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 최초 여성 대법관 탄생
이슬람 국가 파키스탄에서 아이샤 말리크(55) 판사가 여성 최초로 대법관 자리에 올랐다. 말리크는 24일(현지 시각) 수도 이슬라마바드 대법원에서 16명의 남성 동료와 나란히 취임 선서를 하며 공식 업무를 시작했다고 영국 BBC가 전했다. 파키스탄 인권 운동가들은 “여성이 대표권을 얻기 위해 수십년간 투쟁한 결과”라며 “파키스탄 사법부의 새 역사를 썼다”고 평가했다.
말리크는 영국 런던에 있는 사립 여고를 졸업하고 파키스탄 법대에 진학했다. 이후 하버드 로스쿨을 거쳐 인권 변호사로 일했다. 2012년 파키스탄 라호르 고등법원 판사가 됐지만, 남성 중심의 보수적인 법조계에서 진급은 어려웠다. 그는 작년에도 대법관 진급에 실패했다. 파키스탄 법조계에서 “나이가 어리다” “추천 후순위”라며 강력히 반발했기 때문이다. 파키스탄 변호사협회는 “모든 법적 절차를 보이콧하겠다”고 하기도 했다.
그의 진급 문제는 올해 또다시 논쟁거리가 됐다. 파키스탄사법위원회(JCP)는 4시간에 걸친 토론 끝에 5대4로 그의 임명안을 통과시켰다. 굴자르 아흐메드 대법원장은 이날 선서식 이후 기자들과의 질의 응답에서 “말리크는 대법관이 될 만큼 유능하며 그녀 외에는 누구도 그녀의 승진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을 자격이 없다”고 했다.
말리크 대법관 임명은 파키스탄 사회에서 ‘유리천장’(여성의 고위직 진출을 막는 장벽)을 깨는 상징이 될 것으로 보인다. 말리크는 작년 6월 성폭력 피해자의 성기를 직접 조사하는 검사 제도에 대해 ‘불법이며 헌법 정신에 어긋난다’는 판결을 내려 인권 향상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파키스탄은 작년 세계경제포럼(WEF)이 성별 격차를 지수화한 ‘성 격차 지수’에서 156국 가운데 153위를 차지할 정도로 성차별이 심한 나라다. 파키스탄은 남아시아 국가 중 유일하게 여성 대법관이 한 명도 없었다. 고등법원 판사 중 여성 비율도 4%에 불과하다. 임란 칸 파키스탄 총리는 자신의 트위터에 “말리크 판사가 최초의 여성 대법관이 된 것을 축하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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