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 칼바람이 만드는 자연의 단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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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지바르고 온난한 기후의 남쪽 바닷가를 중심으로 한반도의 겨울은 달콤한 채소의 전성기다.
푸릇푸릇한 채소들은 왠지 무더운 여름의 전유물인 것 같지만 의외로 겨울이 제철인 녀석들도 많다.
특히 제주도를 중심으로 여러가지 겨울 채소가 자란다.
제주에서 겨울에 전성기를 맞는 또 다른 채소는 바로 당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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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지바르고 온난한 기후의 남쪽 바닷가를 중심으로 한반도의 겨울은 달콤한 채소의 전성기다. 푸릇푸릇한 채소들은 왠지 무더운 여름의 전유물인 것 같지만 의외로 겨울이 제철인 녀석들도 많다. 특히 제주도를 중심으로 여러가지 겨울 채소가 자란다. 제주 한림에선 추위에 강한 ‘양배추 패밀리’들이 겨울 동안 부지런히 출하된다. 차를 몰고 제주 벌판을 달리며 눈에 띄는 흰색 덩어리는 양배추, 진한 초록색 봉오리들은 브로콜리와 콜리플라워다. 자줏빛 이파리들이 휘날리는 곳은 비트밭이다. 실제로 브로콜리는 녹색 꽃양배추, 콜리플라워는 흰색 꽃양배추라고 불리는 양배추의 변형 종자들이다. 가끔 뾰족하고 색깔이 초록 보라 노랑 등 다양한 세모난 콜리플라워를 볼 수 있는데 이 채소의 이름은 로마네스크다. 원래 이름은 로마네스크 브로콜리이며 맛은 오히려 양배추에 가깝다.
비트는 현대인에게 필요한 철분 및 미네랄 함량 때문에 벼락스타가 된 붉은 채소다. 검붉은 색의 단단한 육질을 가졌고 칼로 자르면 피가 나는 것처럼 빨간 액체가 흐른다. 물에 한번 데쳐서 익혀 먹으면 소화도 잘되고 맛도 살아난다. 물에 데친 비트는 냉동을 해뒀다가 그때그때 꺼내서 구워 먹거나 즙을 짜서 먹어도 좋다. 비트를 생으로 먹을 때 느끼는 비릿한 향이 없어지고 좋은 영양소의 체내 흡수를 돕는다.
제주에서 겨울에 전성기를 맞는 또 다른 채소는 바로 당근이다. 당근 맛이 뭐 얼마나 다르겠어, 무심히 여길 수 있겠으나 겨울 구좌 당근을 맛보면 깜짝 놀란다. 단맛과 쌉싸름한 맛의 균형이 이런 거구나!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겨울 당근의 맛이다. 요즘 당근은 그냥 기름에 슬쩍 볶기만 해도 설탕을 뿌린 듯 입에 착 붙는다. 그래서 필자는 당근을 넣은 김밥을 겨울에, 오이를 넣은 김밥을 여름에 만든다. 당근을 얇게 썰어 소금을 슬쩍 뿌려 2~3분간 두었다가 조물조물 버무려준 뒤 기름을 두른 팬에 잘 볶아준다. 겨울에 더 맛있는 햇김에 고슬고슬 잘 지어서 소금, 설탕, 식초, 참기름으로 간을 한 밥을 얹고 달걀부침, 단무지, 그리고 볶은 당근을 잔뜩 넣고 김밥을 말아보자. 이럴 수가 있나 싶게 감칠맛 폭발이다. ‘쇠고기나 햄 따위, 필요 없네’ 잠시 생각한다.
제주를 벗어나 육지로 올라오면 시금치와 대파가 있다. 겨울 바다의 해풍을 맞으면서 악착같이 자라는 겨울 시금치는 특유의 단맛이 특징이다. 칼바람 덕분에 만들어진 달콤함이다. 우리네 인생 이치와도 비슷하다. 고통과 풍파 뒤 찾아오는 꿀맛 같은 휴식. 승자의 미소와도 같은 달콤함이 겨울 시금치에 어려 있다.
대파도 의외로 추운 데서 자라는 식물이다. 진도에서 길러진 겨울 대파를 명품이라 말하곤 하는데, 유난히 흰 대 부분이 크고 기다랗고 점액질이 많지 않으면서 단맛이 강하다. 우리 집은 겨울이 되면 사골을 푹 고아낸 뒤 다진 마늘과 고추장, 고춧가루를 넣고 매운 곰탕을 끓인다. 이때 진도 대파 거의 한 단을 숭덩숭덩 썰어 넣고 푹 끓여내면 그 감칠맛은 상상을 초월한다. 대파에서 우러난 단맛은 세상에 둘도 없는 감칠맛으로 승화된다. 소 200마리 정도를 우려낸 듯 진하고 달큼한 그 맛! 겨울 대파에 그 비밀이 숨어 있다.
생각해보니 김밥은 겨울이 제철일 수도 있겠다. 지금이 한창인 김, 겨울 무를 절여서 만든 단무지, 달콤한 당근, 더 달콤한 시금치, 갓 짜낸 참기름, 그리고 가을에 수확해둔 좋은 쌀까지….
옛날 옛적 이야기처럼 말린 시래기, 말린 호박오가리 같은 묵은 나물이 아니더라도 싱싱한 상태일 때 더 달고 맛있는 겨울의 단맛을 놓치지 마시길! 홍신애 요리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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