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 펼쳐진 새들의 공연에 넋을 잃다 [캐러밴으로 돌아보는 호주 여행기]

이강진 입력 2022. 1. 26. 18:39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캐러밴으로 돌아보는 호주 (17) 여행객의 쉼터 테이블랜드

[이강진 기자]

 황량한 호주 오지를 외롭게 달리는 캐러밴
ⓒ 이강진
 
지하자원이 풍부한 광산 도시 마운트 아이작(Mount Isa)에서 며칠 지낸 후 다윈(Darwin)을 향해 다시 길을 떠난다. 지금부터는 포장된 도로만 따라 운전할 예정이다. 따라서 흙먼지 뒤집어쓰며 운전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오지로 들어가기 때문에 당분간 문명(?) 생활은 포기해야 한다. 

가는 길에 있는 야영장에 예약하려고 했으나 예약을 받지 않는다. 오는 대로 손님을 받는다고 한다. 혹시 자리가 없으면 도로변에 있는 무료 야영장에서 지낼 생각으로 길을 떠난다. 오지에 있는 무료 야영장은 화장실만 있는 빈약한 곳이 많다. 그래도 하루 정도는 지낼 수 있을 것이다.
        
도시를 벗어났다. 다시 황량한 평야가 펼쳐진다. 오래 운전했다.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는데 작은 동네(Camooweal)가 나온다. 이른 점심도 먹을 겸 주유소에 있는 식당에 들어선다. 식당에는 여행객 서너 명이 음료를 마시며 쉬고 있다.

메뉴를 보니 특별히 먹고 싶은 음식이 없다. 한국 같으면 지방마다 입맛 돋우는 음식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호주에서는 기대할 수 없다. 여행하면서 쉽게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햄버거를 주문했다. 근처에 목장이 있는 것일까, 고기 양이 많다. 고기도 부드럽다. 이렇게 푸짐하고 맛있는 스테이크 햄버거는 오랜만이다. 
  
휘발유도 가득 채우고 길을 떠난다. 고속도로를 조금 달리니 경찰이 차를 세운다. 노던 테리토리(Northern Territory)에 도착한 것이다. 지나가는 모든 차량을 세우고 노던 테리토리에 들어갈 수 있는 허가서가 있는지 확인하고 있다.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이다. 핸드폰에 받아놓은 허가서를 보여주었다. 운전면허증도 요구한다. 이것저것 조사를 끝내더니 노던 테리토리에 온 것을 환영한다(Welcome to NT)는 인사말과 함께 손을 흔들어 보인다. 

지금부터는 퀸즐랜드(Queensland) 주가 아니다. 표준 시간이 30분 빠르다. 도로에 쓰여 있는 속도 제한도 다르다. 지금까지는 고속도로 속도 제한이 110km이었다. 그러나 이곳부터는 130km다. 도로 사정이 달라진 것도 아니다. 단지 주가 다르다는 것만으로 속도제한이 다른 것이다. 그렇다고 캐러밴을 끌고 130km로 달리는 것은 무리다. 하지만 액셀러레이터를 조금씩 많이 밟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황량한 호주 대륙을 가로지르는 고속도로
ⓒ 이강진
 
도로는 거의 일직선으로 뻗어 있다. 측량사가 자를 대고 선을 그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지평선과 붉은 흙이 전부다. 지나가는 자동차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가끔 캐러밴을 끌고 가는 여행객만 있을 뿐이다. 단조롭긴 하지만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조금은 지루한 운전을 오랫동안 하여 테이블랜든(Tablelands)라는 곳에 도착했다. 마을은 보이지 않는다. 도로변에 큼지막한 주유소와 건물(Barkly Homestead) 한 채만 덩그러니 있을 뿐이다. 주변의 넓은 공터에는 트레일러를 4개씩 끌고 다니는 대형 트럭(Road Train) 다섯 대가 주차해 있다. 호주 대륙을 종횡무진으로 달리는 트럭 기사들을 위한 숙소가 있기 때문이다.
 
 오지에서 여행객에게 쉼터를 제공하는 야영장 건물(Barkly Homestead)
ⓒ 이강진
   
 야영장 공터에는 대형 트럭(Road Train)들이 주차해 있다.
ⓒ 이강진
 
건물에 들어선다. 식당과 술집 그리고 선물 가게를 겸한 가게가 있다. 오지에 있는 건물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실내가 넓고 현대적으로 꾸며져 있다. 실내에는 술잔을 앞에 놓고 대화를 나누는 사람, 선물 가게를 기웃거리는 사람으로 붐빈다.

야영장에 자리가 있는지 알아보았다. 예상치 않게 리셉션에서 일하는 사람은 젊은 동양 여자다. 다행히 묵을 수 있는 자리가 있다. 그러나 금액이 관광지에 있는 좋은 야영장 못지않게 비싸다. 여행객이 쉬었다 갈 수밖에 없는 길목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프리미엄을 톡톡히 받고 있다. 

