쿵, 쿵, 쿵..비상걸린 중국경제, 회색 코뿔소 세마리가 나타났다

김지섭 기자 2022. 1. 27.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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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LY BIZ] [Cover Story] 동계올림픽 앞둔 대륙, 중국몽이 악몽 되나

25일 중국 베이징의 대표적 쇼핑 거리인 싼리툰 타이구리. 광장 한가운데 스포츠 의류 업체 아디다스가 스키 조형물을 설치해 놓긴 했지만 자세히 살펴보는 사람은 없었다. 동계 올림픽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것은 그뿐이었다. 기업들이 열띤 마케팅 전쟁을 펼쳤던 14년 전 2008년 베이징 하계 올림픽과는 딴판이다. 당시 PC 업체인 레노보는 CCTV 방송에 올림픽 카운트다운 광고를 내보냈고, 스포츠 브랜드 리닝은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대규모 캠페인을 폈다. 옌징맥주는 올림픽 응원단을 뽑는 경연 프로그램을 내보냈다. 이런 자부심 충만한 축제 분위기를 지금 베이징에선 흔적도 찾을 수 없다. 한 소비재 기업 관계자는 “코로나 방역이 계속되고 있고, 동계 올림픽에 대한 중국인의 관심이 상대적으로 적은 것도 원인이지만 소비자들이 지갑을 열 분위기가 아니다 보니 기업들 역시 마케팅 동력이 없는 것”이라고 했다.

2022년 1월 25일 오후 중국 베이징 중심가 왕푸징에 세워진 베이징 동계올림픽 카운트다운 시계탑 앞에서 시민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신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 작년 말부터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가 빠르게 퍼지면서 정부의 초강경 방역 조치가 이어지고 있는 데다 내수 침체에 투자 부진이 겹치면서 경제가 휘청이고 있기 때문이다. 2015년 신용 위기 이후 등장한 중국 경제의 세 마리 ‘회색 코뿔소(grey rhino)’도 여전히 어슬렁거린다. 각각 부동산 버블, 그림자 금융(규제 밖 금융회사), 과도한 부채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회색 코뿔소란 눈에 뻔히 보이지만 방심하고 있다 한순간 돌진해 오는 거대 위험 요인을 말한다.

설상가상으로 베이징 동계 올림픽도 비(非)대면으로 치러지면서 올림픽 특수(特需)도 기대하기 어려워졌다. 1921년 공산당 창당 이후 새로운 100년을 맞이하는 원년인 올해, 동계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해 ‘국가부강·민족진흥·인민행복’이라는 ‘중국몽(中國夢)’을 실현하겠다는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야심 찬 계획이 심각한 차질을 빚게 된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중국의 성장이 둔화되고, 수요 감소와 부채 증가가 기록적인 수준에 이르면서 시 주석은 40년 전 덩샤오핑이 마오쩌둥의 궁지에서 나라를 구제하기 시작한 이래 가장 큰 경제적 난관에 직면했다”고 평가했다. 7년 전 베이징이 동계 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됐을 때의 환희가 자취를 감춘 ‘중국몽’의 현주소를 WEEKLY BIZ가 짚어 봤다.

◇내리막 걷는 中경제, ‘바오우’도 위태

중국 경제가 최근 들어 갑자기 삐걱대는 것은 아니다. 2015년 부채 급증과 위안화 가치 폭락에 따른 ‘차이나 쇼크’, 2017년 미국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미·중 패권 다툼이 심화하는 과정 등을 거치면서 중국 경제 엔진은 서서히 식어가고 있었다. 최근 발표되는 주요 경제지표들로 이런 사실이 재확인되며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중국 분기별 GDP(국내총생산) 성장률은 작년 1분기 18.3%에서 2분기 7.9%, 3분기로 4.9%까지 차츰 낮아져 4분기엔 4%에 겨우 턱걸이했다. 지난해 전체 성장률은 8.1%로 2012년(7.9%) 이후 9년 만에 가장 높았지만, 이는 2020년 팬데믹 사태에 따른 기저효과로 인한 일종의 착시다.

