뽕이란 무엇인가

서울문화사 2022. 1. 26.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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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7년간 '뽕짝'이라는 장르를 연구해온 250의 <뽕> 앨범이 완성을 앞두고 있다. 250은 알고 보면 뽕짝은 슬픈 음악이라고 말했다.
레더 재킷·레드 컬러 셔츠·데님 팬츠·벨트·슈즈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촬영할 때 많이 수줍어하던데?

조금 전까지 집에서 컵라면 먹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스튜디오에서 화보 촬영을 하고 있으니 기분이 요상하다. 중간이 없잖나.(웃음)

그나저나 ‘뽕’을 찾아 나선 지 8년 차다. 이 모험은 어떻게 시작됐나?

‘뽕을 찾아서’ 프로젝트는 2015년쯤부터 시작됐을 거다. 2014년일 수도 있고. 당시 솔로 앨범을 기획하던 중이었다. 앨범 제목에 대한 회의를 하다 문득 ‘뽕’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앨범 제목이 ‘뽕’이라니.

회사는 내가 기존에 만들어두었던 다른 음악들을 듣고는 한국적인 댄스 음악에 테크니컬한 요소를 섞어보자고 제안했다. 한국적인 댄스 음악은 뽕짝이니까. ‘뽕’ 앨범을 완성하기까지의 과정을 다큐멘터리로 찍은 게 ‘뽕을 찾아서’다.

뽕짝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어떻던가?

맞다. 뽕짝을 좋아하느냐고 물었을 때 좋아한다고 한 대답은 그저 웃자고 한 말인 것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뽕짝을 싫어하는 것 같다.

왜 그럴까?

너무 뻔하다고 느껴서 그런 게 아닐까. 예를 들면 슬픈 노래 부르는데 진짜 우는 창법으로 부르면 약간 거부감 드는 것처럼. 그리고 몇 년간 뽕짝 트로트가 트렌드였는데, 그 흐름에 질렸다고 말하는 사람도 만나봤다. 그저 ‘뽕’이라는 타이틀이 싫다고 한 사람도 있었고. 앨범을 준비하면서 사람들이 뽕짝에 대해 편견이 있는 걸 발견할 수 있었다.

뽕짝은 250에게 어떤 의미인가?

미원이나 다시다 같은 존재다. 맹맹한 음식에 미원 한 줌 털어 넣으면 감칠맛이 돌 듯 마지막에 맞춰지는 완벽한 조각 같은 것이지. 슬픈 코드이기도 하고.

슬픔?

삶을 지배하는 정서는 슬픔이라고 생각한다. 시간의 흐름은 사람을 슬프게 만들지 않나. 인생의 시작과 끝을 생각하면 허무감이 느껴지고 마음이 휑해진다. 어떤 곡이든 애잔한 감성이 녹아 있어야 만족한다. 그래야 제대로 된 음악이라는 생각이 드니까. 그래서 뽕짝에도 슬픈 코드를 넣었다.

그 슬픔은 어디서 온 건지 물어봐도 될까?

여자친구와 헤어졌을 때가 제일 슬펐는데, 그 감정을 <뽕> 앨범에 쏟아냈다. 헤어진 이후로 꽤 오랫동안 마음이 안 좋았는데, 그러다 다시 재회했을 때가 더 슬펐다. 연애를 다시 한 건 아니고 커피 한 잔 마셨는데, 헤어지고 돌아오는 길에 슬픔이 왈칵 쏟아지더라. 내 이름으로 만든 앨범은 내가 좋아해야 한다. 그 좋은 느낌이 들기 위해선 뭉클한 순간이 담겨 있어야 한다.  

패턴 셔츠·벨벳 재킷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뽕> 작업에 가장 큰 자극이 돼주었던 곡이 있을까?

이은하의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 내겐 가장 완벽한 노래다. <뽕> 앨범 전체의 레퍼런스에 가까울 정도니까. 내가 원하는 모든 게 그 곡에 깃들어 있다. 곡의 구성과 연주가 완벽한데, 원래는 절제하며 부르지 않는 이은하 씨가 그 노래만큼은 완벽하게 절제 하며 불렀다. 장덕 씨가 작곡하셨는데, 중간에 등장하는 보코더 연주도 경이롭다. 그 시대에는 잘 안 쓰던 악기인 데다, 슬픈 멜로디와 가사를 보코더로 완벽히 연주한다. 뭐랄까, 내겐 한국 사람이 만든 것 중 가장 완벽한 노래다. 그런 슬픈 감성을 <뽕>에서도 표현했다.

