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안심포니·KBS교향악단 지휘봉 잡는 새 외국인 음악감독들..첫 연주회로 관객 인사
[경향신문]
대표적 공공 교향악단인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KBS교향악단, 서울시립교향악단이 새해 첫 정기 연주회를 연달아 개최한다. 특히 40대 초반의 젊은 외국인 지휘자를 새 감독으로 맞이한 코리안심포니와 KBS교향악단은 취임 연주회를 겸한 공연으로 관객과 만난다. 두 악단은 최근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의 ‘국립’ 명칭 변경을 두고 신경전을 벌였던 터라 향후 두 신임 감독이 악단에 어떤 변화를 몰고 올지 더욱 주목된다.
■코리안심포니 첫 외국인 예술감독, 슈만으로 희망 전달
포문은 올해부터 코리안심포니의 새 예술감독으로 지휘봉을 잡는 벨기에 출신 다비트 라일란트(43)가 열었다. 라일란트는 코리안심포니가 처음으로 맞이한 외국인 예술감독으로, 2018년부터 프랑스 메스 국립오케스트라와 스위스 로잔 신포니에타의 음악감독을 지냈다. 지난 23일 취임 연주회를 성공적으로 마친 라일란트는 25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음악을 보편적 언어라고 하는데, 문화적 특수성까지 잊게 하는 게 바로 음악의 힘”이라며 “저 스스로를 코리안심포니의 첫 외국인 지휘자, 예술감독으로 여기기보단 한 명의 음악가로 다가가고 싶다”고 말했다.
새 상임 지휘자가 국내 관객에게 첫선을 보이는 무대에 음악 팬들의 관심도 뜨거웠다.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그의 취임 연주회는 전석 매진을 기록했다. 평소라면 듬성듬성 비었을 3층 객석과 합창석까지도 관객들로 빼곡했다. 라일란트는 “부임 뒤 첫 공연이라 긴장됐지만, 단원들과 최고의 기량을 선보이며 관객과 열정을 나누자는 마음으로 무대에 올랐다”며 “영광스러운 자리를 맡겨주셔서 감사하다”고 첫 연주회를 마친 소감을 밝혔다.
취임 연주회의 타이틀은 ‘빛을 향해’. 악화하는 청각장애에 굴복하지 않았던 베토벤, 우울감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음악으로 다시 일어선 슈만 등 암담한 상황 속에서 빛으로 향한 작곡가들의 음악으로 구성했다. 공연 1부를 연 것은 진은숙의 오페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중 5장 프렐류드. 경쾌한 휘슬 소리로 시작하는 음악은 긴박한 속도감과 재치 있는 박자가 돋보이는 3분 남짓 짤막한 곡으로, 2007년 독일 뮌헨 오페라 극장에서 초연한 현대곡이다. 라일란트는 취임 연주회의 첫 곡으로 한국의 세계적 작곡가 진은숙을 선택해 관객과 첫 인사를 했다. 산뜻하고 경쾌하게 시작한 공연은 떠오르는 18세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협연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3번으로 달아올랐다. 베토벤이 청력을 잃어가던 시기 작곡한 이 곡을 임윤찬과 코리안심포니는 어둠과 열정의 선율로 빚어냈다. 독일 뒤셀도르프 심포니오케스트라에서 ‘슈만 게스트’ 명예 칭호를 받은 라일란트는 공연 2부에서 슈만 교향곡 2번을 지휘해 관객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그는 “슈만의 음악은 흑과 백, 가장 절망적인 순간과 가장 희망적인 순간이 동시에 담겨 있는 음악”이라며 “어둠 속에서도 강렬한 기쁨과 긍정적 메시지가 분출되는 곡”이라고 선곡 이유를 설명했다.