야영장에 들어섰다. 조금 이른 시간이라 자리가 많은 편이다. 나무 그늘이 있는 장소에 캐러밴을 주차했다. 이미 자리를 잡고 의자에 앉아 쉬고 있는 나이 많은 부부가 손을 흔들어 인사한다. 큼지막한 캐러밴을 가지고 여행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자동차를 캐러밴에서 분리하지 않았다. 주위에 있는 대부분의 여행객도 마찬가지다. 이곳에는 자동차를 타고 특별히 관광할 곳이 없다. 그리고 여행객들은 하루 정도 묵고 떠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굳이 자동차와 캐러밴을 분리하지 않는 것이다.  

야영장 규모가 크다. 주위를 걸어본다. 젊은 동양 남자가 작은 트랙터를 타고 다니며 일하고 있다. 리셉션에서 만난 동양 여자와 함께 지내는 청년일 것이다. 텐트에서 지내는 젊은 여행객이 보인다. 흙먼지를 뒤집어쓴 비포장 전문용 캐러밴도 보인다. 그러나 대부분의 여행객은 화장실과 샤워실을 갖추고 있는 크고 안락한 캐러밴에서 지내고 있다. 편안하게 여행하며 노년을 즐기는 은퇴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저녁을 끝내고 간이 의자에 앉아 차를 마신다. 아직도 해는 하늘에 머물러 있다. 산이 없는 들판이기에 해가 늦게 떨어진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지평선 너머로 해가 기울어지기 시작한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다. 떨어지는 해는 주위 풍경과 어울려 볼 만하다. 해가 머물고 간 자리에는 별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한다. 오랫동안 의자에 앉아 도시에서 볼 수 없는 총명한 별에 시선을 빼앗긴다. 

조금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나이 든 여행객이 많아서인지 늦은 밤은 아니지만, 주위가 조용하다. 넓은 들판을 거칠 것 없이 활보하는 바람 소리가 들린다. 잠자리를 준비하는 것일까, 새소리도 유난히 많이 들린다. 장거리 운전에 피곤했나보다, 일찌감치 잠에 떨어진다.
  
아침에 일어나니 이른 시간이지만 떠날 준비를 하는 사람으로 주위가 소란하다. 나는 하루 더 묵을 생각이다. 특별한 관광지가 없는 곳에서 나만의 시간을 갖는 것도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여행객이 하나둘씩 떠나는 야영장을 운동도 할 겸해서 걷는다.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작은 저수지 근처에서 새들이 떼를 지어 날아다니고 있는 것이 보인다. 새들이 큰 무리를 이루어 공중 곡예를 한다. 급선회를 반복하며 날아다닌다. 흡사 파란 하늘에서 파도가 치는 듯한 광경이다. 수많은 새가 방향을 바꾸면서도 서로 부딪히지 않는 것이 신기하다. 텔레비전 도큐먼트에서 본 적이 있는 풍경이 바로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다. 장관이다.

처음 대하는 역동적인 모습을 카메라에 잡으려고 노력하지만, 쉽지 않다. 무슨 이유로 그 많은 새가 수시로 방향을 급하게 바꾸며 날아다니는 것인지 모르겠다. 여행객 중에는 의자를 가지고 와서 커피를 마시며 구경하는 사람도 있다. 오랫동안 새들의 공연(?)은 끝나지 않는다. 덕분에 늦은 아침을 먹어야만 했다. 
 
 난생처음 마주한 새들의 공연
ⓒ 이강진
 
책과 함께 반나절을 보냈다. 더운 날씨다. 맥주 생각이 난다. 술집을 향해 걷는데 새장이 보인다. 화려한 색을 자랑하는 커다란 앵무새들이 구경할 만하다. 주위에는 칠면조를 연상케 하는 새들이 떼를 지어 다니고 있다. 옆에서 새장을 살피는 할머니에게 말을 걸었다. 칠면조처럼 생긴 새에 관해 이야기해 준다. 시끄러운 새이기 때문에 도둑을 지키는데 제격이라고 한다. 이름도 가르쳐 주었는데 생각나지 않는다. 
 
 야생 칠면조를 연상케 하는 새가 떼를 지어 다닌다.
ⓒ 이강진
      
술집에 들어서니 어제와 마찬가지로 삼삼오오 테이블을 차지한 여행객으로 붐빈다. 대형 스크린에서는 럭비 중계로 시끄럽다. 맥주를 앞에 놓고 더위를 식힌다. 혼자 앉아 맥주를 마시는, 혼술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군중 속의 고독이라고 하던가, 그러나 이제는 습관이 되어 어색하지 않다. 외롭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오히려 혼자서 지내는 것을 어느 정도 즐기기까지 한다. 
혼자 지내는 나를 위로하는 글이 생각난다. 함께 춤추고 노래하라 그러나 고독한 삶은 간직하라, 혼자 있음을 자초할 능력이 없는 사람은 독립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는…
   
▲ 테이블랜드 ⓒ 이강진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