2020~2021년 평균 성장률로 보면 5.1%로 ‘바오우(保五·5% 성장률 유지)’가 위태로운 상태까지 내려왔고, 올해는 5% 선이 깨질 것이 유력하다. 글로벌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와 노무라증권은 올해 중국이 4.3% 성장에 그칠 것으로 보고 있고, JP모건도 전망치로 4.7%를 제시했다. 팬데믹을 제외하면 중국 성장률이 5% 아래로 떨어진 적은 천안문 사태로 사회 분위기가 얼어붙었던 1990년(3.9%) 이후 31년간 한 번도 없었다.

성장률 둔화와 함께 중국 경제의 활력은 크게 떨어지는 중이다. 소비자 기대 지수, 전력 소비, 철도 교통량 등으로 구성된 중국의 경기활동지수(CAT)는 작년 2월 33.2포인트에서 11월 2.6포인트로 폭락했다. 중국 GDP의 60%, 세수 50%를 담당하는 중소·영세기업의 폐업도 급증세다. 중국의 폐업 기업 수는 2019년 240만개에서 작년 437만개로 2년 새 82%나 증가했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중국 당국은 세계적 금리 인상 행렬과 반대로 금리를 내리고 있다. 경기 침체와 신용 위험을 막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조치다. 인민은행은 지난달 지급준비율과 기준금리(대출우대금리·LPR)를 각각 0.5%포인트(12.0%→11.5%), 0.05%포인트(3.85%→3.8%) 낮췄다. 이달 들어서는 시중은행에 공급하는 정책 자금 금리인 1년 만기 중기유동성지원창구(MLF) 대출 금리를 기존 연 2.95%에서 2.85%로 0.1%포인트 내렸다. 스위스 UBP은행의 카를로스 카사노바 선임 이코노미스트는 로이터에 “잇단 금리 인하는 중국 정부가 경기 부진을 심각하게 바라본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제로 코로나에 발목 잡힌 소비

2001년 WTO(세계무역기구) 체제 편입 이후, 미국을 무서운 속도로 따라잡으며 G2 반열에 오른 중국 경제가 최근 휘청이는 모습을 보이는 데는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가장 직접적인 요인은 팬데믹이다. 팬데믹이 발생한 2020년부터 중국은 코로나 발생을 제로(0)화 하겠다는 ‘칭링(淸零)’ 정책을 펴고 있다. 공산당 일당독재 권위주의 체제를 바탕으로 이동 제한, 전면 폐쇄 등 개인의 자유를 크게 침해하는 강력한 방역 조치를 시행 중이다. 바이러스 전파를 어느 정도 감수하며 경제 활동을 유지하는 미국⋅유럽 등과 큰 차이가 있다.

코로나가 조금이라도 확산되는 것을 용납하지 않다 보니 경제활동이 위축되면서 소비는 얼어붙을 수밖에 없다. 2020년 중국의 소매 판매 증가율(전년 대비)은 6개월(2~7월)이나 마이너스 구간에 있었고, 기저효과로 작년 2~3월 소매 판매 증가율은 30%대를 기록했으나 이후 급락해 지난달에는 1.7%까지 떨어졌다. 팬데믹 기간을 제외하면 소매 판매 통계가 공표되기 시작한 1993년 이래 최저치다. 연중 최대 규모 온라인 쇼핑이 이뤄지는 연말 ‘광군제(光棍節)’ 효과도 소용이 없었다.

이동 제한 조치로 중국 내 주요 성(省), 시(市) 사이의 이동도 팬데믹 이후 크게 움츠러들었다. 삼성증권에 따르면 지난달 하루 성·시 간 평균 이동 지수는 2019년 대비 16.2%가량 감소했다. 외부 활동에 제약이 생기면서 중국인들은 지갑을 닫고 있다. 데이터 업체 CEIC에 따르면 지난 2년간(2020~2021년) 중국의 가계 저축이 19조4000억위안 증가하는 동안 소매 판매는 3조2000억위안 늘어나는 데 그쳤다.