뽕짝을 잘 모르는 사람으로서 뽕짝 음악은 대부분 비슷하게 들리더라.

처음에는 차이를 두는 것에 집중했다. 하지만 차이를 두려고 할수록 곡이 뽕짝이라는 장르와 동떨어지더라. 뽕짝이 갖고 있는 클리셰, 빠른 디스코 사운드로부터 도망치려다 결국 다시 멱살 잡혀 끌려왔다. 끌려오는 단계에서 앨범이 만들어졌고. 결국 장르의 본질은 유지되어야 하고 그 안에서 감정과 아이디어를 발현할 수밖에 없다.

앞서 말했듯 애잔하고 슬픈 감정을 싣기 위한 사운드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었나?

‘이창’의 경우, 가난하게 들리길 바랐다. 풍족한 소리가 아니라 허접하고 값싼 장비로 쥐어짜서 만든 곡처럼 들리길 원했다. 그래서 숟가락이 굴러 떨어지는 소리를 넣었다. ‘뱅버스’에는 영화 <마더>의 마지막 장면에서 느껴지는 감성을 담았다. 춤을 추지만 슬프고, 슬프지만 하여간 춤은 춰야 하는, 애잔하고 기묘한 감성이랄까. 그래서 서로 부둥켜안고 눈을 맞추며 춤을 추지만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는 의미로 칼날이 부딪히는 소리를 넣었다. 끝이 있는 삶이 주는 슬픈 정서를 고속버스 안에서 벌어지는 상황으로 풀어냈다.

뽕짝이어도 동시대적인 감각을 살려야 한다는 강박은 없었나?

앨범 제작을 시작하고 3년간은 당시 유행했던 드럼 소스를 자주 사용했다. 하지만 3년이 지나고 들으니 촌스럽게 느껴지더라. 그 당시 유행했던 소리들이 들리니까. 그래서 ‘이창’ 이후에는 작업 방향을 완전히 틀었다. 뽕짝으로 시작한 이상, 가장 오래 남는, 생명력 있는 음악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그 이후 만든 곡에는 동시대적인 소리가 없다. 요즘 뜨는 핫한 사운드 소스는 싹 잊어버리고 오직 뽕짝에만 집중한 채 속 시원하게 만들었다. 요즘 음악이 아니어서 촌스러워도 상관없다. 20년 뒤에도 똑같이 멋있게 들리면 그게 진짜 멋일 테니까.

7년간 뽕짝을 만들며 다양한 어려움에 부딪쳤겠다.

7년 내내 어려움에 부딪쳤다. 대표에게 포기한다는 말을 세 번 정도 하려다 꾹 참았다. 뽕짝은 세계관이 방대하고, 감히 건드리고 변주를 주기엔 굳건하게 자리 잡힌 신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하고픈 대로 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든 순간이 있다.

그 순간이 언제였나?

이박사 선생님을 두 번째 만났던 날, 키보드 연주하시는 김수일 선생님도 함께 뵈었다. 모여서 노래를 녹음하고 들어보니 너무 근사하더라. 그래서 그 소스를 놓고 2년을 고민했다.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몰랐거든. 2년이 지나고 다시 들어보니 어느덧 2년이라는 시간의 흐름이 체감됐다. 그러니까 벌써 2년 전 추억이 되어버린 거지. 애수가 느껴졌고 곧장 곡을 완성해버렸다. 뽕짝이라는 본질에 집중하되, 곧장 하지 않아도 되는구나. 내가 하고 싶을 때,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되는구나.

이루고 싶은 건 무엇인가?

곧 내 이름으로 앨범이 나올 텐데, 뭐랄까. 한편으론 래퍼들이 부럽다. 자기 삶과 음악의 싱크가 잘 맞으니까. 곡을 만들 당시 자신이 직면한 상황을 가사로 쓰면 되니까. 그럼 아티스트의 인생이 듣는 사람에게 오롯이 전달될 테니까. 그 점을 원하고 꿈꾸고 있다. <뽕> 앨범 안에 내 30대가 다 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 점은 자랑스럽기도 하고 인생과 음악의 싱크가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아직 그 꿈을 이루었다고는 볼 수 없겠지. 만족하기란 늘 어려운 일이니까.

EDITOR : 정소진 | PHOTOGRAPHY : 정철환 | STYLIST : 이잎새 | HAIR&MAKE-UP : 채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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