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 바른 소리' 하는 일이 즐겁다는 논설위원, 그의 넷플릭스 추천작은?
OTT는 많고, 시간은 없다. 남들은 뭘 보고 좋아할까요. 조선일보 ‘왓칭’이 남들의 취향을 공유하는 ‘타인의 취향’을 연재합니다. 전 주필이었던 아버지에 이어 2대째 조선일보 논설실에서 글을 쓰고 있는 선우정 논설위원과 OTT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오래 쓸수록 글에서 기름기가 빠지고 담백해 진다는 선우정 논설위원. 원고지 11매 쓰는데 최소 6시간을 투입한다는 그의 취향을 공개합니다.
1. 본인을 소개해 주세요.
언론인 집안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그 영향을 받아 기자가 됐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데 “기자는 하지 말라”는 게 아버지 유훈이었습니다. 하지만 원하던 기자를 했습니다. 금방 30년이 지났습니다. 논설위원으로 사설을 쓰면서 3주에 한번씩 ‘선우정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입바른 소리를 하는 일이 늘 즐겁습니다. 힘겨워 하는 후배에게 “세상 씹으면서 돈 받는 직업이 어디 있느냐”고 합니다.
2. 기자 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꼽아주세요.
성수대교 붕괴 때 한강으로 무너져 내린 다리 상판에 배를 타고 올라가 취재했던 일입니다. 뒤집힌 버스에서 실려 나가던 여고생들 모습이 머리에 꽉 박혀 있습니다. 더 선명한 것은 그때 널브러진 학생들의 가방을 뒤지던 여러 기자들 모습입니다. 허용될 수 없는 행위이지만 역설적으로 그런 취재로 감동적인 사연이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기자 신입 교육 때 기자의 소명과 취재 행태의 정당성에 대한 소재로 당시 이야기를 합니다.
3. 도쿄 특파원을 하셨는데요, 현장에서 본 일본, 일본인, 일본 문화 어느 점이 놀라웠습니까.
옛 일본인을 ‘훈도시 찬 야만인’ 정도로 생각하는 분들에게 일본의 고도(古都)인 나라(奈良)를 자세히 보라고 권합니다. 저는 일곱 번 탐방했습니다. 딱 한 곳 추천하라고 한다면 도쇼다이지(唐招提寺)에 있는 8세기 목조 불상들입니다. 한국의 8세기 문화재와 비교하면 정말 많은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4. 선친인 선우휘 선생님에게 ‘글로 경쟁한다’는 마음도 있으신가요?
큰 수술을 받고도 병실 침대에서 일어나 칼럼을 쓰던 아버지의 말년 모습이 기억에 있습니다. 6.25전쟁에 대한 KBS 다큐멘터리를 찍다가 객지에서 돌아가셨는데 그런 소명 의식이 내게 있을까, 늘 자문합니다. 아버지를 포함한 그 세대는 자신의 경험을 전승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박함이 있었습니다. 식민지와 분단, 전쟁, 가난과 번영을 압축 경험한, 역사상 유일한 세대이기 때문일 겁니다. 글 재주로 경험의 깊이를 따라갈 수 없습니다.
5. MBTI 유형은요?
‘뜨거운 논쟁을 즐기는 변론가(ENTP-A)’로 나오는데, 전혀 아닌 듯합니다. 논쟁할 때 엉뚱한 소리를 들으면 화부터 납니다.
6. OTT를 보고 계신가요?
넷플릭스와 쿠팡플레이를 정기 구독하고 있습니다. 쿠팡플레이는 쿠팡 회원이라 공짜로 보는데 뜻밖에 좋은 작품이 가끔 올라옵니다.(예를 들어 ‘파고’ 시리즈) 왓챠는 보고 싶은 콘텐츠가 떴을 때만 메뚜기식으로 구독합니다. 왕좌의 게임 전편을 7900원에 볼 수 있게 해준 왓챠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7. 가장 재미있게 본 콘텐츠 3편을 뽑아주신다면요?
브레이킹 배드, 아메리칸 호러 스토리(시즌 2, 3, 4, 6, 7), 홈랜드. 모두 넷플에서 봤습니다만 넷플 오리지널은 아닙니다. 인생작은 브레이킹 배드. 주인공의 흰 팬티와 늘어진 궁둥이를 보면서 감정 이입을 경험했습니다. 두 번 봤습니다. 아메리칸 호러 스토리(현재는 디즈니 플러스에서 공개)는 컬트 호러물의 걸작입니다. 특히 추천한 다섯 개 시즌은 주제 의식이 있습니다. 모든 수위가 극단이라 혼자 보는 게 좋습니다. 가족이 있는 곳에서 “재밌다”며 정주행하면 “당신도 싸이코 아니냐”는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미국이기 때문에 만들 수 있는 드라마 홈랜드는 배우가 연기에 미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보여줍니다. 기자 일도 저렇게 하면 세상을 바꾸겠구나 싶습니다. 넷플 오리지널만 꼽으면 버드박스, 더 서펀트, 최근작 중엔 돈 룩 업입니다. 돈 룩 업은 종말 영화의 최고봉인 멜랑콜리아에 시사와 재미라는 날개까지 단 명작입니다. 구독료 내고 안 보면 바보.
8. 일본에서 만난 사람 중 ‘영화적이다’ 생각한 사람이 있으신가요?
재일한국인 소설가 유미리를 담당하던 출판사 편집자. 일본 대형 출판사인 신초샤에서 유미리를 담당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극단적 슬럼프에 빠진 유미리가 몇 년 후 달리기를 통해 재기했는데, 편집자가 매일 새벽 함께 연습하고 함께 마라톤 풀코스를 3번 완주했습니다. 그렇게 재기한 유미리에게 다시 새로운 글을 뽑아내 책을 만드는 것을 보면서(유미리를 설득해 유미리 나체 사진까지 책 표지에 실었음) 책은 작가가 다 쓰는 게 아니란 걸 알았습니다. 말 그대로 ‘편집광’의 세계를 드라마로 만들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9. 컬럼을 잘 쓰기 위해 혼자만의 루틴, 혹은 비법 같은 게 있으신가요?
그냥 오래 씁니다. 원고지 11매 쓰는데 최소 6시간 투입합니다. 달필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오래 쓸수록 글에서 기름기가 빠지고 담백해 집니다. 사견이 줄어들고 겸손해 집니다. 사람들은 보통 오래 쓰면 글이 화려해 진다고 하는데 실제론 반대입니다. 신기할 정도입니다.
<추천작 보러가기>
브레이킹 배드
아메리칸 호러 스토리
홈랜드
버드박스
더 서펀트
돈룩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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