중국 내 소비는 작년 말 오미크론 변이가 확산되면서 더욱 움츠러들고 있다. 작년 내내 두 자릿수에 머물던 코로나 신규 확진자(일주일 평균)가 작년 말 100명을 넘어서더니 올 초 200명대를 기록하자, 중국 당국은 한 지역에서 확진자가 나오면 그 지역 전체를 전면 봉쇄하는 강도 높은 방역을 취하고 있다. 동계 올림픽 개막 전 코로나 확산세를 어떻게든 틀어막으려는 당국의 강력한 의지가 반영된 조치다. 산시성 시안시는 지난달 22일부터 한 달 넘게 봉쇄가 이뤄지고 있고, 올해 들어 허난성 위저우와 안양시에도 봉쇄 조치가 내려졌다. 스위스 투자은행 UBS의 왕타오 수석 애널리스트는 “(중국 경제의) 가장 큰 불확실성은 코로나 상황과 그에 따른 당국의 조치에서 비롯된다”며 “중국은 엄격한 방역 정책을 장기간 유지할 수 있는 나라”라고 했다.

◇세 마리 회색 코뿔소에 신음하는 中

팬데믹과 제로 코로나 정책만으로 현재 중국 경제에 닥친 위기를 모두 설명할 수 없다. 수년째 악화되고 있는 그림자 금융(shadow banking)과 그에 따른 부동산 버블, 기업 부채 문제도 중국 경제를 끊임없이 괴롭히는 3대 ‘기저 질환’에 해당한다. 2000년대 이후 중국 정부가 양적 성장에 치중한 나머지 규제와 감시를 피해 우회 경로로 빚을 내는 기업들을 모른 체하고, 부동산 및 토목 사업을 무리하게 추진하다 보니 벌어진 일이다. 수면 위로 뚜렷하게 드러난 위험 요소라는 점에서 ‘회색 코뿔소’라 불리는 문제들이지만 잘못 건드렸다가 연쇄 부도, 대량 실업 등 사회 안정을 크게 해치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적극적인 대처를 못 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 그림자 금융 규모(2019년 기준)는 무려 84조8000억위안(약 1경5900조원)에 달할 만큼 커졌고, 이를 통해 자금을 조달한 기업들의 부채도 눈덩이처럼 불면서 중국 경제는 신용 위기에 직면한 상태다. 국제금융협회(IIF)에 따르면 2020년 1분기 기준 중국 비금융 기업들의 GDP 대비 부채비율은 159.1%로 미국(78.1%)과 영국(78.2%)의 2배를 넘는다. 신흥국 평균(96.1%)과 비교해도 1.7배가량이다. 감당하지 못할 빚을 낸 건설 업체들이 주택 공급에 뛰어들면서 중국 전역에는 작년 기준 3000만채 넘는 미분양 아파트가 쏟아졌다.

부채 폭탄이 터지는 것을 막기 위해 중국 정부가 대출 규제 등 금융 건전화 조치를 취하자 370조원 넘는 부채를 안고 있는 헝다그룹이 디폴트(부도)에 빠지는 등 중국 GDP의 30%가량을 차지하는 부동산 시장은 꽁꽁 얼어붙었다. 부동산 투자 증가율은 작년 9월 마이너스로 전환해 3개월 연속 감소했고, 중국 70개 주요 도시의 부동산 가격 상승률(전월 대비)은 2015년 이후 6년여 만에 처음으로 작년 8월 마이너스(-0.08%)로 돌아서 4개월 연속 하락했다.

현대경제연구원 주원 실장은 “세 마리 회색 코뿔소는 모두 부동산과 관련이 있는데, 현실화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며 “국가 신용 위험도를 나타내는 중국의 CDS(신용부도스와프) 프리미엄이 지난 1년여간 급등한 것도 심상치 않다”고 말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작년 초 0.3%대에서 움직이던 5년 만기 중국 국채의 CDS 프리미엄은 올 초 0.5% 수준으로 올랐다. 이 밖에 미·중 갈등 속에 집권 체제 강화를 위한 ‘빅테크’ 기업 규제, 1949년 국가 창립 이래 최저 출산율(작년 인구 1000명당 7.52명)을 동반한 급속한 고령화도 중국 경제가 짊어진 리스크 요인으로 꼽힌다.

