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암'의 흔들림없는 성찰, 격변의 시대 좌표가 되다

권구성 2022. 1. 25.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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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맥잇는 원행스님 '한암 대종사' 출간
일제강점기 나라의 비운을 접하고
오대산 상원사로 들어가 27년 수행
한국전쟁 속에도 피난 대신 절 지켜
'좌탈입망'하며 남긴 말 "여여하라"
흔들림없이, 변함없는 성찰의 자세
선어와 법문으로 남아 현대 지혜로
오대산 월정사 원행스님이 한암 대종사의 일대기를 담은 ‘성인(聖人) 한암 대종사’를 출간했다. 원행스님은 “한암스님의 선어와 법문이 새로운 지혜를 열어주시길 기대한다”고 바람을 전했다. 연합뉴스
‘세여출세도불식(世與出世都不識)’

한국 불교의 초석을 다진 한암스님(1876∼1951)의 법구 게송(불교적 교리를 담은 한시)이다. ‘우리는 모르고 있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다’는 말로, 자신에 대한 결정적 오류는 자신을 모르고 있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는 의미다. 오대산 월정사 원행스님은 새해 화두로 ‘세여출세도불식’을 제시했다. 한암스님의 일대기를 담은 책 ‘성인(聖人) 한암 대종사’를 펴낸 그는 “자신의 무지에 대한 탐구와 발굴이 곧 우주와 진리를 향한 첫걸음”이라며 “이 명제의 본뜻은 쉼 없는 정진과 수련을 통해서만 알아챌 수 있다는 사실을 마음 깊이 새긴다”고 말한다.

한암스님은 조계종 지도자를 네 차례 지낸 인물이다. 그는 일제강점기부터 한국전쟁까지 혼란했던 시기에 불교의 선풍(禪風)을 지키고 법맥을 계승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의 제자들은 1962년 출범한 대한불교조계종의 주역으로 활동하며 한국 불교의 정체성을 다졌다.

한암스님의 스승은 한국 불교를 중흥시킨 것으로 평가받는 경허스님이다. 한암스님은 스승으로부터 유일하게 ‘지음자(知音者)’로 불렸다. 경허가 자신을 가장 잘 아는 도반으로 여긴 것이다. 책에 서평을 남긴 도올 김용옥은 “한암은 경허의 모든 것, 그의 삶, 정신세계, 감정기복, 지향처를 다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실천한다”면서 “경허를 한암처럼 존경하고 따른 사람이 없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한암은 경허와 매우 다른 인간”이라면서 “경허의 또 다른 제자 만공이 경허의 파격적 측면을 계승하여 엘리트주의적 성격을 지니는 것과 달리, 한암은 전 승가의 수행 풍토를 진작하려는 보편주의, 남전·조풍주의 우아함, 계율을 넘어서면서도 계율을 내면화하는 단아함을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

한암스님은 일제강점기인 1925년 나라의 비운을 보고 “내 차라리 천고에 자취를 감추는 학이 될지언정, 춘삼월에 말 잘하는 앵무새 재주는 배우지 않겠다”며 오대산 상원사로 들어갔다. 그는 이후 27년간 동구불출(洞口不出)하며 자리를 지키고 수행을 이어갔다.

한국전쟁의 포화는 오대산도 피하지 못했다. 한밤중 인민군이 들이닥쳐 총을 들이대거나 식량을 빼앗았다. 전쟁 통에 상좌(上佐)들은 한암스님에게 피란을 가자고 하지만, 한암스님은 “남아서 절이나 지킬 것이니 너희들이나 가라”고 마다했다. 이 시기 오대산을 비롯해 전국의 수많은 사찰이 불에 타 소실됐지만, 상원사 만큼은 건재할 수 있던 배경이다. 당시 1·4 후퇴로 밀려나던 국군은 북한군의 보급기지로 활용될 수 있다며 사찰을 소각했는데, 한암스님이 불상 앞에서 합장하며 꼿꼿이 자리를 지켜 법당 소실을 막았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한암스님은 혼란했던 시기에 교정과 종정을 각각 두 차례씩 지냈는데, 추대를 받을 때면 한사코 사양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오대산을 지키며 수행에 힘을 쏟겠다는 이유였다. 그는 대중의 요청을 거절하지 못해 추대를 수락하면서도 ‘수행에만 전념하는 본분 종사이므로 오대산문을 나갈 수 없다’는 소신대로 일선의 행정 업무를 직접 관할하지 않았다.

한암스님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수행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는 1951년 3월22일 죽 한 그릇과 차 한 잔을 마신 뒤 가사 장삼을 갖춰 입고 좌선하는 자세로 열반했다. 불교에서는 이를 ‘좌탈입망(座脫立亡)’이라 하는데, 죽음까지도 마음대로 다룰 수 있을 만큼 법력이 높은 고승들이 택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수행에 매진했던 그가 입적하기 전 남긴 말은 ‘여여(如如)하라’였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 ‘늘 그대로 그러함’, ‘흔들리지 않는, 변함없는 마음이나 모습’을 뜻한다.

책을 집필한 원행스님은 경허에서 한암, 탄허, 만화로 이어지는 법맥을 물려받아 지난 시절 여러 거처에서 수행과 불사를 반복했다. 원행스님이 책을 세상에 내놓기까지 4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혼란한 시국에서 원행스님이 이 책을 펴낸 이유는 무엇일까. “인류의 최대 격동기였던 근대의 혼란과 난세에 오대산으로 들어오신 한암스님께선 이 깊은 산골에서 두문불출하심으로써 외려 국내외의 철학자와 지성인들을 긴장시켰고 깨웠습니다. 이제 우리는 다시 거대한 격변의 시대와 마주하였습니다. 한암스님의 선어와 법문이 새로운 지혜를 열어주시길 기대하며 이 책을 모든 독자께 바칩니다.”

권구성 기자 k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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