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배의 공간과 스타일] [119] 그림 간판
길거리를 지나다 보면 눈에 띄는 간판들이 있다. 멋진 글씨체와 세련된 디자인도 좋지만 더 다가오는 건 그림으로 그려진 간판들이다. 1960~1970년대에는 유리창에 손으로 상호를 그린 상점들의 풍경이 거리를 장식했다. 컴퓨터 인쇄 기술의 발달로 지금은 거의 자취를 감춘 모습이다. 그래도 국내외 지방 도시나 시골에 남아있는 경우가 꽤 있다. 생선 가게, 레스토랑, 세탁소, 정육점 등 업장의 종류도 다양하다. 당연히 집집마다 그림의 스타일도, 글씨의 형태와 필체도 다르다. 핸드 페인팅, 스텐실, 실크스크린 등 미술 시간에 배웠던 온갖 방법이 응용되어있다.
손으로 그려진 간판들은 정보뿐 아니라 유머와 친근함, 그리고 미(美)적인 메시지를 전달한다. 추억과 상상을 선물한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유일함이라는 가치도 있다. 무엇보다 그 내면에 ‘유니버설 디자인’이 있다. 그림은 국제적 언어다. 거기에는 문맹을 위한 배려가 담겨 있다. 다리미 그림을 보고 세탁소라고 추측하고, 음식 그림을 보고 식당의 메뉴를 파악하고, 빗과 가위를 보고 이발소임을 아는 것이다<사진>.
글을 읽을 줄 모르는 동네 사람들의 대화에서는 종종 그림이 그려진 장소를 지명한다. “타조 세 마리 술집으로 와라” “거북이 바에서 만나자”와 같은 식이다.
언어 이전부터 존재했고, 배우지 못했어도 이해하고 표현할 수 있는 것이 그림이다. 그림은 여행객들에게도 친절하다. 모든 안내판과 간판이 특정 언어로만 쓰여 있다면 다른 나라를 방문할 때 소통하기가 훨씬 힘들 것이다. 알게 모르게 우리의 일상은 상당 부분 그림의 언어로 작동되고 있다.
그림 간판은 아마추어가 어설프게, 꽤 그럴듯한 감각으로 그린 것이 정겹다. 우리가 일상에서 소통하는 첫 번째 도구는 언어고, 그림과 같은 시각적 이미지는 다음이다. 하지만 생각을 담고 그려서 표현한 결과물의 가치는 특별하다. 레트로 감성의 유행과 관심에 힘입어 손으로 작업한 그림 간판들이 틈틈이 다시 보이는 것은 반가운 현상이다. 일상의 예술은 멀리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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