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관의 세계인문여행] 로마 문명, 한국에서 수모를 당하다!

조성관 작가 2022. 1. 27. 12: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로마 콜로세움 / 사진출처 = 위키피디아

(서울=뉴스1) 조성관 작가 = 신년 벽두부터 한심하고 우울한 일의 연속이다. 어쩌다 한국사회의 수준이 이 지경까지 추락했을까. 광주아파트 붕괴사고도 그중 하나다.

반도체 강국 코리아에서 아프리카 최빈국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이 벌어졌다. 광주광역시 서구 화정현대아이파크 아파트 외벽 붕괴사고의 동영상을 여러 번 보았다. 보면 볼수록 기가 차고 어이없다.

"어떻게 저런 일이~~~."

내가 구독 중인 신문의 1면 톱 제목은.

"아래층 콘크리트 굳지도 않았는데 위층 올리다 사고"

건축공학 교수들의 지적을 제목으로 뽑은 것이다. 하층부 콘크리트가 충분히 양생(養生)되지 않아 필요한 강도를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무리한 추가 타설로 외벽이 하중을 견디지 못하고 연쇄 붕괴했다는 이야기다. 누구나 납득이 가는 설명이다. 기본중의 기본을 지키지 않아서 벌어진 참사였다는 이야기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길을 걷다가 '콘크리트 양생 중이니 조심하세요'라는 안내문을 종종 본다. 그러나 거푸짚을 떼어냈을 때 누군가 양생 중인 콘크리트에 발자국을 남긴 것도 드물게 확인한다.

'콘크리트'라는 제목을 보는 순간, 로마의 콜로세움(Colosseum)이 스르륵 VR(가상현실)로 눈앞에 떠올랐다. 이어서 콜로세움의 여러 장면이 스쳐 지나간다.

고대 유적지 중 세계인이 가장 가 보고 싶어 하는 상위 5위 안에 드는 게 콜로세움이다.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 이집트의 피라미드, 중국 시안(西安)의 병마용 갱, 중국의 만리장성. (어디까지나 나의 주관적인 생각이다)

국어사전은 콜로세움을 이렇게 서술한다.

'고대 로마 시대에 세워진 원형 경기극장. (가운데에 투기장이 있음)'

로마 문명을 상징하는 대표 건축물인 콜로세움은 서기 80년에 완성되었다. 지금으로부터 1942년 전이다. 콜로세움은 2000년에 가까운 장구한 세월을 지진과 전쟁 속에서도 살아남아 지금 세계인을 매혹한다. 1942살의 콜로세움은 로마의 랜드마크로 당당한 위용을 자랑한다. 세계인의 관광객들은 그런 콜로세움 앞에서 기가 죽는다.

영화 '글래디에이터'의 한 장면. 콜로세움에서 펼쳐지는 검투사들이 대결을 펼치고 있다.

콜로세움은 흔히 로마문명의 뛰어난 건축기술을 웅변하는 증거라고 일컬어진다. 콜로세움은 TV 다큐멘터리에서 가장 빈번하게 다뤄지는 고대 건축물이다. 건축물 자체뿐만 아니라 워낙 다양한 스토리텔링을 품고 있어서다. 영화 '벤허'에 나오는 마차 경기가 바로 콜로세움에서 벌어졌다. 영화 '글래디에이터'에 나오는 검투사 경기도 실제로 콜로세움에서 행해졌다. 관중석을 가득 메운 청중들이 열광하는 가운데 경기장에 선 검투사들. 죽느냐 사느냐! 흥분한 관중은 황제석(席)을 향해 외쳐댄다. 황제가 오른손을 든다. 그리고 죽음을 명하는 뜻으로 엄지를 내린다. 폴리체 베르소(Police verso)! 그때마다 콜로세움은 관중의 환호로 들썩거렸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콜로세움은 흔히 로마제국의 뛰어난 건축기술을 증명한다. 그렇다면 '뛰어난 건축기술'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나. 첫 번째는 건축설계다. 좋은 설계도면만 있으면 끝인가? 도면대로 시공이 가능한 기술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콜로세움은 콘크리트와 석재로 지어진 건축물이다.

로마문명이 인류에게 남겨준 유산이 바로 콘크리트의 발명이다. 로마제국은 유럽대륙과 지중해 연안에 거대한 식민지를 거느리면서 도로, 극장, 수도관과 같은 공공시설을 건축한 것으로 유명하다.

로마제국의 식민지였던 도시들은 대개 원형극장, 수도교, 목욕탕 같은 것이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런던과 파리에도 로마제국의 흔적들이 남아 있다. 영국의 역사 교과서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우리는 로마의 지배를 받으며 비로소 문명 세계에 접어들었다.'

어느 나라나 로마의 유적들을 원형에 가깝게 보존될수록 매력적인 관광 상품이 된다. 대부분 유적의 재료는 콘크리트와 석재다.

