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시대의 희귀템 ‘설날 특집극’

공희정·드라마 평론가 2022. 1. 28.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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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이 다가오면 새뱃돈만큼 기다려지는 것이 있었다. TV 프로그램 편성표. 이번 설에는 어떤 특집 프로그램들이 있을지 궁금증이 커질 때쯤 가시지 않은 잉크 냄새와 함께 설 연휴 편성표가 배달된다. 지금이야 종일 방송 시대이니 며칠 동안 낮이고 밤이고 TV를 볼 수 있다는 것이 별일 아니지만 교육방송까지 5개 채널만 있던 시절에는 일 년에 몇 번 안 되는 ‘연휴 횡재’였다.

신문은 활짝 펼쳐야 편성표와 하이라이트, 관련 기사가 한눈에 들어왔다. 보고 싶은 프로그램을 체크하기 위해선 색연필도 필요했다. ‘공부를 그렇게 하면 1등 했겠다’라는 엄마의 잔소리를 들으며 보고픈 프로그램에 줄을 그어가다 보면 나만의 시청 시간표가 완성됐다. 방송사별로 겹치지 않아야 했고, 어쩔 수 없다면 연휴 마지막 날쯤 편성된 재방송을 차선으로 선택했다. 오랜 시간 공들인 다큐멘터리에서부터 거물급 가수들의 특집쇼, 코미디언들의 웃음 대잔치, 화제의 영화 등 명절 상은 풍성했다.

나의 ‘최애’(가장 사랑하는) 프로그램은 설날 특집극이었다. 가족 관계의 회복과 고향의 의미를 되새겨본 ‘인연이란’(KBS), 노인 문제를 담담히 그린 ‘너도 늙어봐라’(KBS), 재산을 둘러싼 가족 간의 우여곡절을 담아낸 ‘쑥부쟁이’(MBC), 모성을 통해 혈육의 정을 살펴본 ‘어머니’(MBC), 시한부 선고를 받은 아내와 남겨질 남편의 이야기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SBS), 집안의 전통을 이어온 며느리의 삶을 보여준 ‘곰탕’(SBS) 등 설날은 감동으로 물들었다. 갈등의 골이 깊을수록 화해로 되찾은 행복은 컸고, 험난한 세상살이에서 가족만큼 소중한 존재도 없다는 것이 일관된 주제였다. 어찌 보면 뻔한 구성, 진부한 전개였지만 마치 자신의 이야기 같았던 특집극들은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흔들었다.

이제 설날 특집극은 시대의 ‘희귀템’이 되었다. 오래전 보았던 그 특집극들을 생각해 보면 좀 구태의연해 보여도 화해와 용서로 꽃피운 사랑의 가치가 한 해를 살아가는 삶의 양식이 되었던 것 같다. 이번 설에는 어떤 프로그램들이 감동과 공감으로 다가올지 슬슬 설레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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