라일란트는 2018년 오페라 <코지 판 투테>와 2019년 국내 초연한 오페라 <마하고니 도시의 번영과 몰락>, 2021년 교향악 축제를 통해 코리안심포니와 호흡을 맞춘 바 있다. 그는 코리안심포니의 강점으로 개방성과 유연함을 꼽았다. 그는 “음악의 세심한 부분까지 신경쓰면서도 동시에 유연하고, 관객과 음악적 열정을 나누고자 하는 관대한 마음에 끌렸다”며 “젊은 작곡가 양성이나 지휘 콩쿠르 개최 등 현대음악을 이끌어갈 주역들을 양성하고 그들과 협업하려는 열린 자세도 유럽에선 흔치 않은 강점”이라고 말했다.
라일란트는 앞으로 임기 3년간 오케스트라의 음악적 반경을 한층 넓히겠다는 포부를 드러냈다. 모차르트와 하이든으로 대표되는 빈 악파와 독일 낭만주의 음악, 20세기 프랑스 레퍼토리라는 세 축을 중심으로 관객과 만날 계획이다. 그는 “2022년을 사는 음악가로서 과거 위대한 음악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것도 하나의 사명”이라고 말했다. 지휘자가 되기 전 작곡가로 활동했던 그는 한국 작곡가들의 곡도 꾸준히 선보이겠다고 했다. 라일란트는 “보편적인 음악적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면서 고유의 뿌리를 드러내는 것이 현대음악의 특징일 텐데, 한국적 뿌리를 바탕으로 성장하는 한국 작곡가들의 곡을 코리안심포니와 선보이고 싶다”고 했다.
취임 연주회를 성공적으로 마쳤지만, 코리안심포니는 최근 음악보다는 정치적 문제로 논란에 휩싸여 있다. 새로 취임한 성악가 출신 최정숙 대표의 ‘낙하산 임명’ 논란이 일었고, 국립 오케스트라로 명칭 변경을 추진하는 문제를 두고선 과거 ‘국립’ 명칭을 썼던 KBS교향악단의 반발에 부딪힌 상황이다. 코리안심포니는 1981년 해체된 옛 국립교향악단의 마지막 상임지휘자였던 고 홍연택이 국립교향악단의 일부 단원들과 함께 1985년 창단한 오케스트라다. 민간 오케스트라로 출발했지만 2001년 예술의전당 상주단체가 된 뒤 국립발레단 등 국립예술단체의 연주를 전담해 국고 지원을 받고 있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단체다. 최근 악단 명칭에 ‘국립’을 넣어 변경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라일란트는 “‘국립’이란 말이 갖고 있는 굉장한 무게감과 상징성, 의미에 책임이 동반되어야 한다는 데 공감한다”며 “국립 오케스트라에 걸맞은 어떤 프로젝트를 할 수 있을지 깊이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국립’이란 명칭을 달면 국제 무대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대사와 같은 역할을 하게 되는데, 해외에서 한국이 문화적으로 큰 관심을 받고 있고 한국의 음악적 역량을 알리는 책임도 있는 것 같다”며 “무거운 책임감을 갖고 이 직을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KBS교향악단 새 지휘자, 고국 핀란드 음악으로 관객과 인사
KBS교향악단은 28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29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이틀에 걸쳐 핀란드 출신 신임 음악감독 피에타리 잉키넨(42)의 취임 연주회를 연다. 올해부터 3년간 KBS교향악단을 이끌게 된 잉키넨은 26일 여의도 KBS아트홀에서 연 취임 기자회견에서 “오케스트라의 역량을 강화해 아시아를 대표하는 오케스트라로 KBS교향악단의 지위를 공고히 하고, 국제 무대에서 존재감을 더 널리 알리겠다”고 포부를 드러냈다. 올해 6차례의 정기공연에서 KBS교향악단을 지휘하는 그는 “다음 시즌에는 제가 지휘하는 공연 수를 더 늘릴 예정”이라며 “서울뿐 아니라 여러 도시를 돌아다니며 관객과 만나고, 2024년쯤에는 유럽이나 미국 등 해외 투어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에도 음악을 통해 평화의 메시지를 전할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잉키넨은 방송 교향악단으로서 KBS교향악단의 강점을 잘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방송국의 최첨단 플랫폼을 갖고 있는 KBS교향악단의 강점을 잘 활용하고, 소셜미디어에서도 존재감을 높여 더 많은 청중과 만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네 살 때 처음 바이올린을 접하고 열네 살에 세계적 지휘자 양성소인 헬싱키 시벨리우스 아카데미에서 지휘를 배운 그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젊은 지휘자 등 차세대 음악가 양성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잉키넨은 “KBS아카데미를 만들어 차세대 한국 뮤지션, 특히 지휘자를 양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요엘 레비, 드미트리 키타옌코 등 KBS교향악단의 역대 상임지휘자를 명예지휘자로 위촉해 이들이 연주는 물론 음악가 양성에도 함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가 2017년부터 수석 지휘자를 맡고 있는 독일 도이체방송 교향악단과의 공동 프로젝트도 구상 중이다. 한국과 유럽의 작곡가들에게 공동으로 곡 작업을 의뢰해 합동 공연을 하거나, 한국 또는 유럽 무대에서 공연을 선보이겠다는 구상이다.
