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수의 오마이갓] 천주교계에 '악마 묵주' 주의보

김한수 종교전문기자 2022. 1. 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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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천주교계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묵주(왼쪽)와 이른바 '악마 묵주'. 십자가 부분이 확연히 다르다. /가톨릭평화신문 제공

새해 벽두 천주교계에 ‘악마 묵주 주의보’가 발령됐습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가 발행하는 가톨릭평화신문과 대구대교구가 발행하는 가톨릭신문은 1월 16일자 신문 1면에 ‘악마 묵주’ 기사를 실었습니다. 특히 가톨릭평화신문은 “혹 ‘악마 묵주’로 기도하고 있지 않나요?”라는 제목으로 1면 머리 기사로 보도하고 9면을 통째로 이 내용에 할애했습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가 지난해말 전국 교구에 공문을 보내 변형되고 왜곡된 가짜 묵주와 기적의 메달 등이 유통되고 있는 데 대해 주의를 촉구했다는 내용입니다.

천주교에서는 성화(聖畵), 묵주, 기적의 메달 등을 성물(聖物)로 여깁니다. 교회 전례와 기도, 신심 행위에 사용하는 물건으로 사제의 축복을 받아 쓰지요. 그런데 일부 온라인 쇼핑몰 등에서 판매되는 묵주와 ‘기적의 메달’이 가품(假品), 그것도 ‘안티 가톨릭’이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것이라는 것이죠. 보통 가톨릭 신자들이 묵주기도할 때 사용하는 묵주엔 구슬이 죽 달려있고 끝에 십자고상(十字苦像)이 있지요.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려 있고, 예수님 머리 위로는 ‘INRI’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INRI’는 ‘유다인들의 임금 나자렛 사람 예수’란 뜻의 라틴어 머릿글자입니다. 그런데 ‘악마 묵주’엔 ‘INRI’가 있어야 할 자리에 뱀 머리가 있다고 합니다. 게다가 십자가의 네 끝은 우상숭배를 의미하는 오각형 안에 태양빛이 퍼져가는 모양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천주교계가 인정한 공식 '기적의 메달'(왼쪽)과 가짜로 의심 받는 기적의 메달(오른쪽). 앞뒷면의 형상이 다르다. /천주교 주교회의 제공

‘기적의 메달’은 1830년 프랑스 파리의 한 수녀에게 성모 마리아가 나타나(발현해) 계시한 내용을 담은 것이라고 합니다. 프랑스 주교단이 공인한 메달은 앞면엔 성모 마리아 주위로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님, 성모님께 의탁하오니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라는 문구가 프랑스어로 새겨져 있습니다. 뒷면엔 성모 마리아를 상징하는 알파벳 M이 십자가의 받침을 꿰고 있으며, M자 아래엔 가시관을 쓴 심장(예수 성심)과 칼에 찔린 심장(성모 성심)이 있고, 둘레엔 12개의 별이 좌우대칭으로 배치되지요.

주교회의가 주의를 촉구한 가짜 메달은 조악한 플라스틱 제품이 많답니다. 그리고 성모의 모습도 희미하고 문구는 아무렇게나 생략되고, 뒷면 역시 대충 흉내만 낸 듯한 모양입니다.

천주교 신자가 아닌 분들은 ‘주교회의까지 나설 만큼 큰 문제인가’ 싶기도 할 것입니다. 저도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 궁금해 주교회의 전례위원회 총무 김기태 신부님께 문의했습니다. 김 신부님의 답은 이랬습니다. “수도회 신부님 중에서 이 문제를 주의 깊게 관찰하다가 걱정하는 분이 계셔서 주교회의에 제보했습니다. 알아보니 실제로 온라인 쇼핑몰에서 판매되고 있었고요. 이미 유럽과 미국에서는 몇 년 전부터 문제가 됐던 일이라 우리 신자들에게도 주의를 환기시킬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 전국 교구에 알리게 됐습니다.”

'악마 묵주'에 대한 주의를 촉구하는 가톨릭평화신문 1월 16일자 1면과 2017년 CNN 필리핀 보도, 수원교구의 카드뉴스(왼쪽부터)./가톨릭평화신문-수원교구 제공

인터넷에 ‘Satanic Rosary(악마 묵주)’ ‘Rosario Satanico’를 검색해 보니 이미 2017년 CNN이 필리핀발(發)로 ‘악마 묵주 주의보’를 보도했네요. 그뿐 아니라 인터넷 상거래 사이트 ‘아마존’을 검색하니 무수히 많은 ‘악마 묵주’가 판매되고 있었고요. 아마존에서 판매되는 상품은 아예 대놓고 머리에 뿔난 악마의 모습을 형상화하고, 삼지창을 매달아놓은 묵주도 있더군요. 이런 물건들에 비하면 주교회의가 주의를 촉구한 묵주는 어쩌면 부주의하고 조악하게 베꼈거나 혹은 더 교묘하게 신자들을 속이기 위해 제작했거나 둘 중의 하나로 보였습니다.

김기태 신부도 “이들 ‘악마 묵주’는 플라스틱 등 싼 재료로 만든 조악한 물건으로 보인다”면서도 “그렇지만 신앙의 도구인 묵주를 신자들이 잘 모르는 상태에서 ‘악마 묵주’를 사용하는 현상이 생길 우려가 있어 주의를 환기시키게 됐다”고 했습니다. 요컨대 이번에 주교회의가 주의를 촉구한 것은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이며 광범위하게 사용된다기 보다는 미리 예방 차원에서 주의 환기를 했다는 것이지요. 또한 묵주 등 성물은 액세서리 장식품이 아니라 신앙생활을 위한 도구라는 점도 다시 알릴 필요가 있었겠지요.

신자들 사이에선 이 ‘악마 묵주 주의보’가 꽤 관심을 끌었습니다. 가톨릭평화방송이 유튜브에 띄운 뉴스 동영상과 수원교구에서 배포한 카드뉴스는 조회수가 상당했다고 합니다. 신자들도 깜짝 놀랐던 모양입니다.

이런 묵주로 기도를 드렸다면 기도의 효력은 어떻게 될까요? 김기태 신부는 “그동안 그릇된 성물로 기도를 바쳤더라도 기도의 효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며 “다만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묵주를 점검하고 잘못된 성물이라면 기도의 도구로서 거룩한 가치를 상실한 것이기 때문에 폐기하면 된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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