립성은커녕 온갖 사람들의 통신을 비밀경찰처럼 들춰보고 유독 야당 후보 수사에만 열을 올리는 치졸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첫 1년에 별다른 성과도 없이 그런 인상부터 주어버렸으니 앞으로 공수처의 활약을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매우 힘 있는 사람들을 수사하라고 만든 공수처가 매우 우스워져 버렸다. 독립적이지 못하니 힘도 없고 멋도 없다.

정부가 손을 뻗친 각종 기관이 그동안 벌이는 일을 보면서 뭔가 찜찜하지만 그게 이 정부 들어서 일종의 ‘표준(norm)’이라 여기며 지내던 터에 이번 선관위 직원들의 시위를 보며 머리를 맞은 듯 깨닫게 되었다. 원래 그러면 안 되는 거였다. 방송 통신은 마땅히 중립적이어야 하고, 수사기관은 독립적인 것이 ‘정상(normal)’인 거였다. 많은 정부기관이 독립성과 중립성을 헌법으로 보장받고 있고, 정치와 무관하게 중립지대에서 사회를 이끄는 각종 기구들이 우리 사회를 지탱하고 있다. 지금까지 정부의 행태로 미루어 보아 이 기구들이 제 일을 제대로 하도록 정부가 놔두고 있었을지 의심이 든다. 선관위는 마침 계기가 있어 잠자고 있던 영혼을 흔들어 깨웠지만, 이렇다 할 계기가 없어 속으로만 앓는 수많은 사람들의 열패감은 어찌할 것인가.

그 결과 나라꼴이 심판도 관중도 없이 선수들만 둘로 나뉘어 우글거리는 모양이 되어 버렸다. 네 편 내 편으로 나누는 블랙홀에 빠져 도무지 중립적인 장소를 찾기 어렵다. 과학이나 학문, 문화 예술, 심지어 종교까지도, 정치 주변에서 서성거려야 먹고살 수 있는 정치 만능 사회가 되어버렸다. BTS가 왜 대통령의 외교 행사에 동행해야 하는지, 왜 교통방송에서 교통이 사라지고 개인 방송처럼 되어버렸는지, 사실 나는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오죽하면 전국의 승려 5000명이 ‘헌법의 정교분리 원칙을 지키라’며 코로나로 엄중한 시기에 대규모 승려대회를 열었을까.

지금 정부가 잘못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그중 으뜸은 마땅히 중립적이어야 할 곳의 중립성과 독립성을 정권의 안위를 위해 훼손한 일이 아닐까 싶다. 자연 생태계와 마찬가지로 정치 오물을 뒤집어쓴 사회 환경을 복원하려면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오는 3월 9일 선거를 통해 새 정부가 탄생한다. 사회 통합? 그 어려운 건 바라지도 않는다. 다만 중립적인 곳이 중립적이기를, 응당 독립성이 보장되어야 하는 곳이 독립적이기를, 그래서 모두 제자리에서 제 할 일을 방해받지 않고 제대로 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소망할 뿐이다. 어쭙잖은 정권이 국가와 사회를 파괴하지 않기를, 타는 목마름으로 바란다. 그게 모두가 바라는 공정 사회의 모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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