잉키넨은 국내 관객과의 첫 만남에서 ‘아이덴티티(Identity)’를 주제로 자신의 뿌리이기도 한 핀란드 음악을 선보일 예정이다. 핀란드 거장 시벨리우스의 ‘카렐리아 서곡’과 ‘레민카이넨 모음곡’을 지휘하는데, 두 곡 모두 시벨리우스가 핀란드 역사 속 전설을 기반으로 작곡한 작품이다. 이 가운데 레민카이넨 모음곡은 오케스트라 연주로는 한국 초연이다. 협연자로는 2010년 쇼팽 콩쿠르 우승자인 율리아나 아브제예바가 나서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연주한다. 잉키넨은 “시벨리우스의 작품이 KBS교향악단과 잘 맞는다고 생각한다”며 “특히 레민카이넨은 독특한 분위기과 음색이 있는데, 열린 마음이 없다면 그 세계에 들어갈 수 없다. KBS교향악단의 모든 것에 열려 있는 태도가 이 곡을 연주하기 위해 꼭 필요한 자세”라고 말했다.
앞서 잉키넨은 2006년과 2008년 정기연주회, 2020년 특별연주회를 통해 KBS교향악단과 호흡을 맞춘 바 있다. 그는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즐겁게 공연했던 기억이 남아 있다”며 “오케스트라의 모든 것을 속속 알아야 좋은 음악을 만들 수 있다. 제 나름의 개성과 스타일도 있지만 팀워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잉키넨은 KBS교향악단 뿐 아니라 도이치방송 교향악단, 재팬 필하모닉의 수석 지휘자를 겸임하고 있다. 바그너 스페셜리스트라 불리는 그는 지난해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서 ‘발퀴레’를 무대에 올렸고, 올해도 이 페스티벌에 초청받아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의 새로운 프로덕션을 지휘할 예정이다. 그는 “전 세계적인 팬데믹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이 고립돼 있다”면서 “음악이란 공통 언어로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다”고 말했다.
두 핀란드 출신 지휘자의 맞대결도 관심을 모은다. 2020년부터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음악감독을 맡고 있는 오스모 벤스케(69)는 오는 29일과 30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오스모 벤스케의 모차르트 레퀴엠’으로 시즌 첫 공연을 지휘한다. 잉키넨과 마찬가지로 핀란드 출신인 벤스케는 팬데믹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위로하고 새로운 일상을 염원하는 세 편의 레퀴엠 시리즈를 기획했다. 핀란드 작곡가 라우타바라의 ‘우리 시대의 레퀴엠’을 시작으로 일본 작곡가 다케미츠의 ‘현을 위한 레퀴엠’, 모차르트의 레퀴엠을 선보일 예정이다. 벤스케는 “세 곡 모두 죽음이란 주제를 관통하지만 편성과 가사 등 그 방식은 다른데, 이는 슬픔을 극복하는 방식이 사람마다 모두 다른 것과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공연의 대미를 장식할 모차르트의 레퀴엠은 국립합창단과 소프라노 임선혜, 메조소프라노 이아경, 테너 문세훈, 베이스 고경일이 함께 무대에 오른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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