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석·박사 출신이 화장실 청소하게 될 줄이야"..큐레이터의 애환
못질부터 세일즈까지 온갖 잡무 담당
최근 MZ세대 1년 이내 퇴사율도 높아
"입사 첫날 드릴로 벽에 구멍 뚫는 방법부터 배웠어요."
한 현직 큐레이터의 말이다. '미술 전시 기획자'를 뜻하는 큐레이터는 환상이 많은 직업이다. 2015년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355개 직업 재직자를 대상으로 한 전반적 직무 만족도 조사에서 1위를 차지하면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하지만 실상은 백조보다는 궂은 일을 도맡는 미운 오리에 가깝다.
큐레이터의 기본적인 업무는 연 수차례, 많게는 매달 열리는 새 전시가 '무사히' 개막을 할 수 있도록 모든 만반의 준비를 하는 것. 전시 기획, 작가 섭외, 자료정리 및 도록 발간, 작품 배송과 설치, 작품 판매 및 고객에게 안전한 배송과 정산까지 책임진다. 소수의 인력으로 운영되는 화랑의 특성 상 1인다역으로 발에 땀이 나게 뛰어다닐 수밖에 없다. 여성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지만, 망치로 못을 박고 100호가 넘는 대작을 설치하는 일도 직접 하는 경우가 많다. 갤러리 화장실 청소도 하고 인력이 부족하면 갤러리 카페에서 커피를 내리거나 오프닝 리셉션에서 케이터링을 직접하기도 한다.
한 상업화랑 큐레이터는 "힘이 세야 한다"는 걸 첫 번째 덕목으로 꼽았다. 그는 "고소공포증을 이겨내고 3m 사다리를 타고 조명 설치를 한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 또 다른 큐레이터는 "해외에서 열리는 아트페어에 100호짜리 그림을 손으로 들고 이동을 한 적도 있다"라고 말했다.
미술사·미술 실기 전공자가 특히 많고 석·박사급 고학력자가 즐비한 직종이다. 공통적으로 꼽는 힘든 점은 고가의 작품 거래와 현격한 차이를 보이는 현실 연봉이다. 한 큐레이터는 "연봉 3000만원이 되지 않는 화랑이나 미술관이 즐비하다"고 말했다. 화랑이 문을 여는 주말근무는 필수고, 주중에 쉬어야하는 것도 고충이다.
직업 만족도가 높은 이유는 10여 년 가까운 공부 끝에 원하는 일을 하게 된 경우가 많고, 자신의 취미와 직업을 일치시킬 수 있어서다. 하지만 최근 MZ세대 큐레이터들은 힘들게 얻은 일자리를 떠나는 사례도 빈번해졌다고 업계에서는 털어놨다. 한 큐레이터는 "이직도 잦은 직종이고 최근 신입 큐레이터들은 1년 이내에 그만두는 비율이 체감상 70% 이상인 것 같다"며 "VIP 고객이 갤러리를 방문할 때 버선발로 뛰어나가 응대를 하는 친절한 서비스정신을 보여야 하고, 허드렛일도 마다하지 못하는 환경을 버티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작은 규모로 인한 가족 경영도 문제다. 대표의 가족이나, 낙하산으로 채용된 인원들과 함께 일을 하는 경우도 많다. 대기업·금융기관의 큐레이터의 경우 미술과 관련된 각종 업무에 차출되는 경우도 있다. 한 기업 소속 큐레이터는 "미술전공자라는 이유로 기업 리조트의 인테리어와 본점의 성탄절 트리 장식을 맡아서 한 적이 있다"라면서 허탈해했다.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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