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길이 문명을 소통시켰다.. 지중해부터 인도양 거쳐 신라까지"
“대륙이 아니라 바다를 중심에 놓고 보니 세계사가 다르게 보였습니다.” 주경철(62)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가 말했다. “이집트⋅메소포타미아와 인더스 같은 각지의 문명이 따로 발전한 것이 아니라 서로 교류할 수 있게 해 줬던 것이 바로 바다였다”는 것이다. “문명 성립 이전에 이미 바닷길이 열렸습니다.”
2008년 연구서 ‘대항해시대’에서 “세계가 만든 문명 위에 유럽이 올라탄 것”이라고 했던 주 교수는 14년 만에 해양사(史)의 후속 저작을 냈다. 1000쪽 가까운 분량의 연구서 ‘바다 인류’(휴머니스트)로, 인류 역사 전체를 바다의 관점으로 새로 쓴 세계 해양사다. “사실 역사가는 다 통사(通史·모든 시대와 지역에 걸쳐 서술한 역사)를 쓰고 싶은 마음을 지니고 있죠. 코로나19 사태와 안식년이 이번에 저를 도와줬습니다만....”
거칠게 말해 지금까지의 세계사는 대륙과 농경 문명의 역사였다. 하지만 바다가 그저 ‘청동빛 장벽’이 아니라 소통과 연결의 장이었다는 사실을 깨닫자 새로운 것이 많이 보였다. “서기 7세기 이후 이슬람 상인들은 바다를 통해 지중해에서 중국 남부까지 소통했고 그 너머 신라의 존재도 알고 있었습니다.”
중세의 인도양은 동양과 서양을 연결하는 세계 교역의 중심이었다. 그는 “아랍과 페르시아인들이 낙타만 탔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고 했다. 거대한 삼각형 돛을 단 다우선(船)을 타고 바다로 나가, 나무판과 끈으로 이뤄진 카말(kamal)이란 도구로 북두칠성을 찾아 보며 위도를 계산했다. 교역로의 길목 믈라카해협을 장악한 스리위자야 왕국과 그 뒤를 이어 패권을 잡은 촐라 왕국이 여기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몽골의 해상력 발전과 명나라의 남해 원정, 증기선과 운하를 통한 세계 경제의 연결과 전함을 통한 제국주의적 침탈 역시 바다를 중심에 놓지 않고는 생각할 수 없다. 그는 “사실은 한국사도 마찬가지로 새로 볼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백제의 해상 진출과 신라의 장보고에서 조선의 이순신으로 이어지는 장구한 해양사 말이다.
근대 이전 바다에서 활동한 세력에게는 큰 특징이 있었다. 바이킹이나 영국의 프랜시스 드레이크에서 보듯 해적·상인·군대의 요소가 뒤섞인 경우가 많았다는 것. “대륙의 정치 질서에서 벗어난 세력이 바다로 이어진 근거지에서 새로운 질서를 창출했다”는 얘기다.
주 교수는 종래의 서구 중심주의적 시각엔 반기를 들었다. “고대 지중해 세계를 예로 들어 보죠. 과연 그것이 그리스와 로마의 독무대였을까요? 아프리카⋅중동⋅북유럽의 다양한 민족 집단들이 협력하며 투쟁하고 교류하며 융합해 새로운 문명을 만들었다는 걸 봐야 합니다.”
주 교수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2019년 덴마크에 ‘그린란드를 팔라’고 했던 해프닝을 곰곰이 들여다보면 해양사의 미래가 보인다고 했다. “앞으로 북극 항로를 장악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던 거죠. 그 항로가 열린다면 소통과 연결의 인류사는 또 한번 전환을 맞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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