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 [147] 선물하고 뺨맞기
여우가 두루미를 식사에 초대했다. 여우는 납작한 접시에 수프를 담아 내왔다. 부리가 긴 두루미는 수프를 한 모금도 먹을 수 없었다. 여우는 두루미가 먹지 못한 수프까지 싹싹 핥아 먹었다. 화가 난 두루미는 며칠 후, 여우를 초대했다. 두루미는 목이 긴 호리병에 고기를 담아 내왔고 여우는 먹을 수 없었다. 두루미는 여우의 고기까지 맛있게 먹어치웠다. - 이솝 우화 ‘여우와 두루미’ 중에서
주한 일본 대사가 청와대의 설 선물을 돌려보냈다. 선물 상자에 독도가 그려져 있는 게 불쾌하다는 이유였다. 그래도 선물을 반송하다니, 하고 생각했지만 몇 해 전 도쿄 한일 정상회담 때의 오찬이 떠올랐다. 아베 전 총리가 취임 1주년 축하 케이크를 선물하자 ‘단것을 잘 못 먹는다’며 면전에서 거절하지 않았던가.
여우는 왜 접시에 음식을 담았을까? 두루미의 부리가 길다는 걸 깜빡했을까? 그릇이 납작 접시밖에 없었을까? 단순한 실수인지 심술궂은 장난인지 알 수 없지만 손님에 대한 배려가 없었던 것은 분명하다. 그러니 쫄쫄 굶고 돌아간 두루미가 여우를 초대했을 때 제대로 대접해줄 거라 기대했다면 어리석기 짝이 없다.
아이들끼리 오목을 두더라도 상대의 다음 수를 생각하며 돌을 놓기 마련이다. 설을 맞아 1만5000명에게 똑같이 보냈다지만 ‘여긴 우리 땅’이란 주장이 담긴 선물이 일본 대사관에 도착하리라는 걸 몰랐을 리 없다. 그러면 일본이 어떻게 반응하리라는 것을 예상하지 못했을까? 혹시 언론 보도가 나가면 또 한번 국민의 반일 감정이 고조되길 바란 걸까?
얼마 전 소개했던 ‘라이프 오브 파이’를 원작으로 한 영화를 보았을 때 배가 침몰한 장소를 나타내는 지도 한쪽에 영어로 ‘일본해’라고 표기된 것을 발견하고 아쉬웠던 적 있다. 우리 것을 지키려면 더 강하고 더 현명해져야 한다. 청와대는 일본이 독도 영유권을 다시 한번 큰 소리로 주장할 기회를 선물한 셈이다. 정말 독도를 지킬 마음이 있는 것인가? 반일 정서를 부채질하면서도 청와대의 진심은 위일(爲日)이 아닐까, 종종 헷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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