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진석의 농담(籠談)] 트위스트 슛

2022. 1. 27.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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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기의 『갈채와의 밀어』 다시 읽기⑨

남다른 농구를 하겠다는 김영기의 결심은 남다른 노력으로 이어졌다. 김영기의 ‘건방짐’에 부채질을 한 것은 그가 탐독한 외국어 잡지였다. 주로 미국의 농구잡지였다. 그는 『갈채와의 밀어』에 아주 겸손하고 완곡한 문장으로 당시의 일을 정리했다.

“나의 이러한 생각에 더 부채질한 것은 짧은 영어 실력으로 읽은 미국 농구잡지였다. 아직까지도 이 농구잡지를 구독하고 있지만, 처음으로 이 잡지들을 구입해서 읽을 때에는 나만이 세계 농구의 첨단을 걷는 기분이었다. 이렇게 나를 허황된 생각에 빠뜨리게 한 그 잡지는 『바스켓볼』, 『일러스트레이션』 같은 것들이었다.”

“이 시절의 나를 감격시킨 것은 클래어 비(Clair Bee)의 『위닝 바스켓볼(Winning Basketball Plays)』과 아돌프 루프(Adolph Rupp)의 『오펜시브 바스켓볼(Offensive Basketball)』이라는 단행본이었다. 이 책들은 추리소설을 읽는 것보다도 더 재미있어서 몇 번인가 독파했다.”

여기서 두 가지를 짚고 넘어가야 하겠다. 첫째, 김영기는 영어를 훌륭하게 구사한다. 현역 선수로 활약할 때 이미 영어가 유창했다는 선후배들의 증언이 있다. 그는 1997년 10월 15일 서울 힐튼호텔에서 10개 구단 외국인선수 20명의 합동기자회견이 열렸을 때 한국농구연맹(KBL)의 전무로서 모든 과정을 영어로 주재했다.

둘째, 김영기는 『갈채와의 밀어』에 ‘아돌 루푸의 오펜시브 바스켓 보올’이라고 적었다. 그러나 김영기가 미국의 농구 서적을 탐독할 시기에 활약한 미국인 코치와 이론가들을 검색한 결과 아돌 루푸라는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 켄터키대학의 아돌프 루프일 가능성이 크다. 또한 ‘오펜시브 바스켓볼’이라는 책은 여러 권이 보이지만 루프의 저서로 분류된 책자는 검색되지 않는다.
 


하지만 루프는 저서를 많이 남겼고, 『챔피언십 바스켓볼(Rupp’s Championship Basketball)』은 베스트셀러가 됐다. 또한 그는 여러 책자에 공동필자로 참여했다. 김영기가 읽은 책은 도서등록이 되지 않은 특별 에디션일 가능성도 있다. 또한 미국에서는 코치들의 훈련 기법이나 전술 운용 기법을 다룬 기술서적이 매년 출간된다. 그러므로 “자세히 알아보면 나올 것이다.”
 

김영기는 농구를 이론적으로 공부하는 동안 ‘한층 더 엉뚱한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고 적었다. 그는 ‘어떻게 하면 김영기의 농구 스타일을 창조해낼 수 있겠는가.’하는 고민을 했다. 그는 책에 이 고민과 노력을 ‘욕심’이라고 표현했다. 트위스트 슛을 익혀서 경기에 사용하겠다고 생각한 시기도 이 무렵이다.

“당시의 나는 대선수라는 이름에는 근처에도 못 가는 처지에 있었으면서, 대선수라야 가질 수 있는, 자기 체격에 맞는, 자기만의 스타일의 창조에 부심하였다. 그래서 그때까지 연습해 오던 드리블 연습에 더욱 박차를 가했고, 잡지에서 주워 얻은 트위스트 슛이란 것을 연습하기 시작했다. 이 트위스트 슛은 슛을 쏘기 위하여 점프할 때 함께 점프한 상대 선수를 교묘히 피해가면서 슛하는 이중 모션을 말한다. 상대방 선수를 피할 때는 점프의 힘을 다시 역이용해서 몸을 틀어야 하므로 트위스트란 이름이 붙었으리라 생각된다.”

요즘으로 말하자면 ‘더블 클러치’ 정도로 불렸을 김영기의 트위스트 슛은 당시로서는 관중이 일찍이 본 적 없는 묘기임에 틀림없었으리라. 그러나 또한 당시에는 이 기술을 구사한 국내 선수가 없었으므로 습득 과정이 선험(先驗)되지 않은 상태였다. 김영기는 아무 준비 없이 무작정 이 기술을 사용해 보겠다고 작정하고 몸에 익히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에는 당연히 위험이 따랐다. 김영기가 경험한 위험은 대략 이러했다.

“점프하여 몸을 비틀 때 허리를 다치기 쉽고 다시 땅으로 떨어질 때에는 몸의 균형을 잃는 까닭에 발목이나 손목을 다치기가 일쑤였다. 나는 이 트위스트 슛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이 위험과 부상을 당하면서도 연습에 열중하였다. 그리고 이따금 경기장에서 써 보기도 했으나 만족할 만한 것은 되지 못했다.”

김영기의 노력은 뜻하지 않게 논란거리가 됐다. 우선 스승인 조득준이 기겁을 했다. 농구계 인사들도 고개를 가로저었다.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 선수가 희한한 재주를 피워가며 무모한 경기를 하여 팀워크를 깬다는 비판도 나왔다. 또한 김영기가 장기로 내세우는 드리블은 개인플레이에 불과하고 트위스트 슛은 필요 없는 에너지만 소모하여 성공률이 낮을 뿐 아니라 팀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혹평이 잇따랐다. 김영기를 아끼는 주변인들도 한사코 말렸다. 이런 상황이 거듭되면 김영기만의 플레이는 고사하고 농구선수로서 장래까지 장담하기 어려울 판이었다. 이 때 만난 인물이 바로 존 번이다.

“이렇게 난처한 처지에 놓여 있을 때 기묘한 인물이 하나 나타났다. 농구의 시조 네이스미스의 수제자이며 미국대학농구연맹의 상임위원이자, 스프링필드 칼리지의 농구팀을 지도하고 있는 번이라는 분이 아시아재단의 초청을 받고 석 달 동안 전국 대학 팀을 지도하기 위해 내한한 것이다. 고대 1학년 여름이었다.”

허진석 한국체육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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