◇中 리스크에 전 세계가 긴장

시진핑 주석의 3연임 ‘대관식’이 될 10월 공산당 대회를 앞둔 중국 정부는 대대적인 부양책으로 성장률을 끌어올려야 하는 상황이지만 여건이 녹록지 않다. 가파르게 오르던 생산자물가 상승률이 11~12월 다소 진정되는 모습을 보였으나 여전히 두 자릿수인 데다 시중에 다시 돈을 풀면 부동산 가격 상승에 따른 빈부 격차 확대로 ‘다 함께 잘살자’는 공동부유(共同富裕) 정책의 가치가 훼손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들이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재정·통화정책을 긴축적으로 운용하고 있는 점도 중국 정부의 운신의 폭을 좁힌다.

중국 경제의 경착륙 가능성이 커지면서 시장에서는 세계경제에 ‘퍼펙트 스톰’이 불어닥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최근 사설에서 “중국은 세계 GDP에 가장 큰 기여를 하는 나라이고, 향후 5년간 전 세계 성장의 5분의 1 이상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됐다”며 “중국 경제의 장기 침체는 세계에 큰 영향을 줄 것”이라고 평가했다.

중국의 봉쇄 정책으로 중국을 주요 생산기지로 삼고 있는 글로벌 기업들이 큰 타격을 입는 것도 문제다. 공급망 문제가 더 악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 업체인 폴크스바겐과 도요타는 이달 들어 톈진 공장의 가동을 잠정 중단했고, 중국 시안에 반도체 공장이 있는 삼성전자와 마이크론도 인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국 역시 중국으로의 수출 비율이 전체의 4분의 1을 차지할 만큼 대중 경제 의존도가 매우 높기 때문에 중국 경제 리스크는 큰 위협이 될 수 있다. 현대경제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중국 성장률이 1%포인트 떨어지면 한국의 성장률은 0.5%포인트 하락 압력을 받는다.

동계올림픽 개막이 열흘도 남지 않은 26일 중국 베이징 펑타이구 주민들이 아파트 단지 외곽에 마련된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 검사소에 줄지어 수검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전날 하루 베이징에서는 신규 확진자 14명이 나왔으며 이 가운데 10명이 펑타이구에서 발생했다. 이에 따라 이날부터 펑타이구 전 주민에 대해서는 3차 핵산 검사가 시작됐다. /연합뉴스

일각에서는 작년 수출이 호조를 보인 것을 비롯해 지난달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가 소폭 반등한 점, 2월 춘제(春節)와 동계올림픽이 끝나면 봉쇄 조치가 완화되면서 내수도 빠르게 회복할 것이라는 전망 등을 근거로 중국 위기론이 기우에 불과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대다수 전문가는 중국 경제의 추세적 반등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3~6개월 뒤 철강, 조선 등 중후장대 산업의 수출 주문이 얼마나 되는지를 보여주는 중국 통계국의 제조업 PMI 내 신규수출주문지수는 하락세를 보이고 있어 향후 수출 경기마저 둔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민간 부문 부채 문제가 심각해 중국 정부가 더는 ‘빚더미’ 성장을 용인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중국 정부 고문으로 활동하는 리다오쿠이(李稻葵) 중국 칭화대 경제사상실천연구원장은 “중국 경제에 있어 향후 5년은 40년 전 개혁·개방이 시작된 이래 가장 힘든 시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회색 코뿔소

충분히 예상할 수 있지만 쉽게 간과하는 거대 위험 요인을 뜻하는 말로 세계정책연구소(World Policy Institute) 대표인 미셸 부커가 2013년 다보스포럼에서 처음 발표한 개념이다. 몸집이 큰 코뿔소는 멀리 있어도 눈에 잘 띄지만, 평소에 대비를 하지 않으면 막상 다가올 경우 대처 방법을 알지 못해 큰 위험에 빠진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예측과 대비가 어려운 위험 요인을 뜻하는 ‘블랙 스완(black swan)’의 정반대 개념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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