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176] 풍진 세상 설맞이
요즘은 여행(旅行)이 어렵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횡행하면서 먼 길 나서는 일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여행의 앞 글자인 ‘여(旅)’의 초기 꼴은 ‘깃발 아래 모여든 사람들’ 모습이다. 따라서 전쟁 등의 행위에 참여한 집단, 즉 군대의 의미로 출발한다.
군대는 싸움을 위해 자주 이동한다. ‘군대의 출행(出行)’이라는 그 의미 맥락이 결국 지금의 ‘여행’이라는 뜻으로 자리를 잡았다. 시인 이백(李白) 등이 써서 유명한 ‘역려(逆旅)’는 나그네를 맞이하는[逆] 곳, 곧 여관이다.
같은 흐름을 보이는 글자가 정(征)이다. 역시 ‘군대 이동’의 의미였다가 차츰 먼 길에 나서는 행위 등을 지칭했다. 정도(征途)라고 하면 ‘군대가 상대를 치러 나서는 길’ 외에 ‘여행으로 나선 길’의 의미다. 정로(征路)도 그렇다.
집을 떠나 먼 길을 다니는 일은 쉽지 않다. 그 길에 따사로운 햇빛만 비치지 않기 때문이다. 비 내리고, 바람 부는 경우가 더 많다. 바람 일어 흙먼지 가득한 상황을 일컫는 말이 풍진(風塵)이다. 황사 바람이 잦은 중국의 환경으로서는 알맞은 형용이다.
우리도 “이 풍진 세상을…”이라는 노래가 유행한 적이 있다. 세상살이의 서러움과 고단함을 그렇게 전했다. 그런 타향살이의 어려움을 딛고 마침내 고향에 돌아오는 일이 중국인들의 심성에서는 매우 중요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한가위나 설 명절에는 그리운 가족이 모두 모이는 일을 간절히 꿈꾼다. 이른바 단원(團圓)이다. 지는 해 마지막 날 자정 무렵 식구 모두가 새해를 함께 맞이하는 바람이다. 그러나 올해에는 어려울 듯하다.
바이러스 확산을 우려한 당국자가 설에 고향 가려는 사람들을 “악의적인 귀향[惡意返鄕]”이라 윽박지르니 말이다. 우리도 큰 사정이야 비슷하지만, 막말 해대는 이런 못된 관료 밑에 숨죽이며 살아야 하는 중국인에게 세상은 더욱 풍진 가득한 곳으로 비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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