스페인 세고비아의 수도교 / 사진출처 = 위키피디아

로마 시대 수도교로 가장 유명한 곳은 스페인 세고비아의 수도교다. 길이 728m, 높이 30m.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다. 서기 50년에 지어졌다. 서기 50년이면, 우리나라 연표로 보면 고구려 시대다.

산에서 깨끗한 물을 길어 도시민에 식수로 공급하기 위해 놓은 것이 수도교다. 완만한 경사를 두어 물이 산 위의 수원지에서 자연스럽게 아래로 흐르게 했다. 물이 흐르는 맨 꼭대기의 수로는 콘크리트로 만들었다. 틈새가 없이 평평하고 고르게 관을 만들려면 콘크리트를 사용해야 한다. 얼마나 정교하고 단단하게 만들었으면 세고비아 사람들은 최근까지도 1970년 전 로마인이 건설한 콘크리트 수로를 통해 식수를 공급받았다.

콘크리트 말고도 우리가 로마인에게서 지혜를 빌려 사용하는 것이 여러 개다. 수도관, 포장도로, 중앙난방이다. 로마 시대에 목욕탕 문화가 발달한 것은 중앙난방, 수도관, 콘크리트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토목은 문명의 기초

문명(文明)은 영어로 'civilization'이다.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 중에서 이 영어 단어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토목공학(土木工學)을 영어로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10년 전까지 '토목공학'이 영어로 어떻게 되는지 알지 못했다.

대학마다 재상봉 행사가 있다. 학교에 따라 입학 연도나 졸업 연도를 기준으로 25년, 30년 단위로 재상봉 행사를 한다. 인문대 어문계열 출신인 나는 재상봉 행사를 통해 공대 출신 여러 명과 친하게 지냈다. 공대 출신들과 이야기하는 게 재미있었다. 그동안 내가 모르고 있었던 세상에 대한 이해가 하나둘씩 생겨서다. 어느 날 대기업 임원으로 있는 토목공학과 출신으로부터 토목공학이 영어로 civil engineering(시빌 엔지니어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날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내가 이런 것도 모르고 있었구나! 얼굴이 화끈거렸다.

토목(土木)은 단순하게 말하면 도로를 만들고 다리를 놓고 터널을 뚫고 철도를 부설하는 것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한국 사회에서는 '토목'을 경시하는 풍조가 만연하기 시작했다. 마치 토목이 저차원적이고 시대에 뒤떨어진 것처럼. 내일부터 모든 도로와 다리가 사라지고 터널이 막힌다고 가정해보자.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질까.

고대 로마는 격언의 발상지다.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 '지옥이 있다면 로마는 그 위에 지어졌다' '혀가 있는 자는 로마에 가도 좋다' 등.

그중에서 자주 인용되는 격언이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이다. 이 격언은 로마 가도(街道)에서 유래되었다. 로마 가도는 총연장이 8만㎞에 달한다. 그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아피아 가도(Via Appia). 로마 제국은 유럽과 아시아로 뻗어 나가는 가도를 통해 문명을 실어나르며 제국을 건설하고 지배했다. 로마 가도의 재료는 콘크리트와 석재다. 2000년이 지났건만 지금껏 멀쩡하다.

콘크리트의 강도(强度) 시험이 심심찮게 벌어진다. 제대로 양생이 된 콘크리트가 얼마나 단단하지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다. 전시상황을 대비한 시설이 지하 벙커다. 대부분의 국가는 비상시를 대비해 지하 벙커 시설을 둔다.

처칠 수상이 2차대전 중 전시내각으로 사용한 지하 벙커 입구. 현재는 '처칠 워 룸'으로 일반에 개방하고 있다. 조성관 작가 제공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은 영국을 항복시키려 영국섬 전체를 폭격했다. '더 블리츠'(The Blitz)'!. 나치는 영국 전역에 147회를 폭격했는데, 그중 71회가 런던에 집중되었다. 영국의 국가지도부를 몰살시키려 폭탄을 런던에 쏟아부었다.

하지만 윈스턴 처칠은 지하 벙커에 들어가 전쟁을 지휘했다. 두꺼운 콘크리트 속에서 전시내각(War Cabinet)은 정상적으로 운영되었고, 처칠은 마침내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콘크리트 벙커가 영국을 구해낸 것이다.

'더 블리츠'를 소재로 여러편의 영화가 제작되었다. 2017년에 나온 다키스트 아워(Darkest Hour)가 그중 하나다. 영화 속에 처칠이 비좁은 지하 벙커에서 시가를 문 채 분주히 움직이는 장면이 나온다.

광주아파트 붕괴사고가 생각지도 않았던 로마 문명의 콘크리트를 소환했다. 로마 문명의 이란성 쌍둥이가 그리스문명이다. 그리스 문명의 유산이 Democracy, 즉 민주정(民主政)이다. 2500여 년 전 페리클레스가 민주정을 확립하면서 아테네는 인류사의 찬란한 문명을 꽃피웠다.

콘크리트 붕괴사고가 되묻는다. 대한민국의 민주정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 외부 필진의 글은 뉴스1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author@naver.com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