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막는 이웃들, 뒷짐 진 지자체, 속 타는 건축주..대구 북구 이슬람 사원 공사 중단 '벌써 1년'
[경향신문]
지난 17일 오후, 대구 북구 대현동의 한 주택가. 골목길 가장 안쪽에 임시로 덧댄 철문이 닫혀 있었고, 그 너머로 2층 규모의 철골 구조물이 보였다. 쪽문 앞에 놓인 노란색 천막 1동 주변에는 주민 등 7명이 모여 있었다. ‘집회천막’이라는 글씨가 천막 앞에 붙어 있었다.
차량 1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좁은 이 골목에는 ‘국민이 먼저다. 이슬람사원 건축 결사반대한다’ ‘주민들이 행복하게 살 권리를 보장해 주세요’ 등이 적힌 펼침막이 내걸려 있었다. 반면 인근에는 ‘이슬람신자도 사람이며 이 동네의 구성원입니다’라고 쓴 펼침막도 볼 수 있었다.
골목길에서 얘기를 나누던 50대 주민은 “20년 넘게 이곳에서 살아왔는데 이슬람사원이 생기면 동네가 슬럼화되고 땅값이 떨어질 게 뻔하다”면서 “주민들이 반대하는 만큼 공사는 취소되는 게 마땅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무슬림을 포함한 건축주 7명은 2020년 9월 자신들이 소유한 대현동 4개 필지를 ‘종교집회장’으로 용도변경 및 증축 신고를 내 북구청의 허가를 받았다. 그해 12월3일 착공 허가가 났고, 공사가 시작됐다. 주민들은 지난해 초부터 소음과 악취, 재산권 침해 등을 이유로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북구청은 주민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지난해 2월 공사중단 조치를 내렸지만, 법원은 1심에서 이 행정처분이 잘못이라고 판단했다.
대구 한 주택가에 이슬람사원을 짓는 문제로 주민과 건축주가 갈등을 벌인 지 꼭 1년이 됐지만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할 지자체는 잘못된 행정처분이라는 법원의 판결 뒤에도 여전히 사태를 지켜보고만 있다. 건축주들은 추가 법적 조치까지 적극 검토하고 나섰다.
건축주들은 당장 공사를 재개하고 싶지만 천막이 공사장 앞을 막고 있는 등 공사 진행을 막으려는 주민들의 움직임 때문에 여의치 않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사원 건축주 A씨는 25일 “공사가 중단된 지난해 2월 이후 철근 등 자재값이 올라 이미 7000만~8000만원의 피해를 봤다”면서 “공사중지 처분이 잘못됐다는 판결이 나온 만큼 지자체가 공사를 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줘야 하지만 시간만 보내고 있다”고 비판했다.
건축주들은 더는 공사를 미룰 수 없다고 판단, 천막 철거를 위해 조만간 추가 소송을 낸다는 방침이다. 재판부는 지난해 사원 반대 주민들이 장기간 차량을 주차하는 방식으로 공사장 입구를 막자, 이를 치워야 한다고 판결한 바 있다.
공사중지 처분 취소소송에서 진 북구청은 주민과 건축주를 상대로 간담회 제의만 했을 뿐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북구청은 현재 건축부지를 사들이는 대신, 건축주들이 다른 곳에 사원을 짓는 게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입장만 고수하고 있다. 지역 시민단체는 지자체가 법률을 부정하고 이주민 차별 및 혐오를 조장하고 있다며 비판하고 있다.
정치적 해결 역량도 수준 미달이다. 권영진 대구시장은 지난해 10월 열린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이 이슬람사원 문제 해결에 대구시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고 지적하자, “해결책을 찾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그는 지난달 송년 기자간담회에서 “북구청이 문제를 해결할 역량이 있다고 본다”며 개입하지 않고 있다.
대구시는 현재 대구지역에 큰 규모의 이슬람사원 1곳과 예배소 10곳 등 11곳의 관련 시설이 있는 것으로 확인했다. 하지만 이들 대부분의 시설에서 상습적으로 민원이 제기되는 경우는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글·사진 백경열 기자 merc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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