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산 사태부터 일주일 새.. '처벌 피한 현장 죽음' 5명 더 있었다

최상현 기자 2022. 1. 27.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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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27일 대형 건설사 다수가 현장 셧다운에 들어갔다. 지난 11일 HDC현대산업개발이 광주 화정 아이파크 붕괴 사고를 일으킨 데 이어, ‘중대재해법 1호’가 될 순 없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그런데 아이파크 붕괴 사고로부터 법 시행 이전 시점까지 전국 각지 현장에서 5건이나 되는 ‘처벌하지 못한 죽음’이 발생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하루 앞둔 26일 인천국제공항 4단계 건설 현장의 모습.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연합뉴스

27일 건설공사 안전관리 종합정보망에 따르면, 지난 14일 경기도 화성시 남양뉴타운에 짓는 ‘화성시청역 리젠시빌란트’ 아파트 공사현장에서 하청업체 소속 근로자 2명에 대한 사상 사고가 발생했다.

저수조 바닥 미장 작업을 하던 이들은 콘크리트 양생을 위해 사용한 숯탄에서 나온 일산화탄소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새벽 작업을 하다 쓰러진 근로자들은 이날 오전 6시30분쯤 미장 소장에 의해 발견됐다. 1명은 숨지고, 다른 1명은 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고 있다.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르면 밀폐공간에서 작업할 때는 산소농도를 수시로 확인하고 환기시설 설치와 안전보건 교육도 해야 한다. 콘크리트 양생 작업은 겨울철 가장 많은 질식 사고를 일으키는 원인이다. 고용부가 최근 10년간 발생한 질식재해 분석 결과 겨울철 건설업 질식재해 25건 중 17건이 콘크리트 보온 양생 작업 중 벌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5일에는 울산시 울주군의 저수지에 숨은 수문 개폐장치를 점검하던 근로자가 물에 빠져 숨진 사고가 일어났다. 해당 근로자는 ‘저수지 물이 빠지지 않는다’는 민원을 해결하기 위해 얼음을 깨고 물에 들어갔다가 심정지로 사망했다. 현장에는 안전조끼나 잠수장비, 안전 관리자도 없었지만, 발주처인 울주군청과 시공업체 측은 애초에 작업 지시를 내린 적이 없었다는 입장을 표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18일에는 서울 강동구의 한 오피스텔 신축 공사현장에서 50대 A씨가 8층 높이에서 승강기 설치를 위해 비워놓았던 통로 공간으로 떨어져 숨졌다. A씨는 건설자재를 끌어올리기 위한 구조물을 만드는 작업을 하다가 이러한 변을 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고 현장에는 원래 추락 방지를 위한 안전 난간대가 설치돼있었지만, 사고 당시에는 양중 편의를 위해 난간대를 무단으로 철거한 것으로 드러났다.

같은 날 전북 부안군 부안읍에서는 포장공사 도중 휴식을 취하던 근로자가 갑자기 쓰러져 숨졌다. 근로자의 나이는 72세로 사인은 심장마비로 추정됐다. 부안군청 관계자는 “경찰에서도 사인을 ‘내상’으로 확정하며 종결된 사건”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산안법에 따르면, ‘심장·신장·폐 등의 질환이 있는 사람으로서 근로에 의하여 병세가 악화될 우려가 있는 사람’에 대해 사업주는 근로를 금지해야 한다. 조사당국은 “고령자 채용을 지양하며, 작업 투입 전 근로자 혈압확인 등 건강 상태 확인에 철저할 것”이라는 재발방지대책을 권고했다.

지난 19일에는 충북 청주시 청원구 청주여고 건물 3층에서 창문을 손으로 철거하려던 외국인 근로자 B씨가 창문짝과 함께 추락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현장에서는 바닥 몰탈 타설을 위해 건설용 자재를 사다리차로 인양하는 작업 중이었는데, 해당 근로자는 외벽에 설치된 이중창 창문을 철거하는 사전 작업을 하다 추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잔디밭으로 떨어진 B씨는 병원으로 후송됐지만 끝내 숨졌다.

27일부터 상시근로자 50인(공사금액 50억원 등) 이상 사업장에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된다. 이에 따라 대형 건설사 가운데 이날부터 명절 연휴기간까지 건설현장 운영을 중단하기로 한 사례가 다수다. 삼성물산 건설 부문은 이날 전국 모든 건설현장의 자체 안전점검을 실시한 후 설 연휴가 끝나는 2월2일까지 작업을 일괄 중지할 계획이다.

현대건설도 27일을 ‘현장 안전의 날’로 설정하고 다음 날에는 안전 워크숍을 진행하고 이후 오는 2월 4일까지 휴무를 가진다. 이 기간 동안 최소 인원만 제외하고 공사를 중단할 계획이다. 대우건설과 DL이앤씨, 포스코건설, SK에코플랜트 등도 설 연휴 이전 작업 중지를 시행하거나 전국 현장에 권고했다. 동부건설와 한양, 금성백조 등 중견 건설사도 건설현장을 중단하거나 꼭 필요한 공사만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이를 통해 ‘중대재해법 1호’만은 회피하겠다는 전략이지만, 이렇게 하루가 멀다 하고 사망 사고가 속출하는 건설업종에 결국 중대재해법 적용으로 인한 타격이 가장 클 거라는 전망이다. 산업안전보건공단 관계자는 “현장소장 선에서 처벌이 그치던 기존 산안법과는 달리 경영진에게 직접 사고 책임을 묻는 만큼, 현장 안전에 더 관심을 기울이고 조직·체계·장비 등에 투자하라는 것이 법안 취지”라면서 “중대재해법 자체에 부과된 의무 등은 산안법과 큰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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